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 피그미 전문 사역자로 11년 활동한 최관신 선교사 기아자동차 전주·군산 지점장→우연히 아프리카 선교활동 참여 간호대학 설립·치뗌보어(피그미 언어) 성경번역 등 사역활동 활발 최 선교사 “피그미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 …동역자 필요해"
제가 목사감은 아니죠. 형제들은 저를 사기꾼 같다고 하던 걸요?
그가 자신을 ‘목사감은 아니다’라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11년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부냐키리(Bunyakiri) 지역에서 피그미(Pygmy)족 전문 사역자로 활동한 사람. 교회 건축부터 부냐키리 예수병원 운영, 간호대학과 봉제학교 설립, 치뗌보(피그미 언어) 성경 번역 사역까지…. 불가능한 일을 해내왔다. ‘이 정도라면 전도목사라도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틀렸다. 그는 “보상을 바랬다면 절대 지금까지 사역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관신(68) 선교사의 이야기다. 실제 그의 인생이 스스로를 증명한다. 14년간 기아자동차 전주‧군산지점장으로 지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으니까. 그는 아프리카 최초의 종족인 피그미를 대상으로 교육과 의료‧복음 사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을 하려고 신학 공부를 했고, 일 년에 7~8개월간 가족들과 떨어져 콩고에서 생활했다.
반전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인구 약 30만 명. 접근 자체가 고난도인 부냐키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이틀이 소요됐다. 실제 스무 시간 이상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고 우기에는 진흙탕의 영향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었다. 이동 수단은 아슬아슬하게 곡예 주행하는 오토바이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피그미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완주 소양면에 자리한 ‘작은 손 선교회’에서 만난 최관신 선교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얘기들은 무엇 하나 예측 가능한 게 없었다. 그래서 더욱 펄떡거렸던 피그미 사역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흑인 노예의 참상을 다룬 소설을 대학생 시절에 읽었습니다. 이후에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2002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아프리카 선교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2009년 우간다 여성대회에 참여하면서 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임파선염으로 죽어가던 아이를 만나 기도를 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서 예수를 만났다는 강렬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프리카에서 살아야 한다’는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특별히 피그미족을 중심으로 사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0년 콩고 고마 지역 세미나에서 한 목회자를 통해 피그미 마을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누구냐, 우리가 죽인 적도 없는데 왜 우리 죄 때문에 죽었다고 하느냐’라고 되묻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속’이라는 개념을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 저는 피그미족에게 제대로 된 복음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피그미 사역을 시작한 이유이자, 하나님이 제게 주신 콜링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피그미족 언어인 ‘치뗌보어’ 성경 번역 프로젝트도 진행하셨다고요.
“치뗌보어는 문자가 없던 언어였습니다. 2015년 피그미 공주가 한국에 와 공연한 것을 계기로 전주대 소강춘 교수에게 도움을 구했고, 3년 6개월 끝에 문자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코로나19로 한동안 중단됐지만, 2020년부터 본격적인 성경 번역에 들어가 올해 누가복음초판 500부를 콩고에 보냈습니다. 피그미 주민들은 첫 성경책을 받아 잔치를 벌였고, 현재는 영어·한글·치뗌보어 3개 언어로 된 성경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낯선 곳이고, 특히 피그미족은 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현지에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과 의료 인력입니다. 특히 조산 교육이 시급합니다. 피그미 여성들은 10~11세에 출산을 시작해 평생 15명에서 20명의 아이를 낳는데, 70%가 5세 전에 사망합니다. 이유는 열악한 출산 환경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호대학을 세워 조산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또 병원 운영을 위해 의사·치과·간호 인력, 의료 장비, 행정 운영 지원이 절실합니다. 특히 치과 장비는 현지에서 가장 부족한 분야입니다.”
- 활동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후회하는 순간은 없었는지요.
“제게 피그미족은 ‘사명’이기 전에 ‘만남의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그들을 도우러 간 게 아니라, 그들이 제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들의 환한 웃음,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볼 때마다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도 어려움으로 느껴지는데요.
“가족들은 제가 피그미 사역을 시작한 초창기 때부터 저의 뜻을 존중해줬습니다. 아내는 간호사로 오래 일했는데, ‘은퇴 전에 꼭 한 번 아프리카를 가보고 싶다’고 했죠. 실제로 병원 개관식 당시에 찾아와서 제 사역을 보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매년 함께 오지만 건강 문제로 올해는 쉬었습니다. 저 역시 안식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지내서 이제는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병원과 학교가 계속 운영되려면 당분간 사역 활동은 이어가야 할 듯 합니다”
-선교사님께 ‘피그미족’과 ‘선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 사주에도 없던 길입니다. 그런데 인생 후반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피그미족입니다. 그 사람들은 사탕 하나에도 행복해하고, 작은 도움에도 감사해합니다. 저는 대단한 목사도 아니고, 선교사로서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이것이 제게는 ‘행운’입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존재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그미 사역 활동을 말하는 그에게선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시종 호탕한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것. 피그미족에게 배운 삶의 이치다. 그리고 그건 사역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천이 됐다. “이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평안을 빌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배웅하러 나선 길에 건넨 인사가 오래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그 역시 오래오래 평안하길 바라본다.
△최관신 선교사는 2009년 7월부터 월드미션프론티어를 통해 아프리카 단기 선교를 하다가 2013년부터 피그미 전문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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