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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새 아침을 여는 시] 은행나무 골목-송영상

기차 정거장 대합실에 앉아

가는 사람 쳐다보고 

오는 사람 쳐다보는데

가슴으로 젖어오는 바람소리

엊그제 같은 그 옛날

점심때를 알리는 소방서 오포 소리

그립다.

 

- 저 풍남동 은행나무 골목에요

- 지금은 한옥마을 문턱입니다

 

아! 저기 저 집이 나 살던 옛집인데

마당 구석에서 쑥불 타는 매캐한 연기

엄니는 거적대기 깔고 앉아

기왓장 가루로 놋그릇 닦으시고

우리는 평상에 누워 강냉이를 먹었지

 

하늘을 덮을 듯 키 큰 은행나무

최씨 문중 청지기가 사는 세 칸 기와집

높은 토방 감싸듯 뻗은 뿌리

멀리서 온 타관 아줌씨

기린봉 굿쟁이 무당

 

시루떡에 촛불을 켜고

아들 며느리의 손자 점지를 빌고

가족들의 소원성취를 빈다

 

앞 골목 안창으로 들어가면

혼불 소설 쓴 최명희 소설가집이고

 

몇 발짝 걷다보면

흙돌담 안에 정원수가 꽉 차있고

기둥만 보이는 커다란 기와집이 몇 채인가

 

쉬엄쉬엄 걷다보면

철대문 집 벽돌담에는 오색돌 문패

나무대문집 나무기둥에는 나무문패

양철대문집 문짝에는 나무문패가 있었지

갓길 채전밭 옆길로 들어서면

가람 이병기 시조 시인의 집 양사재 위로

오목대 산기슭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한나절 걸어온 뒷길을 돌아보고

전주천 제방 밑으로 내려가

흐르는 물 한웅큼을 떠

가슴에 안았다

 

남부시장 할매집에 들어가

선지국 한 뚝배기 사먹고

경종배추 묵은지 서너포기 사고

모싯잎 송편도 한무데기 사들었다

 

초여름 한낮은 

아직 한뼘이나 남았는데

 

마주쳐 오는 누군가

고향맛을 물어보면

그냥 웃을까

 

△ 일찍이 전북의 문화예술을 유달리 사랑하셨던 시적 화자의 절절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작품이 길어 ‘몹쓸 <중략>’이 많다. 이 코너의 지면이 한정적이어서 작가와 독자의 넓은 마음에 기댈 수밖에 없다. 꼭 찾아 읽어보시라고 인터넷 전북일보에는 전면을 탑재한다. 읽는 내내 아릿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은 우리를 순수의 세월로 데려갈 것이다. / 김제 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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