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나' 아닌 '나머지'의 이야기들을 들추다

"우리는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겨우 한 귀퉁이 정도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나머지는 누가 보는 것일까? 그 나머지의 공간, 그 나머지의 경험, 그 나머지의 이야기들은 어디를 떠돌게 되는 것일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소설가 윤성희(37) 씨가 등단 11년 만에 첫 장편 '구경꾼들'(문학동네)을 펴냈다. 소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까지 함께 사는 '나'가 말하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나'의 입으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대가족이 파란만장하고 극적인 삶을 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 펼쳐진다. 이 소설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스쳐 지나가는 보통 사람들의 진짜 삶의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쉽고 진솔한 문장으로 깨알처럼 촘촘히 되살린다.

 

소설은 아버지가 어릴 때 아이스박스에 이틀이나 갇혔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하면서 시작한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그러니 '나'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아이스박스 이야기는 아버지의 프러포즈가 되고, 이는 하루에 백 개씩 돼지족발을 썰면서 홀로 어머니를 키운 외할머니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와 가족의 이야기에서 수없이 많은 줄기가 뻗어나간다. 온 가족의 바다 여행을 떠나면서는 가족이 타고 간 봉고를 빌려준 아버지의 회사 동료 김 대리의 사연이 가지를 치고, 외할머니가 일출을 보다 우연히 만난 침낭 속 소녀의 이야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주인공이다. 저마다 사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감칠맛 나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어느새 따뜻한 감동이 솟아난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 잠이 들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옆에 서 있는 나를 꼭 껴안으며 자주 업어줄걸, 하고 생각했다. 업어 키우면 다리가 휜다는 기사를 읽은 후 어머니는 나를 거의 업어주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대신 자주 안아줬잖아요, 하고 대답했다."(56-57쪽)

 

작가가 "삶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냥 어리둥절해하는 일은 아닐까"라며 "미로를 헤매다보면 뭔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될 것이라며 쓴 이 소설에서, '나'는 그렇게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어른이 돼간다.

 

312쪽. 1만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대한민국 행정 중심엔 지방정부…모든 주민 만족할 성과 내달라”

정치일반대통령실 “감사원 정책감사 폐지…직권남용죄 엄격히 적용”

정치일반전북도, 복권기금 녹색자금 공모 3개 시·군 사업 선정… 국비 14억 확보

정치일반새만금개발청, 핵융합에너지 연구기지 경쟁력 모색

경제일반[건축신문고]건축설계변경, 언제까지 건축사가 안고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