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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담배, 술 대리구매해드려요

  • 기획
  • 전북일보
  • 2019.04.02 10:53

[참여&소통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직업계고 현장실습 기본전제는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보호"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참여&소통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공간이다. 올해는 박연수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 사무국장, 문주현 자유기고가, 장윤영 전주 천년누리 제과 대표, 강소영 전주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이 참여해 복지, 청년, 생태, 교육현장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조명한다.참여&소통은 오는 8월까지 매주 화요일자에 게재된다. 지난 1월 31일 교육부가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 보완 대책을 발표했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을 지금의 8000개에서 2022년까지 3만개 이상으로 확보하며, 현장실습 운영의 효율화와 기업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선도기업 선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직업계고 3학년 2학기를 전환학기로 운영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학생의 안전과 권익보장이 강화되고 현장실습의 전공적합도와 만족도도 높아졌지만 현장실습 참여절차가 복잡하고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은 등 현장의 부담이 증가해 기업의 현장실습 참여가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현장실습을 통한 학생들의 사회진출 기회도 줄어들었다고 보고 이번 현장실습 보완 방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제주 생수 생산업체에서 실습을 하던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의 사망 사고 발생 후, 교육부가 실습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이고, 4회 이상의 현장실사 등을 거친 기업에만 현장실습 참여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안을 발표했었다. 이것은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여론에 의해서 안전기준을 강화한 내용이었다. 해당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학습과 무관한 저임금 일자리에 고등학생들이 내몰리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일자 교육부는 바로 안전기준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가, 시행 1년도 안되어 기업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선도기업 선정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뒤집는 것은 학생의 안전과 인권을 등한시하는 행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또한 현재 선도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조차, 학생들에게 제대로 실습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안전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는 더 의문스러운 상황에서의 이러한 결정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전국 청소년 인권단체 반발 자격되지 않는 업체를 선도기업으로 교육부의 이런 결정에 대해서 전국청소년노동인권단체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교육부 보완방안 발표 며칠 전인, 1월 24일 전국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현장실습대책회의가 주최한 간담회 자료의 충남도교육청의 현장실습 선도기업 평가 기준표에는 전공불일치에도 높은 배점을 부여하고 기업복지가 없음에도 0점이 아닌 9점의 점수를 부여하고 있는 등 각 배점 항목별로 결격사유를 제외하고 최하점을 합산해도 100점 만점에 67.5점이 나옴으로써 12.5점만 더하면 선정기준 점수(80점)에 무난히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지역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자격도 되지 않는 업체에 선도기업이라는 자격을 부여해주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평가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선도기업에서 진행되는 현장실습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실사에 참여했던 상황을 기록한 간담회 자료의 전북의 사례만 살펴보더라도 이와 같은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특장차 생산업체에서 도장파트를 담당하는 한 하청업체의 경우, 사내 지게차가 신호수 없이 운행하고 있는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례가 바로 확인되는 현장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업체는 자동차 부품 납품 및 자체 개발 제품 생산을 하는 곳으로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는 비치되어 있지 않았고, 조기 취업한 학생은 마스크를 사비로 구입해서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두 업체 모두 중소기업 인력양성 참여기업으로 별도 심사절차 없이 선도기업으로 인정되고 학생이 조기 취업한 사례다. 실제 중소기업 인력양성사업 참여 기업의 경우 별도 심의 없이 선도기업으로 인정되며, 그 기업 신청기준은 종업원 수 10명이상의 중소기업이고 특성화고마이스터고와 산학연계 3자 취업 협약한 벤처기업은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이다. 