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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 이양선
그는 내 마음을 매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기자기함에 일단 눈길이 머물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한다. 요모조모 볼수록 오목한 용모에 매료돼 사춘기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얼마나 오랜 시간 마모를 거듭했으면 살갗이 이리 보드라울까. 조약돌에서 지난한 세월을 읽는다. 여느 몽돌과는 그 격이 다르다. 아기 볼을 쓰다듬는 느낌이 이럴까. 맨살의 촉감이 감미로운 나머지 메마른 정서가 촉촉해진다. 둥글납작한 형상이 대부분이나 어떤 녀석은 타원형이요, 묘하게 휘돈 놈은 꼭 소라를 닮았다. 영락없는 조가비도 있다. 저마다 다른 상을 지녔어도 어느 한 곳 모난 데 없이 한결같이 반드럽다. 모진 세파 속에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음으로써 오늘에 이르렀음을 생각하니 그 걸음이 장해 보인다.

 

대개 조약돌은 단색인데 이들은 한 몸에서도 다채롭다. 몸의 삼 할이 잿빛인 놈은 중간에 살구 톤으로 번지다 미색으로 갈무리되었다. 그런가 하면 다홍색을 온몸에 입은 녀석은 오밀조밀한 선이 하나씩 늘 때마다 농담이 달라지는 절묘함에 탄성이 나온다. 어떻게 이리 오묘한 하모니를 이루는지 기특하다. 바닷물과 바람과 햇볕의 정기가 적절히 버무려져 곰삭으면 이리 영롱할까. 돌이라기보다는 옥으로 격상시켜 주고 싶다. 녀석들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색을 띠고 있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절제와 겸양까지 지녔다.

 

이들도 연륜이 쌓이는 걸까. 고만고만한 몸에 유려한 문양에다 이미지도 다양하다. 실금이 버선코처럼 유선형으로 돌다 어느 지점에서는 지문처럼 흐르기도 한다. 또한 구불구불한 무늬가 등고선 같은가 하면, 파도가 층층이 밀려오는 문양도 있고 서녘 하늘의 노을 형상을 띤 것도 있다. 섬세한 선과 색이 만나니 산이 되고 새가 되어 수묵화를 이루고 담채화를 그려냈다. 어느 화가의 못다 이룬 꿈이 조약돌 속에서 환생이라도 했을까. 어설픈 붓끝으로는 흉내 낼 수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외경심마저 인다. 사람이 정성으로 빚은들 이만할까. 아무래도 신의 손길이 지나간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리 예스러우랴.

 

동글동글 매끄러운 것이 미려한 문양에다 영롱한 색조까지 지녔으니 이 아니 어여쁘랴. 사람으로 치자면 단아하면서 맵시까지 지닌 여인이랄까. 무심코 바라보면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첫사랑에 달뜬 마음이 이럴까. 녀석은 어느새 서른 지기가 다 되었다.

 

그 옆에는 어른 주먹만 한 흙빛 몽돌과 황토색 몽돌도 나란히 누워있다. 수족관에서 걸어 나온 이들은 멀리서 보면 더없이 다정한데 표면은 꺼칠하다. 요리조리 봐도 물 찬 제비 같은 조약돌에는 비견할 바가 아니다. 요놈들도 분명 몽돌 과이나 어느 해변 출신이다 자랑치 않고 더 힘세다고 거드름 피지도 않는다. 더 잘 보이고 좋은 자리에 놓이려고 자리다툼도 하지 않는다. 그저 대나무 바구니 안에서 조신하게 어깨를 기대고 더불어 산다. 어찌 보면 묵언 수행 중인 수도승 같다.

 

아무래도 조약돌이 우리 집에 온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모난 마음이 쉬 사그라지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사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내 가슴만 시린 줄 알았다. 그럴 때 문득 녀석을 보면 무심한 듯 초연한 모습이 은연중 나를 일깨운다. 침묵 속에서 묘한 울림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각진 감정도 삭이다 보면 두루뭉술해지니 연륜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둥글게 품는 도량을 지니라 이른다. 깊은 강은 조용히 흐른다 했던가. 제 몸이 저리 닳는 동안 안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두질했을까 생각하니 세상을 대하는데 옹졸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수필가 이양선씨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와 계간수필로 등단. 수필집 〈잠박(蠶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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