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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부모 성(姓) 함께 쓰는 이름

최근 2년간은 내 인생의 격변기이다. 에너지를 최대로 소모하고 있고 낭만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다. 저절로 잡념이 사라지니 다른 어느 때보다 삶의 방향성이 명료한 시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냐고? 어쩌면…. 한 인간을 만들어 탄생시켰으며 그 아이를 사람꼴로 만들어야 하는 양육자가 된 것이다.

 

아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름 지어주기였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니 의외로 작명소에서 아이의 이름을 짓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다소 놀라웠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부모의 특권이라 생각하고 임신 중에 이미 이름을 지어놓았으니 말이다. '즐거운'이라는 뜻의 한글이름 '라온'으로 낙점을 해놓고 태명으로도 열심히 불러주었다. 문제는 성(姓)이었다.

 

호주제 폐지로 이제는 아이의 성(姓)이 반드시 아버지의 성일 필요는 없으니 참 많이 변했다. 그래도 아이에게 어머니의 성을 붙여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 당시 부부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 절차도 복잡하고 사회적 분위기도 아직 정착되지 않아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호주제 폐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결혼을 했으니 남편의 성(姓)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대안으로 우리는 부모성(姓)을 함께 붙이기로 해서 거창한 이름 '장정라온'이 만들어졌다.

 

부모성을 함께 쓰는 아이들이 내 주변에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아빠 성이 '정', 엄마 성이 '한' 이라면 '정한'처럼 엄마의 성이 곧 이름이 되어 두자인 이름이 있는가 하면, 석자의 이름을 고수해서 '정한나'(성은 정, 이름은 한나) 정도로 엄마성과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이다. 서류상 엄마 성(姓)은 어차피 이름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은 엄마의 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게 타협을 한 경우이다. 이것도 현명한 방법이긴 하나 '라온'이라는 멋진 이름을 버릴 수가 없었으니 넉자이름에다 부자연스런 어감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이름을 말해주면 대개 세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첫째는, 본인이 잘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재차 묻는 사람. 두 번째는, 잘 알아들었으나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람. 세 번째는, 이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 세 부류 중에 내가 일단 경계하는 사람은 바로 두 번째 경우이다. 이들은 아이 이름에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부모성을 함께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기분은 '내 아이에게 나의 가치관을 무리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소심한 내 마음의 투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을까? 아이의 친가보다 외가에서 반대의 뜻을 잠깐 보이긴 했으나 가족들은 쉽게 인정을 해주고 조카들은 자기 이름도 넉자로 하고 싶다는 천진한 대꾸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1차 관문을 통과했다면 이제는 사회화 과정 속에서 아이가 이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그러나 동지가 있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면서 그 염려가 반감되고 있다. 문의를 위해 방문한 어느 어린이집 선생님은 A4용지 다섯 장을 빽빽이 채워서 시댁을 설득시킨 끝에 아이에게 부모성을 함께 쓰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또 "요즘 부모성을 함께 쓰는 아이가 많은가 보다. 여기 약국 다니는 아이 중에 김조○△라는 아이가 있다"라고 아는 척해주는 약사의 말에서도 보이지 않는 동지의 존재가 느껴졌다. 작은 지역사회에서 벌써 두 명의 동지를 발견했으니 앞으로 더 많은 동지를 얻게 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이름 하나를 이렇게 길게 설명하게 된 연유는 많은 사람들이 '부모 성 함께 쓰는 이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아버지가 아이에게 "너는 역시 장씨 딸이다"라고 말할 때, 굳이 "정씨의 딸이기도 합니다"라는 유치한 말대꾸 없이도 나의 아이라는 존재감이 저절로 각인되는 강점이 있으니 '부모성 함께 쓰는 이름'을 권하고 싶다.

 

/정한나도(이리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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