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삶의 감동, 아름다운 노래로 꽃 피우다
31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가곡의 왕' 슈베르트 (1797-1828)! 그는 클래식에 귀한 음악들을 남겨 삶의 품위를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으니,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값지고 보람 있는 삶이었다. 언어와 소리, 시와 음악을 예술적으로 조화시켜 독일의 전통적인 대중노래 리트를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곡으로 승화시킨 슈베르트! 낭만가곡의 첫 대가이고 가곡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음악에 훌륭한 작품들을 남긴 그의 음악에는 애틋한 사랑과 진한 우정이 가득 배어있다.
오스트리아 빈 근교 리히텐탈에서 태어난 슈베르트는 교장선생님이던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음악을 일찍부터 접할 수 있었다. 여덟 살에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큰 형에게는 피아노를 배웠고, 교구 교회 오르가니스트인 미하엘 홀저에게 오르간도 배웠다. 그는 슈타트 콘빅트에 입학해 모차르트의 라이벌로 가끔 얘기됐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1750-1825)를 위시한 음악가들에게 음악이론과 피아노, 바이올린, 오르간 등을 배웠다. 무상으로 최상의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일찍부터 음악에 천재성를 보인 슈베르트는 콘빅트 2년째인 13세에 작곡을 시작해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 '환상곡 사장조, Fantasie, G'를 비롯해 5년간 최초의 서곡과 교향곡 2번, 3번, 쉴러의 시에 의한 가곡 '소녀의 슬픔' 등 140여 곡을 작곡했다. 그곳에서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던 슈베르트는 일생의 귀중한 친구가 되는 슈파운(1788-1865)도 만났다. 콘빅트에서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고 있던 슈파운은 슈베르트와 친해진 후 슈베르트에게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아끼지 않는 선배이자 친구로서 슈베르트의 음악생활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열여섯 살 변성기가 되자 슈베르트는 콘빅트를 떠나 아버지가 교장인 초등학교의 보조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음악가의 생활을 원하지 않은 아버지의 종용에 의해서였다. 여기서 슈베르트는 첫사랑 테레제 그로프(1798-1875)와 사랑에 빠진다. 수줍어 말은 못했지만 밀려오는 사랑의 영감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노래들을 작곡하게 되니 무려 150여 곡이 넘었다. 첫사랑 테레제 그로프는 슈베르트보다 한 살 아래였고 온화한 성품이었으며 매력적인 소프라노였다. 슈베르트가 열일곱 살 때 함께 다니던 성당 리히텐탈 성당(현재는 슈베르트성당)에서 자신의 작품 '오케스트라를 위한 바장조 미사(Mass no.1, F·1814)'를 연주할 때 테레제 그로프는 소프라노를, 형은 오르간을 그리고 슈베르트는 지휘를 맡아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그렇게 가까워진 두 사람이 터놓고 사귀기 시작하니 슈베르트는 자신의 작품을 들고 그녀의 집에 가서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며 즐거움을 나누었다. 슈베르트가 작곡에 전념하고 싶어 3년 만에 교직을 그만두게 되니 안정된 생활을 바라는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부잣집 제과점 주인과 결혼시켰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애인이 떠나고 나니 어찌 회한이 없으리.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그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녀만큼 착하고 훌륭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슈베르트는 훗날 친구에게 그렇게 털어놓았다. "매일 밤 괴테의 시를 읽고 그 감동을 음악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면서 아침이면 학교에 나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마음의 평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럼 음악을 위해 사랑을 접은 셈인가? 음악 천재 슈베르트는 그래서 평생 독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슈베르트의 두 번째 사랑으로 카롤리네 에스테르하치(1805-1851)를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헝가리 첼레스 궁 요한 칼 에스테르하치 백작의 딸로서 슈베르트가 초빙되어 몇 개월 정도 가르친 적이 있는 여인이다. 슈베르트는 그녀에게 노래와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자신이 작곡한 연탄곡(한 피아노에 둘이 함께 앉아서 치는 곡)을 함께 연주하며 사랑을 느꼈었던 것 같다는 얘기다. 슈베르트가 그 곳을 떠난 후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두번째 사랑은 추측일 뿐이겠다. 정서 충만한 젊음은 풋사랑 싶기도 하다. 사랑에는 운이 없었던 슈베르트지만 우정에는 행운아였던 게 분명하다.
/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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