또한 교육부의 <현장실습 선도기업 선정기준(안)>에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사업에 참여중인 기업은 별도 심사없이 선도기업으로 인정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모든 시도교육청들이 그 기준을 따르고 있다. 도제학교 사업선정 기업은 2014년 9개에서 2015년 66개, 2016년 198개, 2018년 2948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중소기업 인력양성사업 참여기업현황은 아예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라고 한다.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가 17개 시도교육청의 선도기업 선정현황을 정보공개청구해 살펴본 결과 실제 한 교육청의 경우, 산학일체형 도제학교가 54곳이고 교육청의 기준과 절차에 의해 자체 선정된 선도기업은 6곳뿐이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기업이 선도기업으로 인정돼 실습 및 조기취업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정부가 오히려 선도기업 선정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하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 현장실습을 경험한 직업계고 졸업생은 사실 저는 실습기업이 전공과도 일치하던 곳이었고, 실습환경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으로 실습을 나갔다가 다시 복귀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후배들이 실습하게 되는 기업들 선정이 더 간소화된다고 하니 조금은 걱정이 된다는 말을 전했다. 도내 직업계고 교사 또한 이번 교육부가 발표한 보완방안 전체를 우려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선도기업 등의 선정절차를 더 간소화하는 부분에 있어서 실습생들의 안전의 문제를 걱정하는 건 사실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 안전과 인권보호를 기본 전제로 교육부는 기업 입장 중심의 선도기업선정 절차의 간소화를 말하기보다는 기업들을 독려하고 설득해 교육부가 학생의 안전과 인권에 대해 깐깐한 기준을 제시하더라도 현장실습을 진행할 수 있는 기업들 선정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어느 선도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든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보호는 기본전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2017년 전주의 한 콜센터 욕받이부서라 불리는 곳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유명을 달리한 홍모 학생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점과 대안 모색 토론회의 자료에 의하면 애완동물과가 전공인 그 학생은 콜센터 해지 방어 상담이라는 전공과 전혀 무관한 업무로 실습을 하고 있었고, 해당 고객센터로 2016년에 파견나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은 33명이었지만, 2017년 2월 기준 10명만 남아있었다. 취업계고의 입학의 가장 근본취지가 취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취업률이라는 목표치를 내세워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곳으로 학생들을 내모는 상황을 재현해서는 안된다. 보완 방안 발표 이후 교육부는 권역을 순회하며 고졸취업 활성화 및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것이 단순히 절차의 수순이 아니라 의견수렴을 위한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며,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학생들 전공과 연관된 실제 교육실습이 이뤄질 수 있는 내용의 후속 보완대책이 발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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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1 20:28

[전북의 재발견] 순창 옹기체험관 : 도자기 체험하기 좋은 곳

도자기에 현대를 입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신선했습니다. 유독 미세먼지가 심했던 겨울이 기침해대며 떠나는 날, 가벼운 행장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순창옹기체험관으로 가는 길에는 햇볕도 따뜻했고 매화꽃이 향기를 올곧게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먼발치에서 본 옹기탑이 인상적이어서 찾고 싶었던 곳, 솔직히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를 그리며 들어섰지요. 평생 옹기만 구운 옹기장이 송영감의 아내가 조수와 도망가 버린 뒤 분노를 삭이지 못하다가 쇠약해져 죽게 되자 아들 당손이를 입양시킵니다. '뜸막 속 전체만 한 공허'가 가슴에 깃들자 독가마를 떠올리고 자신의 생명을 마지막으로 발산하려는 듯 독가마 속으로 들어가 흩어진 돌조각 위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는다는 즉 늙은 몸을 가마에 누이며 생을 마감한다는 줄거리였지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평생 구운 독을 자신의 몸으로 체현하는 듯 결말은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인으로서의 숭고한 구도적 자세로 해석되기도 한 가슴 아린 소설이지요. 웬걸! 가서 보니 정정한 도자기 장인(匠人)이 온 가족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현대식 명품 도자기 공작소(?)