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작가 원하는 대로 맞춤 지원
대만과 각국 예술가의 교류와 공동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Taipei Artist Village, 이하 TAV). 이곳은 다른 레지던스에 비해 입주작가의 지원 조건이 우수하고, 국내·외 교류가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3일 방문한 TAV는 타이페이 시내에 자리 잡아 높은 접근성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시각예술뿐 아니라 연극, 무용, 음악 등 공연예술과 문학을 비롯해 예술경영, 학술연구 등 문화일반에 걸쳐 입주 작가를 모집해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가능했다.
△세계 예술과 조우하는 아지트
TAV는 대만의 첫 국제 아티스트 빌리지다. 해외 예술가를 대상으로 선발하거나 결연한 나라·도시 등에서 추천을 받은 작가를 입주시킨다. 기간은 최소 4주에서 최대 24주다. 이곳은 하나의 건물에 13개의 창작공간 겸 거주공간인 개인 스튜디오와 피아노 스튜디오, 암실, 강당, 회의실, 야외공연장 등을 갖췄다. 봄·가을에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로 주민에게 개방한다.
대만 문화재단이 위탁 경영하는 이곳은 2001년 10월 타이페이 시 문화부의 주도로 조성됐다. 사용하지 않는 교육청 옛 건물의 새로운 활용 대안으로 설립됐다. 더불어 화가 출신이었던 당시 문화부장이 예술 진흥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대만예술대학 미술관에 근무하다 지난해 말부터 TAV 디렉터를 맡은 우다큰 씨(45)는 “입주 작가가 다양한 만큼 주거, 식비, 자료 수집 등 각자가 원하는 조건이 달라 최대한 그에 맞춰 지원한다”며 “우리는 작가의 작품성을 가장 중요시하고 또한 얼마나 소통·교감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관을 통해 작가를 교환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양측에서 동일한 조건의 지원이 가능한 지를 본다”고 덧붙였다.
이곳의 예산은 연간 1500만 대만 달러다. 여기에 또다른 레지던스인 트레저 힐 아티스트 빌리지(Treasure Hill Artist Village)의 운영비는 3500만 대만 달러로 모두 연간 5000만 대만 달러(한화 약 17억 원)로 레지던스를 운영한다. 80%는 문화재단과 각종 기금 지원이며, 20%는 예술가 거주 공간이 남을 경우 다른 예술가나 시민사회단체 등에 게스트 하우스로 제공해 자체 경비를 마련한다.
2곳의 직원은 모두 20명이지만 여기에 자원봉사자도 또다른 운영주체다.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의 대학생이 주로 지원하는데 현재 30여명이 활동한다. 우다큰 디렉터는 “예술가는 보통 신기한 존재로 여겨지는데 지역 대학생과 접촉하며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우다큰 디렉터는 해외교류 레지던스의 지속 조건으로 예산과 개방성을 꼽았다.
그는 “시 정부와 예산 증액을 두고 조정하는 게 관건이다”며 “문화예술의 창작과 작가 교류를 왜 해야 하는지 정부 관계자를 설득하고 행정적인 부분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레지던스를 운영하다보면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개방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특히 해외교류는 서로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과 함께하는 예술촌
TAV를 조성한 지 10년이 지난 2011년, 트레저 힐 아티스트 빌리지(이하 트레저 힐)가 추가됐다. 작가의 창작 스튜디오 17개, 리허설 스튜디오 2개, 전시관 3개, 광장 등을 갖춘 이곳은 그야말로 마을에 터를 잡았다.
같은 날 방문한 이곳은 시간을 되돌린 듯한 풍경에 놓인 골목 사이사이 예술가의 작업실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끼고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는 ‘달동네’는 현재 젊은층의 데이트 코스로 자리잡은 관광지가 됐다.
우다큰 디렉터는 “TAV의 해외 작가는 주로 실험적이고 새롭고 국제적인 성격을 띠며, 트레저 힐의 작가들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작업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트레저 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300여년 이상 역사를 간직하며 대만의 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청나라 강희제 때 절이었던 곳에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용수공급시설을 설치해 사용하다 1949년 국민당이 군사시설로 이용하며 주변에 군인 가족이 마을을 일구어 살았다.
집들은 대부분 1960~70년대에 지은 불법 건축물로 1980년대 공원으로 조성하려 했지만 주민 반대로 철거하지 못했고 당시 예술가와 학생 사이에서 보호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2000년 11월 큰 태풍으로 일부 집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어 당시 정부가 주민에게 보상을 추진해 상당수는 이주했고, 나머지는 집을 수리하면서 예술가와 원주민이 어울려 사는 예술촌이 됐다.
지난 9월3일 트레저 힐을 방문했을 때 만난 한국의 설치작가 이병호 씨(39)는 다음날 현지 개인전을 앞두고 작품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지난 7월10일부터 9월30일까지 트레저 힐에 머물던 이 작가는 “친구가 알려줘서 호기심이 생겨 지원했는데 오게 됐다”며 “이곳은 작가가 원하는 사항을 써서 내면 그에 상응하는 제반 경비, 전시장 섭외, 홍보물 인쇄·운반 등을 해주는 등 지원과 작업 환경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가에게 어떻게든 지원을 해주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고, 굉장히 다양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체도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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