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무대에 달빛을 닮은 은은한 빛이 스미고 물안개 같은 연무가 물 위에 떠 있다. 풀벌레 울음소리, 개구리소리, 소쩍새 우는 소리 그리고 멀리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섞여 고요와 소란이 가득하다.
전주시립극단 114회 정기공연 ‘완장(3.26-31 덕진예술회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작품은 윤흥길의 소설 ‘완장’을 원작으로 한 연극으로 운수회사를 경영하는 최사장이 ‘47만평 널금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 임종술에게 맡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을 구현한 무대 배치는 프로시니엄(액자형) 극장인 덕진예술회관의 객석 일부를 제거하고 그 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실제 물을 가득 채웠으며 수초를 둘러 효과를 냈다. 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한쪽 변에는 ‘감시소’를 그 반대편에는 ‘실비주점’을 두었다. 그리고 원래 무대가 있던 곳 안쪽으로 50석 정도의 객석을 배치하여 마당극 형태의 무대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암전과 조명을 이용한 연극적 장면전환과 객석 사이로 동선을 만들고 배우의 등퇴장으로 장면을 전환하는 마당극 장면전환도 활용하는 방식이라 무대 운영을 중심으로 연극을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소극장이 아닌 액자형 무대의 경우 객석과 무대의 거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마당극 형태로 배치함에 따라 객석 바로 앞까지 배우가 가까워지고 관객에게 말을 걸고 극에 참여시키는 것에 있어서도 훨씬 자연스러웠다. 동네 사람들이 새참으로 국수를 먹는 장면에서는 실제 국수 냄새가 맛있게 풍겨왔다.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꼽을 수 있는데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해학적으로 풀어 가는데 있어서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원작이 가지고 있던 색깔을 이번 연극에서도 동일하게 이어 하나의 특징으로 살려내고 있다. 또한 여기에 우리 전통의 해학정신을 담아냈던 마당극 형태와 결합시킨 점은 무척 인상적인 부분이이라 하겠다.
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이는 작품이었는데 전라도 사투리를 시종일관 1급 무사처럼 구사하던 임종술(배우 김연주)과 운율을 과장하는 부월(배우 염정숙)의 대사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부월이가 종술을 원망하며 노래를 하다가 “개 같은 놈”이라고 대사를 뱉어내고 또 노래를 하다가 같은 대사를 뱉어내며 4번 정도 반복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그 같은 대사의 톤과 의미가 매번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장면도 명장면이었다. 선명한 주제를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배우와 호흡하는 극장을 찾는 이유는 현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바로 이런 순간을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70대의 연출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소란과 아귀다툼 그 사이에 뱀처럼 들어앉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우리 근현대사의 상처를 거슬러 닿아있으면서 아직도 면면하고 굳건한 욕망에 대해 저수지 감시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짜임새 있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연극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완장질’에 빠져들어 자기 욕망이라는 ‘47만평 널금저수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그 패악의 아귀다툼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이도 역시 한낱 풀벌레, 개구리, 소쩍새 소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객석을 빠져나와 덕진예술회관 앞 덕진연못을 지나며 일렁거리는 물빛이 또 다르게 느껴진다.
양승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고객지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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