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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새로운 K열풍을 불러올 전통의 바람, 전주 부채

‘방탄소년단(BTS)’은 ‘2018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힙합과 한국 전통문화의 결합시켜 매우 독특한 무대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멤버들이 비트에 맞춰 각자 나와 사자놀음, 탈춤, 농악 등 한국무용이 가미된 안무를 비트에 맞추어 구사했다. 이날 BTS의 멤버 지민은 부채춤을 접목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트위터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2위를 기록하며 뉴질랜드, 프랑스, 싱가포르 등 39개국 해외 팬들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민의 군무가 들고 나온 부채는 한국의 전통부채 접선(摺扇)이었고, 착용한 의상은 전주에서 디자인한 현대식 한복이었다. 

2019년, BTS는 전북 완주군의 오성한옥마을에 머물며 ‘서머패키지 인 코리아’ 프리뷰 영상을 촬영하며, 기와지붕 아래에서 합죽선(合竹扇)을 들고 여유롭게 여름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같은 해 BTS 지민은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녹화 촬영 중 자신을 응원하러 온 수백 명의 팬들을 위해 자신의 자필 글씨를 담은 합죽선을 선물하면서 한국전통 부채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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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합죽선 접은 모습(왼쪽)과 색지 합죽선.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이처럼 세계 최정상급 아이돌이 한국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한복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더욱 고조되는데 가운데, ‘핵심 아이템’으로 손꼽힌 우리의 합죽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의 부채가 문화산업과의 결합을 통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 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마케팅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부채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충분히 환기시키지 못한 점이 근본적인 과제라 보인다. 

부채가 우리에게 어떤 물건이었는지 조명해보자.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의 초상화 중 부채를 들고 있는 작품이 있다. 1792년 제작된 ‘채제공 초상 시복본(時服本)’이다. 초상화에서 채제공은 연분홍에 옥색 안감이 비치는 근무복 차림을 하고 있으며, 양손에는 합죽선을 쥐고 있다. 초상화 왼쪽에는 채제공이 자필로 ‘부채는 임금의 은혜’라고 쓴 문장이 있다. 이 합죽선은 정조가 채제공에게 내린 선물로, 임금이 경륜이 높은 신하에게 단오와 같은 명절에 부채를 하사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은 때였다. 

조선시대의 선비는 과거를 통해 학문의 연마를 완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군자로서 마땅히 익혀야 할 육례(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에도 통달하여 어울림에 막힘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선비들은 한시 짓기, 뱃놀이 등을 즐겼는데, 이 때 부채를 패용하며 서로의 신분, 경제력, 안목의 우위를 가렸다. 권문세가에서는 화려한 고가의 부채를 뇌물로 사용하거나, 방납을 일삼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조선사회에서 부채가 가진 위력은 대단했다. 즉, 부채는 이미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수준을 넘어서, 양반가의 교류에 있어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함축한 사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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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마른 대나무(왼쪽)와 장시 추리기.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부채는 부챗살의 재료인 대나무와 선면을 이루는 종이가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대나무는 남쪽지방의 전라도와 경상도가 주산지였고, 종이는 전라도의 전주·남원의 것이 뛰어났다. 이러한 자연적·기술적 여건으로 전라도에서는 일찍부터 많은 양의 부채가 생산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全羅監營) 내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전주뿐만 아니라 구례, 곡성, 담양, 남평, 나주 등에서 제작한 부채까지 모아 관리하였다. 1921년, 선자청은 일제에 의해 사라졌지만 부채를 만드는 상당수의 장인들이 건재했고 수요도 여전히 많았다. 1941년 ‘매일신보’의 기록에 따르면, 전주부채의 한 해 생산량만 70여만 자루에 달했다고 한다. 매년 수십만 개의 부채가 생산되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더위를 식히기 위함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관습에서 오랜 뿌리를 내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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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챗살에 낙죽하기(왼쪽), 부챗살에 낙죽한 모습(중앙), 종이틀을 이용한 대간치기.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전주에서는 1970년대까지 남부시장의 국일상회와 삼화상회 등을 비롯해 부채를 제작·판매하는 상점들이 여러 곳 있었는데,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생활양식의 변화로 부채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부채를 만드는 장인의 숫자도 함께 줄어들어 한국의 전통 부채가 한 때 멸실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통 부채의 제작은 장인이 직접 재료의 엄선에서부터, 대나무를 종잇장처럼 얇게 다듬어 부챗살의 균형을 잡는 과정까지 섬세한 공정을 오랜 시간 거쳐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전통 부채의 명맥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2015년 선사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유자로 김동식 선자장을 인정하였다. 

