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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말의 홍수 속에서 - 김병종

김병종(서울대교수·화가)

 

여행이 잦다보니 국, 내외에서 많은 탈것들을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기차든 버스든 내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목적지까지 조용히 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속도나 안전성 못지않게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유지하며 갈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이것이 깨져버리면 여행은 잡치게 되고 자연 그 뒤의 스케줄도 엉망이 되어버린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에 조용히 갈 수 있는가를 늘 예의 주시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주의를 기울인다고 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로선 그저 사람들이 뜸한 한가한 시간을 골라 타는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이르거나 늦은 한가한시간이면 좀더 조용히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사실은 불확실한 확률에의 기대인 것이다. 어느 해던가 지방에 갔다가 일부러 아침 일찍 첫 고속버tm를 탔는데 그 버스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차안이 텅텅 빈 것 까지는 내 기대에 맞았다. 승객이래야 통틀어 대여섯 명이 될까 말까했을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 젊은 여인이 차에 오르며 바로 내 뒷자리의 동년배 여인을 보고 반색을 했던 것이다. "어머 얘!" 하고 깜작 반가와 하는 것으로 보아 몇 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생쯤 되는 것 같았다. 이 후 두 여인의 수다는 장장 네 시간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중간 중간 두 사람이 번갈아 핸드폰 받는 것 까지를 포함하자면 그야말로 숨쉬는 시간을 빼고서는 거의 쉴 새 없이 폭포수 같은 말들이 섞여져 나왔던 것이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대책 없이 그녀들의 말소리는 귓전을 때리고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나는 그녀들의 이런저런 집안사정이며 처한 상황까지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각각 중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였는데 교사에 대한 반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내용들과 욕설에 가까운 표현들이 두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삼십년 가까이나 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조용히 무서리가 내린 창밖의 가을 풍경을 감상하며 가려했던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놀라운 것은 그녀들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입심이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덜컹, 차가 목적지에 도착 했을 때 내 귀에 들려온 소리였다. "어머! 얘기도 다 못했는데 벌써 와버렸네 자세한 것은 전화로 말하자."

 

이 일후 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형편은 별로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각양각색의 진화된 핸드폰 보급률은 무섭게 증폭되고, 이제는 소음뿐 아니라 밤에도 그 핸드폰들이 토해내는 불빛들로 인해 시각공해 또한 만만치가 않다. 차안이건 터미널이건 호텔이건 광장이건 길에서건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핸드폰에 매달려 그 작은 기계를 향해 말을 쏟아 놓는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말의 홍수를 피하기 위해서는 작심하고 산사에라도 틀어박혀야 될 형편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많은 거품 같은 말들 속에서 정작 가슴으로 오는 말들은 별로 없다는데 있다. 위로의 말 , 기쁨의 말, 격려의 말, 그림움의 말 그리고 사랑의 말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말의 홍수 속에서 말의 빈곤을 느낀다. 말없이도 고요한 눈빛과 은은한 미소 속에서 정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김병종(서울대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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