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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이기는 힘

▲ 곽병창 우석대 교수
올 한 해는 유난히 절망할 일이 많았다. 정부에 대한 절망, 이웃에 대한 절망, 개인의 성취 가능성에 대한 절망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전반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진다. 굳이 내 곁에 닥친 불행이 아닐지라도 절망하는 인간들 틈에 끼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 절망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것이 세상 이치이다. 이념을 따지지 않아도 신을 들먹이지 않아도 슬픔에 잠긴 이웃들 곁에서 희희낙락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됨을 비웃고 내다버린 세상

 

그런 의미에서 올해 우리가 느끼는 절망감은 그 깊이가 다르다. 우리는 지금 숫자로 가늠하기 어려운 절망의 구렁텅이를 지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절망감의 맨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절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못 견디게 억울하고 험한 꼴을 당해도 인간은 인간을 의지하며 살아남아왔다. 우리는 이웃의 시선으로부터 위로받고 막다른 벽 앞에서도 그들의 말 한 마디 손짓 하나로 살아남을 힘을 얻는 존재들이다. 돌아보면 신에게 간절히 매달리는 이들조차도 광야에서 홀로 기도하게 되는 상황을 최악의 상황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홀로 동떨어져 있는 시간이야말로 사탄들이 창궐하는 세상이고 인간과 신 모두를 부정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절망하는 이들, 저들이 견뎌야 하는 시간이야말로 지옥의 시간이고 짐승들의 시간이다. 올해 우리는 그 시간들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자식을 잃고 밥을 굶으며 울부짖는 이들 곁에서 치킨을 시켜먹으며 낄낄거리는 저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그럴 듯한 말로 저들의 행위에 은근슬쩍 면죄부를 주려는 숱한 지식인들, 그 악마의 나팔수들을 목격하였다. 대낮에 거리를 누비는 저들 살아있는 좀비들의 세상에서 우리는 절망한다.

 

그래도 하소연할 데는 국가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도대체 국가는 무엇이며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힘없는 이들은 여기저기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나가는데 왜 죽었는지 따져 물으면 어느 사이 경제를 좀먹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내몰린다. 만성적인 실업에 기껏해야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이들이 치솟는 전세값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제 숨통을 조르고 사라져 가도, 이 거대한 세상은 이제 눈 하나 꿈쩍 않는다. 내가 당하지 않았으면 그뿐, 내 식구가 평안하면 그뿐이다. 인간들의 세상은 먹고 마시고 아귀다툼을 벌이며 돈에 핏발 선 이들의 행렬로 뒤덮인 지 오래되었다.

 

이긴 자들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약한 존재들을 대변한다던 자들은 감감 무소식이다. 인간들이 인간됨을 비웃고 무참히 내다버리는 세상에서 신들은 도대체 다 어디에서 소풍 중이신가? 절망할 일이 산처럼 쌓여서 이제 더 이상 절망할 기운조차 잃게 만든 한 해가 간다. 이 가파른 절망의 절벽을 어찌할 것인가? 멀쩡한 어린 자식의 주검을 안고 나라를 상대로 따져묻다가 나라가 준 메달마저 내던지고 이민을 간 국가대표 부부가 부러워지면 안 되는데.

 

슬픔·절망 직시해야 이길 수 있어

 

그래도 절망을 이기는 힘은 절망을 직시하는 데서 나온다. 슬픔을 이기는 힘은 주변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직시하는 데에서 나온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정호승 시, ‘슬픔이 기쁨에게’)지 말고, 우리 모두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이 거대한 절망을 뿌리치는 계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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