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라도 생활…전북지역 우국지사·유학자들 초상 화폭에 오롯이
우리 화단에서 초상화의 전통을 계승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는 작가와 작품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역사 인물화에 대한 무관심마저 당연한 시대적 조류로 받아들이기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이런 점에서 500년의 조선 역사가 무너지고, 일제강점기라는 고단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전통회화의 고유한 정신과 화법을 계승해온 어진화가 채용신(蔡龍臣·1850∼1941)의 노력은 근대 한국 미술의 역사를 곧추세우는 일이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곽동석)이 석지 채용신의 서거 70주년을 맞이해 특별전 '석지 채용신, 붓으로 사람을 만나다'를 열고 있다. 채용신은 초상화뿐만 아니라, 산수화, 화조화, 영모화 등에서도 빼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하지만, 그에 대한 주된 예술적 평가는 역시 초상화 작품을 통해서다. 이번 특별전에는 개인 소장 초상화, 미공개 작품 9점 등 총 40여 점을 선보인다. 채용신이 화가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고종에 의해 어진화가로 발탁 돼 태조를 비롯해 7조 어진을 모사하면서부터지만, 직업화가로서의 삶은 정산군수를 끝으로 관직을 떠나 전라도를 거점으로 약 30년간 작품 제작에 전력을 다하면서다. 특히 '화폭에 담은 전라도 사람들'에서는 그가 혼돈의 시기에 만난 의병활동이나 항일 투쟁의 의지를 표명한 우국지사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간제 전우, 석전 황욱의 조부 황종윤등의 초상은 살갗의 작은 주름을 칼날처럼 가는 붓으로 일일이 그렸을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높지만, 그들이 보인 우국충정의 정신성을 귀감으로 삼고자 했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 의미가 더 깊다. 후일 제작한 초상화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상가 이외도 재력가나 일반인까지 다양한 계층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신분적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시대 초상화 작품들은 완전한 정면을 피한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해 그의 작품은 관람자를 똑바로 응시하는 자세가 특징. 또한 얼굴 묘사는 전통적으로 이어온 배채법 위에 서양화법과 근대 사진술 가미한 '채석지필법'이라는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기도 했다.
전시 기간 중 토요 명사 특강'석지 채용신의 삶과 예술세계(26일)'을 주제로 한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의 특강과 '큐레이터와의 대화(3월 5·19일)'도 준비된다.
곽동석 관장은 "서울 화단에서 활약하지 않았고, 도화서 화원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진화가이자 최다초상화가였던 채용신은 국내에서는 최근까지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아직까지도 국내 미술계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뒤늦게나마 그의 예술혼을 조명할 수 있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 '석지 채용신, 붓으로 사람을 만나다'= 15일~3월27일 국립전주박물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