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인드라망서 그림인생 풀어놔
“지난 1980년 동아미술상을 수상했을 때 어떤 기자가 신진 작가인 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누구랑 비슷한 그림’이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듬해 한국현대수묵화전에는 점(點)을 버리고 새로운 작품을 출품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기분 나빴는데 지금은 자극을 줘서 고맙게 여깁니다.”
전북대 이철량 교수(62)가 지난 7일 전주시 효자동3가 갤러리 인드라망에서 열린 ‘노블리제 갤러리 파티’에서 ‘수묵의 향기와 그 매력 속으로’라는 주제로 자신의 그림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천착하는 연작 ‘도시(city)’에 대해 “현재 도시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자 그리기 시작했다”며 “실제 고층 옥상에서 보면 건물, 차, 전깃줄 등이 얽히고설킨 너저분한 모습이다”고 말했다.
도시 연작 가운데 하얀 바탕의 가로 1m가 넘는 대작 안에는 수만, 수십만을 헤아릴 수 없는 검은 붓칠이 가득하다. 먹가루를 기름에 섞어 써 화선지의 먹처럼 퍼지지 않아 색이 분명하다. 제목처럼 인공물의 번잡함이 가득한 가운데 인간의 형체는 작은 여백에 숨겨져 있다. 현대인의 실존적 자화상이라는 풀이에 앞서 그림이 주는 응축된 수묵의 힘이 묵직하다.
최근에는 하얀 바탕에서 벗어나 노랗고 알록달록한 캔버스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그는 도시 연작 이전에는 ‘신시(holy city)’라는 주제로 작업했다.
이 교수는 “대학시절과 대학 교수가 되서도 학내에는 데모가 한창이었다”며 “사회 현실을 보면서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사는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들려주었다.
그가 새로운 형식의 수묵을 시도한 데는 절실함도 작용했다. 군 시절 먹고 살 거리를 궁리하다 할 수 있는 게 그림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다. 자신의 전공인 동양화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집중했다. 답은 수묵과 새로움이었다.
“유명해지면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고 그러면 과감하고 낯선 것을 해야 했죠. 제대 뒤 혼자 선도 긋도 사군자도 그리면서 먹에 대한 이해를 했습니다.”
새로움을 찾는 그가 먼저 한 작업은 동양화적인 것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여백, 안개 등을 제외하고 선(線)이 남았다.
이 교수는 “명암이 있는 면은 서양화의 특성이고, 동양화는 살아있는 생명을 드러내는데 사유의 결과로 선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날 작품이 비슷비슷한 것 같다는 청중의 물음에 이 교수는 “그림은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작가의 일관된 형식은 오랜 시간 동안 고심의 흔적인 만큼 중요하다”면서도 “재료의 단순함을 뛰어 넘는 게 동양화의 어려움이다”고 답했다.
그는 “현대적인 스타일의 수묵화는 단순·요약에 집중하다보니 비슷한 느낌이 드는 함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바람은 영원히 남는 작품을 그리는 것이다. 그는 “다시 불려지는 배호·김광석의 노래처럼 시대를 아우르는 정서를 담을 수 있는 그림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순창 출생인 그는 홍익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0년대 수묵화운동의 중심 작가로 활약했다. 1980년 동아미술상, 2010년 한국미술작가 대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