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기존 섹션을 국제화·대중화했고, 새로운 섹션을 추가해 더 풍성한 잔치로 탈바꿈했다.
17일 영화제가 발표한 상영작은 형식파괴와 실험성 강한 작품들에 주목하면서도 보편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들이 섞여 있다.
프로그램 섹션 16개와 스페셜 스크리닝 섹션 2개 등 모두 18개의 섹션 중에서 아시아독립영화포럼은 외연을 넓혀 전세계의 저예산 독립 장편극영화로 확대했고,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했던 '어린이 영화궁전 섹션'을 가족 중심 프로그램으로 개편했다. 비엔날레로 운영했던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부문을 통합해 '영화보다 낯선'이란 새옷을 입혔으며 '오마주' 대신 일본 예술영화조합(ATG) 10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ATG회고전'을 신설했다. 한국 영화를 확대하고, 쿠바의 주목받고 있는 영화들을 대거 초청한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확대되고, 재편성된 각 섹션들을 보면 지난 섹션들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나 점검 없이 새옷으로 바꾸어 입은 것들이어서 전주 영화제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킬 여지가 없지 않다.
△ 메인프로그램-인디비전·디지털스펙트럼
- 세계의 모든 영화 모두 모여라
아시아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현실에 고민하던 것에서 전 세계의 독립영화로 폭을 넓혔다.
인디비전(경쟁부문)은 대륙의 구별 없이 독립영화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6편의 도전적인 영화들을 소개한다. 이란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두 생각 사이의 침묵'(감독 바박 파야미), 전쟁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고독한 전쟁'(감독 제이크 마하피·미국) 등이다.
디지털 스펙트럼(경쟁부문)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모큐멘터리에 디지털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주차단속원, 그랜트파커'(감독 트렌트 칼슨·캐나다)나 '커다란 두리안'(감독 아미르 무하마드·말레이시아) 등은 재미와 실험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
△시네마스케이프와 필름메이커스포럼
-거장의 숨결과 신예의 패기를 느낀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만들어진 영화 중에서 관객들이 기다리던 거장들의 신작을 포함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젊은 감독들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거장들의 과감하고 치밀한 내러티브에 대한 도전과 인간의 욕망, 사회·정치적 부조리를 날카롭게 꿰뚫는 젊은 감독들의 시선과 숨결이 섞여 있다. 장편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까지 영역을 넓힌 것도 한 특징. 1948년 제작된 '체리나무 꼭대기에서'(감독 알베르트 브로센스)와 1949년 제작된 '식량공급자들'(감독 이찌엔 브루쎄) 등 2차세계대전 이후 10여년간 제작된 네덜란드 시네포엠 다큐멘터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쁨도 선사한다.
필름메이커스 포럼은 슬라보미르 이지악(폴란드)·캐롤린 샹페띠에(프랑스)·정일성(한국) 촬영감독을 주목했다.
△한국단편의 선택과 한국영화 '충돌과 지속', 한국영화축제
- 대폭 확대된 한국영화의 향연/한국영화 대폭 업그레이드
지난해 질적·양적 아쉬움을 떨어내듯 올해 영화제는 한국영화를 시네마스케이프 섹션에서 분리, '충돌과 지속'이라는 독립된 섹션으로 특화했다. 주류적 모순논리에 타협하지 않고 충돌하는 영화적 정신이 가득 담긴 작품들이다. '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들'(감독 안해룡) '마이 제너레이션'(감독 노동석) 등 제한적 여건 속에서 독립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27편의 영화들이다.
'한국단편의 선택: 비평가주간'은 '소리와 시선' '영화와 정치' '관계1' '관계2' '초이스' 등 5가지 테마를 설정, 18개의 작품을 소개한다. '야외상영-한국영화축제'는 올해 '고독이 몸부림칠 때'(감독 이수인)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 등 최근작 8편을 준비했다.
△쿠바영화 특별전과 ATG회고전
- 이국적 색채의 영화들을 만나는 시간
'쿠바영화 45년의 역사'와 '일본 독립 영화의 뿌리 ATG(Art Theater Guild)'는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전이다. 쿠바는 한때 예술산업 진흥원(ICAIC)을 통해 매년 1백5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했던 라틴아메리카 최대 영화의 나라. 서구에 처음 쿠바영화를 알린 '소이 쿠바'(감독 미하일), 대표적인 여성 영화 '테레사의 초상'(감독 파스토르 베가 토레스) 등 다큐멘터리와 단편에 이르는 17편의 영화들이 소개된다. 예술 영화 배급과 상영을 위해 1961년 시작된 ATG는 일본에서 독립영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쉽게 필름으로 접하기 힘든 테라야마 슈지의 '전원에 죽다', 요시다 기쥬의 '에로스 플러스 학살'등 11편의 작품을 만난다.
△불면의 밤과 영화궁전, 전주소니마주
- 특별한 매니아들이나 온 가족을 위한 배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경험하는 불면의 밤. 밤의 언어가 지닌 은폐와 폭로라는 양면성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모았다. '컬트, 몽환, 금기'라는 이름으로 올려질 세 차례의 심야상영은 컬트라는 이름의 문화적 현상을 파생시키는 영화들, 인간의 잠재적 공포와 성적 에너지,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체코애니메이션 영화들, 성적 에너지와 폭력성이 독특한 장치를 매개로 분출되는 막셀리의 퍼포먼스 등이 준비돼 있다.
'영화궁전'은 가족들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해리 포터 이후 어린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는 마술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마녀 비비'(감독 헤르민 훈트게부르스), 이탈리아와 일본의 가족 애니메이션 '오뽀뽀모즈'(감독 엔조달로) 등 덴마크·독일·영국·이탈리아 등 8개국에서 온 10편이다.
영화상영과 음악공연이라는 두 개의 움직임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전주-소니마주'는 판타스틱 리얼리즘이라는 독특한 표현 세계를 구축했던 게오르그 빌헬름 파브스트의 '방황하는 여자의 일기'와 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의 선두주자인 제르만 뒬락의 '미소 짓는 마담 브데'와 '조개와 성직자' 등의 무성영화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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