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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황혼이혼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1999년)를 한두 해 앞둔 지난 1997년과 1998년,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문화에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당시 76세와 71세였던 김창자, 이시형 할머니가 남편의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여 이혼소송을 제기, 유교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순종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 온 할머니들이 '불평등한 삶'을 거부하며 이혼소송까지 불사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몸이 불편한 남편을 돕는 것은 아내의 도리" "지금까지 살았으니 해로하시라"는 등의 주문과 함께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까지 간 이 재판은 결국 1심판결대로 확정이 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성노인의 이혼할 권리'를 단순한 개인문제에서 사회문제, 나아가 여성인권문제로까지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른바 '할머니들의 반란'이라는 이 사상 첫 '노인이혼청구사건'은 오늘날 우리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온 동기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후 8~9년이 지난 요즘, 노인부부 이혼신청 건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증하고 있다. 이달 초 서울가정법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 1~7월까지 이혼신청 건수는 혼인기간 26년 이상이 전체(2천58건)의 19%(391건)로 1~3년의 9.4%, 1년미만의 4.1%를 크게 앞질렀다.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일수록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일반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고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큰 폭으로 추월해버린 것이다. 아마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일종의 용수철 현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보다 살기가 좀 낫다는 일본에서는 벌써 10여년 전부터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남편 정년 때까지 기다렸다가 퇴직금 나꿔채 갈라서는 황혼이혼 이야기는 이제 이야기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한다. 일본 남성노인들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면 은퇴한 50~60대 남편들을 구두 뒷굽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에 비유할까. 우리나라도 한가롭게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진작부터 퇴직한 남편들이 이사갈 때 짐보다 먼저 올라탄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는 것을 보면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들이여, 대체 무엇을 그리도 잘못하고 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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