라고 해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전통 자기와 옹기를 위해 혼신과 열정을 다하는 무형문화재이자 청자 기능보유 이수자인 고정(古正) 권운주 선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고정 장인은 고려 비색 청자를 재현해낸 고현(古現) 조기정 선생의 수제자로 순창군 풍산면 출신의 도예가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예술 도자기, 그 중에서도 청자가 가장 깊은 곳에 보물처럼 전시되어 있고 거기에 이르기 전 전시대에 생활자기를 비롯한 옹기, 도기가 옹기종기 진열되어 손님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눈길을 단번에 끌어 들인 것은 다름 아닌 화려한 자기였습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제 질문에 고정 선생은 빙긋이 웃기만 하더군요. 그리고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음에 들다 뿐이겠습니까.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찬란한 도자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게 이런 걸까요? 그저 외관의 화려함이 아니었습니다. 디자인도 현대적이지만 색감도 아름다워서 오는 손님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분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진열대를 맴돌곤 했습니다. 인사동에 내놓을 겁니다. 우리의 도자기를 우선 국내에서 평가 받아야겠지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조용하지만 눈빛의 단호함이 형형하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고정 선생은 그야말로 옛것을 현대에 맞게 다시 바르게 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이러한 예술품이 탄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팝아티스트 Piter OH와의 만남이 아니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지요. 젊은 친구 Piter OH는 현대미술 팝아트 작가이면서에세이니스트, 그리고 플루트 연주의 대가로 현재 클래식 앙상블 순창 웃음(smile) 오케스트라 단장이기도 합니다. 운명처럼 이 두 장인은 만났습니다. 색소폰 연주의 대가이기도 한 고정 선생과 만남은 우연이기 전에 필연인 것처럼 의기가 투합(?)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팝 아티스트와 작업하면서 만든 자기를 우슴(웃음)자기로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웃으면서 만들고 웃으며 살되, 슴자와 형태가 비슷한 합(合)자처럼 함께 마음 합해 만든 이 도자기. 보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이 다 합해지라는 의미도 되지 않겠느냐는 고정 선생의 설명에 약간은 숙연해지기도 했답니다. 전통적 기법으로 빚은 도자기도 인사동에서 인기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윽하고 묵직한 품성을 지닌 전통적 감각은 여전히 우리의 심성에 녹아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시대의 흐름을 대변할 수는 없다는 것도 상식입니다. 변하는 세상은 새로운 도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장인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법이지요. 그래서 웃으면서 우슴자기를 생각해낸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전기가마로 굽습니다. 실험 중이지요. 색깔과 색감, 그리고 형태까지 굽기 전과 구운 후의 양상은 너무나 차이가 커서 쉴 새 없이 시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노자(老子)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대기면성(大器免成)일 수도 있다고 하지요? 이 세상에 완성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언제나 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마에 넣기 전에 유약 처리한 그릇과 불의 열을 감내하고 나온 완성된 자기는 늘 도공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림은 화가의 붓끝에서 완성되는 것이지만 도자기의 도공은 그저 하늘에 맡길 뿐입니다. 가장 연약한 흙이 강한 도자기가 되는 과정에서 불의 섭리를 거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 불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오는 변형은 천하 걸작을 만들기도 하고 태작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을 도공은 운명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오직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할 뿐이지요. 도예가는 그래서 늘 겸손합니다. Piter OH와 고정 장인이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를 보고 평가와 함께 품평회를 합니다. 그리고 태작이거나 흠결이 보이는 것은 버리지요, 잘못된 원인을 찾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거든요. 합격을 한 자기만을 사모님께서 마감질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판매장으로 옮기게 되지요. 우리는 그 도자기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버려진 도자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자연과 인간과 과학이 어우러진 조화의 산물이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릇이 되지 못한 흙과 유약과 버려진 도자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진열대의 여러 도자기는 선택된 도자기이고 성공한 결과물들입니다. 우리 인간도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의 나는 나 혼자서 된 것이 아니겠기에 우리도 모두가 소중하기 그지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우슴자기를 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현대적 감각에 머물다가 번득 떠오르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키! 