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보육원 원생들 쉴 틈 없는 맹연습 / 지도강사들 박자 보조·자세 교정 분주 / 청소년 문화복지 차원 기획 1년반 준비
가로등이 드물어 어두운 동네에 적막을 깨는 국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2일 오후 7시30분에 찾은 전주시 효자동 삼성보육원. 마당 왼편에 들어선 연습실에서는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박지중 지도위원의 지휘로 초3에서 고1까지의 원생으로 구성된 바람꽃 국악오케스트라(이하 바람꽃)가 ‘아리랑 접속곡’을 맹연습하고 있었다.
“자, 리타르단도(ritardando)는 느리게 잖아. 103번 마디는 알레그레토(allegretto)로 다시!”
오는 6일 공연을 앞둔 30명은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악보와 지휘자를 응시하며, 고사리 손으로 가야금을 뜯고 해금을 켜고 피리를 불었다. 지도강사로 나선 국악원 단원들은 옆에서 뒤에서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주고 박자를 보조했다.
맨 뒤 꽹과리, 장구, 징, 북을 치는 타악 4인방은 쉬는 시간에도 간식과 잡담을 뒤로 했다. 공연이 며칠 남지 않아 선생님의 마음이 더욱 바빴다. 공연의 첫 순서가 사물놀이인 만큼 아이들도 선생님의 뜻을 헤아렸다. 타악 4인방은 국악원 김인두 단원의 지도 아래 군말없이 상기된 얼굴로 연습에 열을 올렸다.
아쟁으로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힌 정모 양(중1)은 “공연을 생각하면 떨리고 긴장감도 100%다”면서 “각자 연습한 곡을 서로 맞춰보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악을 잘 몰랐는데 신선했다”며 “선생님들이 가르친 보람을 느끼도록 멋진 공연을 보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거문고를 타는 김모 군(초4)은 “처음에 판소리를 하다 거문고로 바꿨는데 소리가 다양해서 좋다”며 “최고의 공연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국악판 ‘엘 시스테마(El Sistema)’인 바람꽃이 오는 6일 오후 7시 전주전통문화관 한벽극장에서 ‘무지개를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창단공연 및 제1회 정기공연을 연다. 공연은 전북도립국악원, 전주삼성보육원이 주관하고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전주공장위원회, 바람꽃 국악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모임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홍보물 인쇄, 공연장 대관, 악기 운반 등 십시일반 도움도 보태졌다. 사회도 전북CBS 김연옥 아나운서의 재능기부로 진행된다. 공연장 객석에서는 관객의 깜짝 공연과 선물도 예정됐다.
이날 바람꽃은 12명의 국악원 강사와 함께 무대에 올라 사물놀이, 창작무용 ‘풍경’, 판소리 흥부가, 창작무용 ‘향’, 국악관현악 ‘아리랑 접속곡’, 국악관현악과 국악가요 ‘흥부놀부, 오나라, 산도깨비’ , 국악관현악 ‘타’를 선사한다.
바람꽃은 지난 2011년 5월 처음 제안됐다. 현대차 노조와 국악원 노조의 연계로 7개월의 논의 끝에 지난해 2월 현대차의 노사공동기금 5000만 원으로 시작했다. 문화복지와 전통예술 발전이라는 대의와 함께 클래식 음악교육으로 빈민층 청소년에게 꿈과 의지를 심은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모델로 했다. 국내 사회단체와 기업이 다양하게 따라하고 있지만 국악은 전국 최초로 지난해 8월 바람꽃이 창단됐다.
국악원 단원들과 아이들은 1년6개월간 매주 만나며 마음을 여는데 1년을 보냈다. 단원들은 상처를 품고 사는 아이들과 교감을 위해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했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아이들은 가르치는 만큼 따라오지 못해 갈등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시간이 추억이 됐다.
박지중 지도위원은 “처음에는 서로의 마음을 잘 몰라 힘들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그냥 귀엽고 예쁘다”며 “연주 곡의 난도도 높은데 얘들의 실력도 몰라보게 늘었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김종균 단원은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를 보고 오히려 힘을 받았다”면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이 아닌 아이들이 세상의 주체로 당당히 도약하는 것을 축하하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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