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남편의 그녀

▲ 이용미

휴일이 끝난 다음 날 피부과 대기실은 만원이었다. 차례를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친구에게서 받은 새해 인사 문구를 모처럼 그녀에게 보내자마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영혼 없이 녹음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대부분 무관심한 듯 했지만 이상한 눈길이 나를 향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바뀐 휴대전화 사용법을 대충은 익혔는데 수신문자가 음성으로 되어 있는 것은 몰랐다. 수신음은 계속 울리지 않고 한 번으로 그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다가왔다.

 

누가 봐도 첫눈에 반할 정도의 멋진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비쩍 마른 몸매에 키도 작았다. 생애 제일 큰 스트레스로 맘고생을 겪고 있는 나는 부모의 주선으로 마지못해 나간 자리였다. 특별한 관심도 호감도 없는 데다 인물까지 신통치 않다보니 소 닭 보듯 앉았는데 그녀 역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나 다름없었다.

 

아무런 호기심도 없다는 듯 그저 마시다만 찻잔에만 무심히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약속 장소가 엇갈려 늦어진 시간이 다행이다 싶었는데 점심때가 되니 몸보신 될 만한 것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보호본능이었을까. 그러나 평소 영양식이라는 것은 관심이 없었기에 갈비탕과 우족탕만 떠올라 둘 중 무엇을 먹겠느냐고 했더니 엉뚱하게도 짜장면을 먹겠단다. 중국집을 찾느라고 꽤나 많은 시간을 헤맨 끝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마주 앉았지만 여전히 할 말은 찾지 못한 채 짜장면만 부지런히 먹었다.

 

그녀는 생긴 것과 같이 음식도 먹는 시늉으로 그쳤다.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짠하던지 인연이란 그렇게 맺어지는가 보다. 그런데 음식을 깨작대던 그녀가 안쓰러워 보인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오히려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뒷날에 얘기를 들었다. 짜장면을 먹겠다고 한 것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맞선을 본 날 분위기 없이 탕을 권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라는 것도.

 

그렇게 부부가 된 그녀와 살아온 지도 강산이 몇 번 변했다. 그녀는 그동안 호랑이도 되었고 지칠 줄 모르는 소도 되는가 싶더니 꾀 많은 여우가 되어 나를 놀래 키기도 하며 든든한 가정을 꾸리더니 언제부턴가 변하기 시작했다. 30여 년을 오로지 직장에만 매달리다 끈 떨어진 매 신세가 된 나와 달리 억척스레 자기 일을 개척한 그녀는 이제야 자기 세상을 만난 듯 집보다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보던 날 소 닭 보듯 했던 나를 다시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아 혼자 앓는 속을 그녀는 알까? 그러나 오늘은 그녀라는 음성 메시지 속 그녀의 ‘당신도 올 한 해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한다.’는 메시지가 맘을 들뜨게 한다. 이제는 그녀로 저장된 그녀를 ‘창밖의 여자’로 바꾸어 입력해 볼까? 그러면 “창밖의 여자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하는 음성 메시지가 들리겠지.

 

△이용미씨는 2002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행촌수필문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북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대한민국 행정 중심엔 지방정부…모든 주민 만족할 성과 내달라”

정치일반대통령실 “감사원 정책감사 폐지…직권남용죄 엄격히 적용”

정치일반전북도, 복권기금 녹색자금 공모 3개 시·군 사업 선정… 국비 14억 확보

정치일반새만금개발청, 핵융합에너지 연구기지 경쟁력 모색

경제일반[건축신문고]건축설계변경, 언제까지 건축사가 안고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