조각가요, 추상화의 아버지라 불리며, 미술, 음악, 미술의 정신적 가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색채를 탐구했던 러시아 출신의 천재 화가. 그가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렸으나 고정 권운주 도예가와 Piter OH는 빚고 구웠습니다. 그리고 현란한 색채로 도자기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키가 말했다고 합니다. "색은 영혼에 떨림을 줌으로써,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세상의 근원은 정신이며 물질은 다만 정신세계 위의 얇은 막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정 선생과 팝 아티스트 피터 오는 뭐라고 말을 할까요. 궁금했으나 차마 묻지 못하고 체험관을 나왔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위대한 하나의 도자기이다. 체험관 마당에는 작은 옹기들이 올망졸망 앉아 놀고, 뜨락에는 제법 큰 독들이 벽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문득 고정 권운주 도예가가 독 짓는 늙은이의 송영감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연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온 삶이 위대한 도자기가 아닌가. 그 여정이 접점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도자기를 빚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지요. 그것도 각자가 모두 위대한 도자기라는 사실을 잊고서 말입니다. 그럼 나는......, 나라는 도자기는 어떻게 빚어지고 있는가. 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가늠하며 천천히 아주 느리게 걸어 왔습니다. 하늘은 더 맑아져서 언제 미세먼지가 있었냐는 듯 푸르게 짙푸르게 순창을 품고 있었습니다. 순창옹기체험관 전화번호 : 63-652-4365 지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5-8. 순창군 옹기 체험관 월요일은 쉼니다. 홈페이지 : http://www.sunchangceramic.com /글사진 =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이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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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1 18:48

[전북의 재발견] 전북 군산의 숨은 트레킹 명소 대장봉 일출 트레킹

"군산 대장봉에서 즐기는트레킹 여행" 한 짐 가방을 메고 배낭여행을 다니던 시절. 남다른 분위기의 프로 여행가에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진짜 아름다운 여행지는 섬 여행이라고. 그때부터였습니다. 섬으로 여행 갈 때면 마음이 설렜던 게. 섬은 내가 좋아하는 자연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산길을 걷는 코스부터, 아름다운 바다까지. 이 모든 것이 완벽했던 곳. 군산의 아름다운 자연 여행지 장자도의 대장봉 트레킹 코스를 소개해 드릴게요. 군산의 아름다운 자연여행지 대장봉. 이 봉우리를 소개하려면 장자도와 장자도가 속해있는 고군산군도를 먼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군산군도는 군산에 딸린 군도입니다. 무녀도와 선유도 신시도와 방축도 등 6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장자도는 인구 70명 정도의 작은 섬입니다. 대장봉은 이 작은 섬에 우뚝 솟은 142M 봉우리로 바위로 되어 있습니다. 대장봉까지 오르는 길은 2~30분가량 소요되며 할매바위를 포함해 고군산군도의 멋진 뷰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비응항 행> 군산역 출발 : 7번 (매시 20분)/ 83번 (매시 15분) 군산 시외버스 터미널 출발 : 7번 (매시 52분) 근대역사박물관 출발 : 97번 (매시 50분)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는 비응항 환승장에 하차 후 매시 40분에 출발하는 99번 이층 버스를 타야 합니다.) 마침 비가 오고 다음 날 날씨가 좋을 거란 예상에 군산 시내에서 새벽 4시부터 장자도를 향해 달렸습니다. 장자도의 안쪽까지 들어갈 순 없지만, 주차장이 잘 되어 있어 주차를 하고 대장봉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이정표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어두운 밤에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어두운 밤 대장봉을 향해 올랐습니다. 이정표를 보면 대장봉으로 가는 방향과 할매바위로 가는 이정표 방향이 있습니다. 저는 대장봉 이정표 방향으로 올랐지만 이른 새벽에 오른다면 할매바위로 오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대장봉으로 오르는 길은 바윗길이 많은 반면, 할매바위로 오르는 길은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해가 뜰 시간이 다가오니 점점 하늘이 밝아 옵니다. 약 20분쯤 올라 대장봉에 도착하니 일출 시간이 약 10분 정도 남았고 일출을 감상할 적당한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7시 30분이 조금 넘자 저 멀리 수평선 끝으로 붉은빛이 올라오고 곧이어 붉은 해가 올라옵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힘들어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곳으로 달려오는 이유겠죠. 한참을 앉아 이곳에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봅니다. 한참이나 앉아 넋을 잃고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다, 슬슬 대장봉을 내려갑니다. 올라가는 길과는 반대로 할매 바위 구간은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편하게 올라오고 내려갈 수 있습니다. 장자도의 또다른 볼거리 할매 바위. 장자 할머니 바위는 마치 여자가 아기를 업고 밥상을 들고나오는 형상입니다. 