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엽서한장] 한 소녀를 문학이라는 비밀의 정원에 이끌어 - 문찬미

문찬미(군산나루문학 회원)

그대 아직도 푸른 별을 헤매고 있나요? 잿빛 사진 속의 우울한 그 눈빛이 사춘기 소녀시절 광기로 다가왔던 게 엊그제 같네요. 그대 내쏘는 안광에서 느껴지던 소외와 단절의 아픔은 오래도록 내 심장에 머물러 있었지요.

 

꽤 난해한 당신의 소설들을 읽고 난 후, 때마침 싸르락거리며 내리던 첫눈을 기억합니다. 낡은 기와집의 깨진 유리창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난 유태인도 독일인도 아닌, 유대교도 기독교도 아닌, 아버지의 아들도 어머니의 아들도 아닌, 그러면서 일반인도 예술인도 아닌, 그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해 불안한 당신의 존재를 안타까워했지요.

 

프라하의 낡은 성벽 안엘 마치 물방울 속에 갇힌 사람처럼 굴러 들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소통의 부재와, 어떤 곳에도 안주할 수 없었던 어정쩡한 모습으로 인해, 발끝에서부터 차츰차츰 딱딱한 나무토막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그대의 망연함을 느껴봅니다. 고독한 이방인에게 혼절할 것 같은 동질감으로 괴로웠던 그 순간, 당신은 천진난만한 한 소녀를 문학이라는 비밀의 정원으로 이끌어가 주었지요.

 

밑바닥 삶의 애환과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타인들을 끝까지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켜봐야하는 현대인들의 비애(悲哀) 때문에 흑백 사진 속 당신의 얼굴엔 터져버린 동공처럼 붉은 피눈물이 흐르고 있군요.

 

네, 그 겨울날의 첫눈이 오늘 내리고 있습니다.

 

/문찬미(군산나루문학 회원)

 

전북일보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대한민국 행정 중심엔 지방정부…모든 주민 만족할 성과 내달라”

정치일반대통령실 “감사원 정책감사 폐지…직권남용죄 엄격히 적용”

정치일반전북도, 복권기금 녹색자금 공모 3개 시·군 사업 선정… 국비 14억 확보

정치일반새만금개발청, 핵융합에너지 연구기지 경쟁력 모색

경제일반[건축신문고]건축설계변경, 언제까지 건축사가 안고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