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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 아침을 여는 시] 무심의 경지-신수미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먹고

무게를 달아보니

빈 잔의 눈금은 날아간 지 이미 오래

바람 앞에 허깨비로 후들거려도

가을의 균형을 잡고 꼿꼿이 서 있다

 

부끄럽지 않은 당당함

둥글어 모나지 않는 겸손으로

나무의 푸른 향기까지 담아와

구겨진 투정도 참아내며

군소리 하나 없다

 

홀리듯 뜨거운 입맞춤에

붉은 입술 자국 묻어나 꽃이 피고

중독된 갈증의 목마름을 채워

흐릿한 혼미함도 깨워주는 재주

 

재활용도 못하는 일회용이라고 놀려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순발력에

나 반했어,

한 잔의 맛

별미를 내는 한 사발이야.

 

△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시가 좋은 시다. 이 시를 읽고 난 후, 커피를 마신 종이컵을 물끄러미 다시 바라본다. 책상 한쪽에 찌그러진 채 “가을의 균형을 잡고” 의젓하다. 종이컵의 역할은 “꽃이 피”는 일, “목마름을 채”우는 일, “흐릿한 혼미함을 깨워주는 재주”다. 이런 재주에다가 “둥글어 모나지 않”고, “나무의 푸른 향기까지 담”은 종이컵을 새로 발견한다. 다 내주고 싸늘하게 식은 종이컵을 새삼스레 두 손으로 감싼다./김제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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