슬픈 전설이 깃들어져 있는 이 바위를 보며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배반하면 돌이 된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연인과 함께 온다면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해 보길! 전라북도 군산은 여행지가 참 많은 곳입니다. 우리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죠. 군산의역사가 깃든 도시여행도 좋지만, 군산까지 왔다면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고군산군도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장자도의 대장봉은 왕복 1시간 정도의 짧은 코스로 조금만 올라가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죠. 친구 혹은 연인 그리고 가족들과의 여행까지. 누구와 함께 와도 좋은 곳. 이번 주말은 대장봉에 한번 가보시죠! /글사진 = 전북 블로그 기자단 윤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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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9 16:45

익산지방국토관리청 김철흥 청장 “지역과 소통·협력, SOC 구축·지역발전사업 지속 추진”

전북과 광주전남의 도로와 하천 등 호남지역 SOC사업을 총괄하는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지역민들의 휴식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거창한 규모의 쉼터가 아닌 자투리 공간이나 지역의 역사 깊은 곳에 조성하는 쉼터는 또 다른 명소가 되고 있다. 특히 만석보 등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조망 쉼터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인 5월 11일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호남 출신으로 지역과 함께하는 익산국토관리청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김철흥 청장이 부임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김철흥 청장을 만나 그간 추진 사업들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에 부임한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간 어떤 사업들을 중점으로 추진해 왔는지요. 각종 지역개발사업과 SOC 시설물 관리업무를 추진하면서 해당 시군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에 역점을 두어왔습니다. 지역발전지원팀을 신설하고, 지역개발사업 현장에서의 해당 시군과 협력은 물론 시군 간의 연계협력을 추진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국도와 하천변 유휴부지를 활용해 단순한 졸음쉼터 이외에 지역여건에 맞는 다양한 기능을 갖춘 복합쉼터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새만금 수질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만경강 정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도로, 공원 등 다양한 친수공간을 제공하고 전북의 젖줄인 만경강의 역사, 문화를 복원하는데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 최근 만석보 등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와 같은 역사공간에 쉼터를 조성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정읍시 인근에 정읍천과 동진강이 합류하는 소위 두물머리가 있습니다. 이곳이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당시 고부군수 조명갑이 만석보를 축조해 농민들을 수탈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동진강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나온 준설토를 활용하여 두물머리에 작은 언덕을 조성했습니다. 언덕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호남평야 지평선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이와 연계해 인근 동진강 고수부지에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파크골프장 27홀과, 자동차 캠핑시설 및 다양한 체육시설도 추가로 설치할 계획입니다. - 이밖에 진안 생태습지쉼터와 부안 잼버리홍보쉼터도 관심인데요. 진안군에는 용담호에 유입되는 진안천의 수질개선을 위해 30만㎡ 규모의 생태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마이산과 진안을 방문하는 도로 이용자와 인근 주민들이 쉽게 공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근 국도 유휴부지에 주차장과 생태습지공원 연결데크를 설치했습니다. 앞으로 특산물 판매대, 홍보부스 및 푸드트럭 유치 등은 이용 상황을 고려하여 진행할 계획입니다. 또한, 부안군에서 새만금방향으로 2023년 세계잼버리 개최지 인근 국도 유휴부지에 잼버리행사, 새만금사업과 변산반도 관광 등을 홍보하는 쉼터공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쉼터사업은 부안군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도 참여하여 지난해 말에 쉼터 내에 잼버리 상징조각물, 쉼터주변 산책로 등을 조성했습니다. 현재 건설 중인 홍보관은 올해부터 전시 홍보물 내용 검토와 건축공사를 착수하여 내년에는 관람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 전체적으로 많은 쉼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효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쉼터 조성사업은 해당 시군의 실질적인 참여 속에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익산국토청이 시행하는 국도 건설과 하천 관리 및 지역개발사업 등 각종 SOC사업에 해당 시군과 지역주민들께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쉼터는 이용자에게 휴식과 여유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 문화 그리고 지역을 잘 알리고 계절별로 지역특산물 판매 등 주민소득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이 기대됩니다. 