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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 한일신

▲ 한일신

와- 첫눈이다! 잿빛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더니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진다. 첫눈이 이렇게 소담스럽게 내리니 나도 모르게 왠지 가슴이 설렌다. 날씨가 영상이라 눈은 바닥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물방울을 남긴 채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머리와 어깨 위에 내린 눈은 수북이 쌓였다. 잠시 쌓인 눈을 털고 사무실을 들어서니 먼저 온 동료가 아직도 눈이 오냐고 물어보는데 뒤를 이어 들어온 문우들이 대답 대신 눈을 털어 보인다.

 

오늘은 편집위원들이 모여 원고를 검토하고 교정하여 다시 편집장에게 주는 날이다. 한두 사람이 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럿이 하니까 재미도 있고 한결 수월했다. 내가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어느덧 10년째가 되는데 지금까지는 쓰는 데만 급급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다른 사람 원고를 검토할 기회를 주어 참 고맙다. 그동안 내 글도 이렇게 누군가가 검토하고 수정하거나 교정하여 주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분들의 수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어제가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는 소설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눈이 오다니, 옛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24절기가 있다. 이 절기 중에는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라고 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작을 알려준다. 각 절기는 한 달에 두 번쯤 들어 있는데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이 절기를 따라 농사를 지어왔다.

 

그렇다고 절기는 농경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어업과 관혼상제를 치르는 데도 필요했다. 이렇듯 절기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농사의 때를 가늠하여 할 일을 제때에 하며 가끔 절기 음식으로 정을 나누며 자연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아가는 풍습을 낳았다.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들이 하나둘 힘없이 떨어졌다. 떠난다는 것은 항상 슬프고 아픈 일이다. 하지만 가을 나무는 이제 모든 걸 훌훌 털고 갈색 그리움만 남긴 채 눈꽃으로 채웠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봄과 가을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고,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러다가 봄과 가을이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봄옷이나 가을옷은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계절이 바뀌니 말이다.

 

우리의 삶도 어찌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때론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는 시간 잡을 수 없고, 오는 시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도 떠나는 그들과 더불어 한 몸이 될 수밖에.

 

눈이 그쳤다가 또 내린다. 살면서 가슴 설레는 일이 어찌 오늘뿐이겠는가? 중학교 입학하던 날도 있고, 늦깎이로 취직하여 첫 발령을 받았을 때도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같이 첫눈 오는 날이면 특별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언제였던가, 첫눈 오는 날 만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서울사람이어서 얼마간 편지로 교제하다가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날을 기다리는 순간부터 그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쳤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두 손을 모아 기도까지 했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고 나서 그 사람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 내린 첫눈이 땅에 닿자마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뒤에 다 지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첫눈이 오는 날이면 어디서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날 것 같아 두리번거린다.

 

어찌 보면 사람이 살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누구나 다반사인데, 아직도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한일신 수필가는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후 수필에 입문해 <대한문학> 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내 삶의 여정에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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