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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새 밥을 헌 밥과 섞지 말라 - 김경일

김경일(원불교 중앙중도훈련원교무)

속담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도 ‘새 포도주는 묵은 포대에 담지 말라’는 말씀이 있고, 동학 경전에도 ‘새 밥을 헌 밥과 섞지 말라’는 교훈이 있다.

 

다사다난했던 병술년 한 해가 지나고 정해년 새해가 밝았다. 600년 만에 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해서 결혼과 출산 붐이 일 것이라고도 한다. 여하간 항상 새 해는 희망이 있어서 좋고 기대가 있어서 벅차다. 문제는 새 해의 희망이 며칠 반짝하고 사라지는 신기루여서는 안 된 다는 점이다. 진실로 내 삶을 온전하게 하고 새롭게 하며 거듭나게 하는 희망이라야 한다.

 

그러기로 하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지나간 일들을 정리하는 거다. 흘러가버린 과거의 시간을 붙잡고 있으면 새 밥을 헌 밥에 섞는 것과 같아서 금새 새 밥도 쉰밥이 된다. 지금이라도 유쾌하지 못한 기억은 지워버리고 새 해를 맞았으면 좋겠다. 아니 지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내려만 놓아도 좋다. 불교의 공(空)이란 이런 뜻이다. 그래야 진정 새 해를 맞는 의미가 있다. 부부간에 속상한 일, 사업하다 손해 본 일, 친구사이 의(義) 상한 일,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고통받은 일, 다 비워버리고 다 놓아 버리면 진실로 나에게 새 해가 온다. 새 맘이 되고 새 사람이 되고 새 천지가 된다. 새 희망이 가득하게 된다. 거듭남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좋은 일 조차도 차곡차곡 쟁여둘 이유가 없다. 옛날의 성공이 지금 무슨 대수인가. 내가 행한 선한 일도 마음에 오래 담아두면 그림자가 생긴다. 이 그림자가 변해서 교만이 되기도 하고 상(相)으로 변하기도 해서 내 인생을 뒤틀리게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과거지사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 묵은 선(善)에 가리면 새로운 선을 방해하고 지나간 경험에 갇히면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다. 내 마음의 기억 창고에 묵은 생각들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희망이 솟아 날 공간이 없게 된다. 새로운 생각을 가진다 한들 묵은 생각에 가리고 섞여서 결코 새로워 질 수가 없다. 새로운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되 죽은 사람과 진배없다. 살인(殺人)의 중죄를 범한 악인이라도 마음 한 번 새롭게 돌리면 새 사람이 되지마는 묵은 생각에 노예가 되어 마음에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그 마음이 살아나기 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대종경 요훈품12장)

 

세상에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묵은 그림자가 새 희망을 가로막고 있다.

 

Here and Now!

 

마음 한 번 챙겨서 이미 지나가버린 묵은 시간의 터널에서 벗어나면 지금 이 자리가 꽃자리요 황금돼지가 곳곳에 있다. 정해년 태양이 새롭고 하늘이 새롭고 땅이 새롭다. 나도 새롭고 너도 새롭고 희망이 새롭다.

 

오늘 첫 칼럼 인사와 함께 내 사랑하는 고향 전북 도민과 전북일보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정해년 새해 희망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김경일(원불교 중앙중도훈련원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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