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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만의 노고단 산행

어버이날 특별 이벤트로 부모님 고향 나들이 길에 정령치까지 18㎞ 강행군

▲ 김희관 대전고검장
2014년 5월 4일 아침 일찍 화엄사를 출발, 노고단을 향해 산행을 떠났다. 중학교 2학년때 보이스카웃 단원들과 함께 걸었던 그 길. 38년만에 기억속에 아득한 그 길을 어느덧 50대 초반의 중년의 몸이 된 필자는 다시 올라갔다. 초입부터 내내 길동무가 되어 준 계곡의 물소리, 알알이 맺힌 땀방울을 말려주는 싱그러운 바람의 손놀림, 굽이굽이 길섶마다 각양각색의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향연. 5월의 신록은 어느 수필가의 표현대로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살 청신한 얼굴”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리산의 대자연은 조물주의 위대함과 오묘한 솜씨를 소리높여 찬양하고 있었다.

 

38년전의 노고단 등반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날 정도로 힘든 산행이었다. 요즘은 지리산 전역에서 비박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텐트에다가 며칠치 먹거리까지 싸들고 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어른들도 힘든 화엄사-노고단 코스를 집채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지금이야 등산을 즐겨하지만, 10년전까지만 해도 등산 모임이라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어떻게든지 가지 않으려 했던 것도 중2때 산행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힘들어 하던 코스를 이번에 혼자서 가뿐히 올랐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내친 김에 노고단-성삼재-만복대-정령치까지 10킬로미터가 넘는 산행을 계속 이어갔다. 총 18킬로미터가 넘는 강행군이었다. 작년 8월 직장동료들과 함께 2박3일에 걸쳐 성삼재-노고단-반야봉-벽소령-장터목-천왕봉-중산리 코스를 등정한 데 이은 또 하나의 쾌거였다. 개인적으로는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16좌를 등정한 것 만큼이나 대견스러운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이번 연휴기간 동안 여행길에 나서게 된 것은 올해 팔순을 맞는 어머니의 친정 집안 행사가 부모님의 고향인 전남 구례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길동무가 되어 모시겠다는 필자의 제안에 부모님들은 큰 아들 힘들까봐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내심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구례 화엄사 부근 숙소에서 2박3일동안 셋이서 한방을 쓰면서 부모님과 모처럼 살갑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5월 5일에는 아버지와 지리산 계곡을 따라 난 오솔길을 나란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82세지만 지금도 매일 탁구를 1시간 이상 치셔도 거뜬할 정도로 건강하신 아버지시다.

 

부모님은 구례 여행을 마치시고 대전 사택에서 하루 더 주무신 다음 5월 6일 서울로 떠나셨다. 출발하기 직전 어버이날 선물로 두 분만을 위한 “특별 이벤트”를 해드렸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가 두 분의 발을 차례로 씻어 드렸다. 7~8년 전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매년 한번 정도는 부모님 발을 씻겨 드리고 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됐다 하시고, 어머니는 쑥스러워 하신다. 그래도 반강제로 세족식을 마쳤다. 어색함 속에서도 두 분의 얼굴에서 흐뭇함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부모님. 두 분께 고맙기 그지 없고, 이런 훌륭한 부모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4일간의 황금연휴를 부모님과 보내도록 허락, 아니 먼저 나서 그런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적극 권유한 아내에게도 감사하다. 아무래도 이번 지리산 기행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될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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