BTS가 세계에 자랑한 합죽선은 이를 만드는 장인과 사용하는 사람들의 부단한 문화소통에 의해 탄생된 한국의 고유한 부채이다. 합죽선은 오래 사용해도 부챗살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선면만 바꾸면 대를 물려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이 길다. 선면에는 글자와 그림을 자유로이 넣을 수 있어 오늘날의 유행에 맞게 얼마든지 콘텐츠의 전환이 가능하다. 이런 우리 부채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고 널리 공유하여 부채의 고장 전주로부터 새로운 K열풍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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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사

‘방탄소년단(BTS)’은 ‘2018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힙합과 한국 전통문화의 결합시켜 매우 독특한 무대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멤버들이 비트에 맞춰 각자 나와 사자놀음, 탈춤, 농악 등 한국무용이 가미된 안무를 비트에 맞추어 구사했다. 이날 BTS의 멤버 지민은 부채춤을 접목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트위터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2위를 기록하며 뉴질랜드, 프랑스, 싱가포르 등 39개국 해외 팬들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민의 군무가 들고 나온 부채는 한국의 전통부채 접선(摺扇)이었고, 착용한 의상은 전주에서 디자인한 현대식 한복이었다. 

2019년, BTS는 전북 완주군의 오성한옥마을에 머물며 ‘서머패키지 인 코리아’ 프리뷰 영상을 촬영하며, 기와지붕 아래에서 합죽선(合竹扇)을 들고 여유롭게 여름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같은 해 BTS 지민은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녹화 촬영 중 자신을 응원하러 온 수백 명의 팬들을 위해 자신의 자필 글씨를 담은 합죽선을 선물하면서 한국전통 부채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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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합죽선 접은 모습(왼쪽)과 색지 합죽선.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이처럼 세계 최정상급 아이돌이 한국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한복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더욱 고조되는데 가운데, ‘핵심 아이템’으로 손꼽힌 우리의 합죽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의 부채가 문화산업과의 결합을 통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 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마케팅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부채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충분히 환기시키지 못한 점이 근본적인 과제라 보인다. 

부채가 우리에게 어떤 물건이었는지 조명해보자.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의 초상화 중 부채를 들고 있는 작품이 있다. 1792년 제작된 ‘채제공 초상 시복본(時服本)’이다. 초상화에서 채제공은 연분홍에 옥색 안감이 비치는 근무복 차림을 하고 있으며, 양손에는 합죽선을 쥐고 있다. 초상화 왼쪽에는 채제공이 자필로 ‘부채는 임금의 은혜’라고 쓴 문장이 있다. 이 합죽선은 정조가 채제공에게 내린 선물로, 임금이 경륜이 높은 신하에게 단오와 같은 명절에 부채를 하사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은 때였다. 

조선시대의 선비는 과거를 통해 학문의 연마를 완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군자로서 마땅히 익혀야 할 육례(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에도 통달하여 어울림에 막힘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선비들은 한시 짓기, 뱃놀이 등을 즐겼는데, 이 때 부채를 패용하며 서로의 신분, 경제력, 안목의 우위를 가렸다. 권문세가에서는 화려한 고가의 부채를 뇌물로 사용하거나, 방납을 일삼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조선사회에서 부채가 가진 위력은 대단했다. 즉, 부채는 이미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수준을 넘어서, 양반가의 교류에 있어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함축한 사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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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마른 대나무(왼쪽)와 장시 추리기.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부채는 부챗살의 재료인 대나무와 선면을 이루는 종이가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대나무는 남쪽지방의 전라도와 경상도가 주산지였고, 종이는 전라도의 전주·남원의 것이 뛰어났다. 이러한 자연적·기술적 여건으로 전라도에서는 일찍부터 많은 양의 부채가 생산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全羅監營) 내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전주뿐만 아니라 구례, 곡성, 담양, 남평, 나주 등에서 제작한 부채까지 모아 관리하였다. 1921년, 선자청은 일제에 의해 사라졌지만 부채를 만드는 상당수의 장인들이 건재했고 수요도 여전히 많았다. 1941년 ‘매일신보’의 기록에 따르면, 전주부채의 한 해 생산량만 70여만 자루에 달했다고 한다. 매년 수십만 개의 부채가 생산되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더위를 식히기 위함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관습에서 오랜 뿌리를 내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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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챗살에 낙죽하기(왼쪽), 부챗살에 낙죽한 모습(중앙), 종이틀을 이용한 대간치기.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전주에서는 1970년대까지 남부시장의 국일상회와 삼화상회 등을 비롯해 부채를 제작·판매하는 상점들이 여러 곳 있었는데,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생활양식의 변화로 부채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부채를 만드는 장인의 숫자도 함께 줄어들어 한국의 전통 부채가 한 때 멸실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통 부채의 제작은 장인이 직접 재료의 엄선에서부터, 대나무를 종잇장처럼 얇게 다듬어 부챗살의 균형을 잡는 과정까지 섬세한 공정을 오랜 시간 거쳐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전통 부채의 명맥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2015년 선사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유자로 김동식 선자장을 인정하였다. 

BTS가 세계에 자랑한 합죽선은 이를 만드는 장인과 사용하는 사람들의 부단한 문화소통에 의해 탄생된 한국의 고유한 부채이다. 합죽선은 오래 사용해도 부챗살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선면만 바꾸면 대를 물려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이 길다. 선면에는 글자와 그림을 자유로이 넣을 수 있어 오늘날의 유행에 맞게 얼마든지 콘텐츠의 전환이 가능하다. 이런 우리 부채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고 널리 공유하여 부채의 고장 전주로부터 새로운 K열풍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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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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