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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당신이 보고 싶어하던 작품 올립니다"

한국화가 이양자씨 서울서 개인전 '2011 고독이 머문 자리'

세상에 의미없는 고통은 없다. 5일 기자와 만난 한국화가 오송(吾松) 이양자 선생(66)은 부군과의 추억이 많은 만큼 눈물도 그치지가 않는다고 했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부군 소산 양한승은 자신의 스승이었기에 훌륭한 '지도'를 잃어버린 느낌이라고 전했다. 지난 겨울은 몹시나 쓸쓸했다. 그럴 때마다 붓을 쥐었다. 붓만 쥐면 복잡한 머릿 속이 말끔하게 정리가 됐다. 개인전 '고독이 머문 자리'는 그렇게 마련됐다. 문인화 화조화 등 150여 점은 새롭게 벼린 작품들이다.

 

"부군이 돌아가신후 14개월간 두문불출하고 그린 거에요. 여전히 슬프니까…. 죽으려고 (?) 용쓰는 여자로 보일 것도 같아요. (웃음)"

 

이 개성 넘치는 예인은 삶 자체가 '예술기행'이다. 1966년 스물 두 살에 강암 문하에 입문해 문인화와 서예를 익히고 도전과 국전에서 수상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강암 선생을 두고 "너무 근엄하여 틈도 보이지 않았으나 조용필의 '허공'이 들을 만 하다고 부를 줄 아느냐 묻는, 전통과 현대 예술의 조화 뿐만 아니라 대중예술까지도 아끼는 소탈하고 멋진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나이 마흔에는 대만 국립사범대학 미술학부에 입학해 채색화도 익혔다. 뒤늦은 나이에도 아시아의 대화가이며 대만 사범대학 석좌 교수인 임옥산 선생에게 사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만의'채색 한국화'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그는 무용에도 일가를 이뤘다. 도내 몇 안 되는 호남 살풀이 이수자. 유방암과 싸우면서도 춤의 가락을 놓지 않았다. 최승범 고하문학관 관장의 권유로 가야금까지 익히면서 쉼없이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싶어했다.

 

"자기 신명으로 춤추는 사람처럼, 뭐든 뜨거운 열정이 없으면 안돼요. 우리 아버지(남편)는 한번도 나를 덮어두고 칭찬한 적이 없었습니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작가라면 500점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이제서야 아버지가 내 준 숙제를 한 것 같습니다."

 

한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 단행문도 출간한다. 그러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참 묘하다고 했다.

 

"(글을 쓰려면) 재능도 필요하고, 노력도 있어야 하고, 지식도 있어야 하고, 신념도 있어야 하죠. 그런데 재능, 노력, 지식, 신념 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또한 글쓰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이 어려운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그 위에 조금은 운명도 겹쳐야 되지 않는가 생각해요."

 

▲ 한국화가 이양자 개인전 '2011 고독이 머문 자리' = 13일~19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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