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민간인 동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4동의 황석연 동장(당시 49세)이었다. 그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개방형 공모를 거쳐 2년 임기의 동장이 되었다. 임기 초반, ‘혁신의 전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협치와 자치의 원리입니다. 주민들 스스로 지지와 격려를 나누면서 자기 주도하에 마을을 변화시키고 가꾸어가게끔 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통치’가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는 독산4동이 처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며 마을의 풍경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그는 먼저 주민센터 3층에 있던 동장실을 없애고 벽을 터서 주민과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주민 스스로 동네의 문제를 찾고 혁신적 해법을 세워 실행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렇게 고질적인 골목길 쓰레기 문제와 주차 문제의 해법을 주민과 함께 찾아내 ‘재활용 정거장’과 ‘도시 광부’ 사업을 시작했고, ‘행복 주차 골목’도 만들어냈다. 여름엔 동네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성당 주차장에 공짜 수영장을 열었고, 겨울엔 차들로 북적이던 먹자골목을 막아 골목 운동회를 열었다.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서울시에서 받아내거나 다른 예산을 줄여 마련했다. 그동안 정부와 광역ㆍ기초지방자치단체가 정해준 일들만 처리하던 ‘동’이 스스로 계획과 예산을 세워 문제를 해결해본 첫 ‘자치’의 경험이었다.
하지만 동장 한 명 바뀐다고 ‘주민(지방) 자치’가 실현되는 건 아니다. 조직과 제도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주민자치회’다. 지난 2013년 처음 시범사업을 시작한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직접 정책을 만들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든 조직이다. 주민자치센터의 사무도 위탁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13년째 시범사업 꼬리표를 떼지 못해왔다.
다행히 이재명 정부는 주민자치회의 전면적 확대·시행을 여러 번 약속했고, 지난달 27일 주민자치회를 법적 기구로 인정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마침내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했다. 이제 법제사법위와 본회의 통과 절차만 남아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① 풀뿌리 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하여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라 자치회가 설치되는 경우 관계 법령, 조례 또는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사무 일부를 자치회에 위탁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길게는 일제강점기 이후 끊어졌던 ‘풀뿌리 주민(지방) 자치’ 시대의 부활이 비로소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곧 시범사업 꼬리표를 떼고 법적 기구로 자리잡을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센터의 위탁 운영과 주민참여예산의 운영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익산시에서만은 그럴 수 없다. 지난 2021년 익산시의회가 ‘익산시주민자치회시범실시및설치·운영조례’에서 ‘자치센터 위탁’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당시 의회는 개정 이유로 ‘상위법에 위배 된다’는 점을 들었으나 당시 관련 법령이나 행안부 <표준 조례안>에 비춰 이는 전혀 근거가 없을뿐더러 다른 지자체에선 찾아볼 수 없는 개정 사례다.
익산시의회는 이제라도 잘못된 조례를 바로잡아 익산시가 ‘자치 낙후 도시’로 낙인찍히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
윤찬영 북카페 기찻길옆골목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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