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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지로드] ④ 한지를 지키는 사람들: 전통한지 명맥 잇는 한지장…수요처 확보로 생산·소비 선순환을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전북 출신 류행영, 홍춘수
전주한지장들 "문화로써 한지 지켜야"⋯사용처 발굴은 과제

우리나라의 한지는 고려시대부터 명성이 높아 중국인들은 제일 좋은 종이를 '고려지(高麗紙)'라 불렀고, 조선시대에는 태종대부터 '조지서(造紙署)'라는 전담기관을 설치해 원료 조달과 종이의 규격화, 품질 개량 등을 국가적으로 관리해왔다. 그만큼 한지업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중요한 산업군 중 하나였다. <경국대전>의 기록에 따르면 한양에는 30개 관청 내에 129개 직종에 종사하는 장인들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종이를 제조하는 '지장(紙匠)'의 수는 85명으로 아홉 번째로 많은 직종이었다. 5도 221개 지역의 지방관아에 소속된 한지 제조 장인은 692명으로 수공업 분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공업에 의지했던 한지업은 목재펄프를 이용해 대량 생산되는 값싼 종이의 대중화와 서구화되는 생활 패턴의 변화로 수요가 줄어들며 설자리를 잃어갔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중국산 종이의 수입은 한지업의 쇠락을 가속화시켰다. 더불어 전통한지를 제작하던 '한지장(韓紙匠)'의 명맥도 거의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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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보유자 홍춘수 선생/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한지장'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전북 출신 류행영, 홍춘수 보유자

닥나무 등을 주재료로 하는 한지는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장인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다. 전주한지를 비롯해 우리나라 전통한지의 명맥이 이어진 건 제조 기술을 지켜낸 한지장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전북 출신 고(故) 류행영 한지장이나 홍춘수 한지장은 전통한지 제조 기술을 보유·전수하며 전통한지의 원형을 보존한 주요 인물들이다.

국가에서는 2005년 전통한지의 올바른 보존과 전승을 위해 한지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했다. 2005년에는 완주군 출신 고(故) 류행영(1932∼2013년) 장인이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류 장인은 2008년 명예보유자로 인정, 2013년 별세했다.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은 2010년 가평군 '장지방'의 고(故) 장용훈(1937∼2016년) 장인과 임실군 '청웅한지'의 홍춘수(1942∼) 장인이 공동으로 보유자로 인정됐다.

최근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로 김삼식(경북 문경), 신현세(경남 의령), 안치용(충북 괴산) 장인을 인정했다. 이로써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는 기존의 홍춘수 장인까지 4명이 됐다.

완주군에서 태어난 홍춘수 장인은 부친인 고(故) 홍순성 씨가 운영하던 전주시 서서학동의 종이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12세 때 처음 종이 뜨는 일을 접했다고 한다. 19세 되던 해 선친과 함께 임실군 청웅면의 현 부지로 공장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한지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홍 장인이 처음 전통한지를 만들 때만 해도 일상생활에서 한지가 널리 쓰일 때였다. 그는 색깔과 두께, 질감을 각기 달리한 맞춤형 한지를 만들어 팔았고 반응도 좋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장은 활기를 띠었지만 1990년대 접어들어 기계로 만든 한지가 등장하고 중국산·일본산 종이가 들어오면서 전통한지산업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한지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가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공 재료나 화학 약품을 섞어 사용하거나 기계를 대지 않은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들었다. 오히려 황토를 반죽에 섞어 만든 벽지용 '황토지', 두 장의 한지 사이에 단풍잎이나 김을 무늬로 끼워 넣은 '단풍지'나 '김종이' 등을 내놓으며 천연 재료를 활용해 한지를 다양화하는데 몰두했다.

이렇듯 홍 장인이 부친의 어깨너머로 배운 일은 생업이 됐고, 이제는 큰사위인 노정훈 씨가 이수자로써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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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전 전주시장(가운데)과 왼쪽부터 김인수, 김천종, 강갑석, 최성일 전주한지장/ 사진=전주시 제공

 

전주한지장들 "문화로써 한지 지켜야"⋯사용처 발굴은 과제

예로부터 질 좋은 닥나무, 풍부한 수자원, 시장 입지 조건 등으로 한지업이 발달한 전주시. 한때 전주한지의 대표 생산지였던 흑석골은 전통한지 업체가 30여 곳이나 밀집해 이른바 '한지골'이라고도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한지업이 사양길에 들며 지난해 기준 전주지역 수록한지 제조업체는 고궁한지, 대성한지, 성일한지, 용인한지, 전주전통한지원, 천일한지 등 6곳만 남았다.

전주시는 2017년 전주한지의 문화재적 가치를 전승·보존하기 위해 김천종(천일한지), 강갑석(전주전통한지원), 김인수(용인한지) 최성일(성일한지) 등 4명을 '전주한지장'으로 처음 선정했다. 이들은 30년 이상 전주에서 한지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전통한지 제조 기술을 보유·전수해왔다.

전주한지장 지정은 전승 단절이 우려되는 전주 전통한지를 체계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였다. 전주한지장들 역시 전통한지가 돈이 되던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이제는 '문화'로서 전통한지를 지켜고 살려야 할 때라고 했다.

20대 초반 한지업에 뛰어든 전주전통한지원 강갑석 대표는 전주 흑석골에서 시작해 완주 상관과 소양, 전주 팔복동을 거쳐 2004년 전주한옥마을에 자리 잡았다. 한지업이 번창할 땐 그 역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땐 오후면 공장마다 종이를 걷으러 다니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강 대표의 한지를 찾았다. 이제는 "재고만 10년은 팔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다.

강 대표는 "한지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선 건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시대가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업적인 측면에서 전통한지 업체가 언제 없어지느냐는 시간과의 싸움이 됐다. 이제는 전통한지 제조를 '문화'로 보고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부분 한지 제조업체는 가족 경영으로 유지된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지 외길만 걸어온 강 대표가 말하는 전주한지를 살리는 길은 사용처를 늘리는 것밖에 없다. 서화용, 공예용, 벽지 및 장판용 등 한지를 용도별로 만들며 수요에 따라 출구를 모색해왔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는 "한지로 만들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며 "남은 사람이라도 제대로 명맥을 잇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 의무화로 지속적인 쓰임새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친으로부터 초지 기술을 전승해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성일한지 최성일 대표는 미래 시장 예측을 통한 소재 다양화로 수요처 발굴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전주한지의 차별점은 순지, 화선지 등 한지 생산·판매의 영역이 넓었다는 데 있다"며 "서예용, 공예용 한지 시장 이후 최근 한국화용 한지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 영원하진 않다. 어떤 시장이 올 것인지 예측하고 소재를 다양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근 최 대표는 서양화에 적합한 한지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생산 가능한 대형 한지는 1m40㎝X2m인데, 이를 2mX2m70㎝까지 늘리는 작업이다.

그는 "유화, 아크릴화로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들이 자신의 특색에 맞게 한지를 이용해 작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한지 사용처를 새롭게 개발하는 것보다 서양화라는 기반이 조성된 곳에 소재로써 한지를 공급해 서양화 인구를 흡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야만 더 큰 시장에 발  디딜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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