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시인이 자신을 키운 것의 8할이 바람이었다는 것처럼, 한국화가 김병종 교수(61·서울대 미술대)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형성시킨 것의 6~7할은 ‘고향의 정서’라고 했다. 어린 시절 지리산의 푸르고 억센 야생에서 받아들인 부성적인 강인함과, 산자락을 휘도는 섬진강이 준 모성적 푸근함이 자연스레 그의 작품세계에 투영된 것을 두고서다. 그는 학교를 마친 후 쏘다녔던 끝없이 펼쳐진 지리산 자락의 자운영 밭이 그의 원초적 색채체험의 인자가 됐다고 지난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남원 출신으로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연 김병종 교수. 자신의 예술을 키운 고향을 늘 마음에 그리움을 품고 지내온 그가 40여년 시간을 돌아 고향에 작품을 풀어놓는다.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전(10일부터 2월 22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전주 교동아트미술관·교동스튜디오에서는 7일부터). 그의 작품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부터 EC대사관·캐나다 온타리오미술관·런던의 대영박물관 등에 소장됐지만, 고향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국내외 유명 미술관 등에서 느낄 수 없는 또다른 감동과 의미를 부여받을 것 같다.
전북일보가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전북도립미술관과 함께 마련한 ‘김병종 회향(回鄕)전’은 80년대부터‘생명의 노래’‘바보 예수’ ‘화첩기행’ 등의 연작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김병종의 어제와 오늘을 망라한 자리다.
김병종 교수의 예술세계는 미술평론가들에 의해 여러 측면에서 조명됐으며, 공통적인 주제로 관통하는 게 ‘생명’이다. 김 교수에게 파격과 혁신의 의미로‘무고(無古)’라는 호를 달아준 도올 김용옥은 “우리 예술과 지성의 심장부에 김병종과 같은 자유혼의 세계가 튼튼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동학 후학들과 더불어 기뻐할 뿐이다”고 1989년 첫 개인전 ‘바보예수’전에 붙였다. 권영걸(서울대 미대 교수)은 ‘지적 표현주의’로 보았으며, 이재언은 ‘자연과 자유의 들녘에 선 서정시인’으로, 김종근은‘인간과 자연의 서정적 형상화’로, 이주현(미술평론가)은 ‘추억과 향수, 동경과 희망으로 충만한, 생명의 못’으로 비유했다. 김영재는 ‘우리 콘텍스트를 싣는 제 3흐름의 주역’으로 평가했으며, 윤상훈은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연 주역’으로 평가했다.
“자연과 생명의 화가 김병종을 먹과 색채의 시인으로 부르고 싶다. 언어의 날줄과 씨줄을 엮어 시를 짓는 시인처럼 그는 붓 한자루로 연달아 매력적인 생명의 절창들을 쏟아낸다. 지난 30년간 김병종의 그림에는 종교적 휴머니즘과 평화, 그리고 분출하는 생명 에너지와 낯선 곳의 서정, 훈훈한 울림, 그리고 숨죽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왔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섬세하고 잔잔하게 현의 울림처럼 붓을 당겨 ‘바보 예수’‘생명의 노래’‘길 위에서’연작을 지어내왔다. 그 만의 일관된 인문적 서정성과 손맛을 보여주고 있다.”(미술평론가 윤상훈).
윤상훈은 또 “김병종의 작품은 힘차고 화사하면서도 아름답고 따뜻한 그 세계가 날개를 한껏 펴고 고향 산천 쪽을 향해 날아가는 그의 그림속 학처럼. 모악산을 굽어보는 전북 도립미술관의 다섯 개 대형전시실을 가득채울 그의 생명찬가가 들판과 골짜기마다 퍼져나갈 것이다”고 했다.
전시회 주인공은 “내 작품세계는 10년을 주기로 변화되어 왔다. ‘바보예수’에서 ‘생명의 노래’로 그리고 요새는 다시 ‘길 위에서’ 시리즈로 전하고 있다. 기법적으로는 먹 인물화에서 황갈색의 숲 시리즈와 분청빛의 물시리즈로, 그러다가 화려한 여행 시리즈와 장엄한 우리 산수와 꽃 시리즈로 선회한 것 같다.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이를 내 나름대로의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번 회향전에서는 그의 작품 ‘바보예수’에서부터 최근작 ‘길 위에서’연작까지 총 160여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회 오픈식은 10일 오후 3시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오픈식에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기념 강연과 안숙선 명창의 기념공연이 열린다.
● 김병종 교수는
40대에 서울대 미술대 학장을 지낸 김병종 교수는 문(文)을 겸비한 화가다. 남원 용성중을 졸업한 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 시와 산문, 소설 등으로 서울대문학상을 휩쓸었으며, 희곡 10여편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80년과 81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과 희곡으로 당선됐으며, 대한민국 문학상·삼성문화재단 저작상 등을 받았다.
예술의 도시 파리 등 유럽과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여회의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대영박물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미술상, 선미술상, 한국미술작가상, 기독문화대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일반에게도 널리 읽힌 스테디셀러인‘김병종의 화첩기행 1-4권’을 비롯, ‘중국회화연구’‘화혼을 불사르고’‘바보예수’‘생명의 노래’‘라틴화첩기행’등 10여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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