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명상칼럼] 한줄기 바람 인 것을 - 권이복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나는 한 줄기 바람이다. 한 줌 흙이다.

 

아홉 달을 태중에 머물다가 모진 진통 끝에 태어난 나는 그저 한줄기 바람 , 한 줌의 먼지 이다. 나의 어머니는 바로 이 한줄기 바람 , 한 줌 흙을 출산 하시고 그리도 기뻐하셨다. 그렇게 태어난 나 또한 그런 줄도 모르고 쉰 하고도 4년을 허우적거리며 살다 보니 오늘의 내가 되었다.

 

산다는 것! 참 힘든 일이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연극도 아니다 . 만일 연극이라면 결코 4막까지 끌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서막에서 막을 내렸으리라.

 

살아야만 했기에 , 그리고 막연한 희망에 속고 또 속으며 살다보니 오늘이 되었다. 한 해가 가고 또 한해를 맞이할 때마다 나는 소망했다 . 지난해는 그랬지만 새해엔 정말 잘될 것이라고. 그렇게 쉰 하고도 4년을 속고 살았다 .이젠 그만 속고 싶다. 아니, 그만 속아야 한다. 인정하자! 산다는 것, 다 그렇고 그런 것 임 을!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나 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는 이 엄연한 진실을.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 수 록 더더욱 안 좋아 지리라는 것을 .눈은 갈 수 록 더 어두워질 것이며 관절 삐걱거리는 소리는 더더욱 요란해지고 , 가픈 숨 더 힘들게 몰아쉬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나마의 움직임도 끝나고 그저 싸늘한 시체가 될 것임을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볼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1953년 3월 21일 새벽에 태어난 나는 그저 한 줌의 먼지였다는 사실을 .. 54년전 나의 어머니는 이 한줌의 먼지를 출산키 위해 그토록 몸부림 쳤고, 또 그렇게 좋아 했음을 .

 

 

많이 변했다. 그 팽팽하던 피부는 거칠어지고 탱크처럼 몰아붙이던 열정은 짚불처럼 사그라졌다 . 다들 어디로 갔는가. 이렇게 변하고 변하다가 한 줄기 바람 , 한 줌 먼지 되어 사라지는가. 이를 위해 그 모진 삶 견뎌 왔던가.

 

아!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않된다.

 

한 줄기 바람, 한 줌의 먼지 ! 이것이 나의 전부 일 수는 없다. 다른 그 무엇,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어도....그 무엇이 꼭 있어야 한다. 한 줌의 먼지! 진정 그 것이 나의 전부라면 ........ 이는 죽음 그 이상의 절망이 아닐 수 없다.. 결단코 그럴 수는 없다.

 

그런데 , 다행히 !,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제 서서히 , 가끔가끔 , 그 무엇- 또 다른 세계가 느껴진다. 지그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앉아 있노라면 , 또 다른 내가 감지된다. 눈, 코 귀 팔 다리 ........눈에 보이는 내가 아난 또 다른 내가 있어 나를 충만케 한다. 이 체험 , 이 깨달음은 깊은 평화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나! 한 줄기 바람, 한 줌 먼지로 변해가는 내안에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어 나는 참 좋다. 참 행복하다.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전북일보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대한민국 행정 중심엔 지방정부…모든 주민 만족할 성과 내달라”

정치일반대통령실 “감사원 정책감사 폐지…직권남용죄 엄격히 적용”

정치일반전북도, 복권기금 녹색자금 공모 3개 시·군 사업 선정… 국비 14억 확보

정치일반새만금개발청, 핵융합에너지 연구기지 경쟁력 모색

경제일반[건축신문고]건축설계변경, 언제까지 건축사가 안고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