이번 복합쉼터 사업을 토대로 해당 지역과 협의해 국도와 하천변 여유부지에 지속적으로 쉼터를 확충해 나갈 계획입니다. - 부임 후 호남지역 자치단체를 직접 방문해 이에 대한 반응이 좋습니다. SOC시설 등 각종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역여건과 지역주민자치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협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무적인 협의와 더불어 자치단체장과의 직접적인 협의는 지역현안을 신속히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새로 선임된 자치단체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주시와 인근 시군과 연결되는 전주시 외곽순환도로 성격의 국도대체 우회도로 총 55km(상관구이이서용정용진) 중 45km구간은 4차로로 건설운영 중이나, 마지막 구간인 용진우아 10km가 2차로 규모로 건설 중입니다. 전주시완주군과 함께 교통량 수요 재조사를 통해 공사 중에 4차로로 확대 추진을 적극 협의하는 등 지역 현안 해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그간의 성과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사업추진 과정에서 지역소통을 강화하고, 협업하는 업무를 적극 추진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복합쉼터 사업은 해당 지자체와 협업이 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사업입니다. 쉼터사업 부지와 기반시설은 익산국토청이 제공하고, 해당 시설의 유지관리는 해당 지자체가 부담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부실시공을 방지하고 건설근로자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건설안전국을 신설하여 안전관리를 강화했습니다. 지난해 타워크레인 사고 방지에 이어 금년에는 추락사고 방지를 위해 공사시 가설 작업대에 대한 안전점검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동백대교 개통 등 새로운 도로 건설과 하천 정비 뿐만 아니라, 도로 이용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등 도로 유형과 관계없이 유지, 관리해 오고 있습니다. 도로 이용 불편사항은 원콜 서비스인 1333번을 통해 편리하게 연락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정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호남 출신으로 익산국토청을 이끌고 계신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요. 지난 1년 4개월 동안 과오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해 주신 도민 여러분과 일선 시군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역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지역에서 필요하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SOC시설과 지역발전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안지역을 아우르는 국도 77호 구간 중 유일하게 사업추진이 되지 않고 있는 부안고창 구간(부창대교)에 대한 조속한 사업추진이 필요합니다. 부안, 고창지역은 물론이고, 전라북도와 적극 협력하여 실제 사업 추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김철흥 청장은] 손꼽히는 국토부 기획정책통, 지역의 역사문화재에도 관심 김철흥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은 국토교통부에서 잔뼈가 굵은 기획정책통으로 꼽힌다. 부드러운 친화력에 강한 추진력을 겸비한 김 청장은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국토교통부 핵심 업무인 도시재생과 도시기획, 임대주택과 공공주택 등 굵직한 사업들을 일선에서 기획했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에 부임하기 전까지 국토부 공공주택총괄과장과 공공주택정책과장으로 일해 왔다. 김 청장은 누구보다 지역사정에 밝고, 지역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만석보 쉼터와 진안 운산 생태쉼터, 새만금 잼버리 경관쉼터와 같은 복합쉼터는 그가 호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굴한 사업들이다. 이례적으로 호남권 자치단체를 직접 방문해 현안을 살펴 호평을 받은 것도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기 때문이다. 김 청장은 지역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지역민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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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만
  • 2019.03.26 20:49

[찾아가는 군산이야기] 35년 군산의 항쟁의 역사를 바라본다, 군산 항쟁관

올해는 1919년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나라 빼앗긴 울분을 목이 터지라 외쳤던 '대한 독립만세'와 태극기 물결이 꿈결인 양 출렁거리는 날인데요. 3.5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군산에서 일제강점기 군산의 항쟁 역사와 장소 그리고 독립유공자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건물이 많이 보존된 군산은 시간여행가들의 천국입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군산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가옥을 수없이 만날 수 있고, 그들 건물을 새롭게 리모델링해 현대식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현장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군산을 십수 번 왔지만, 오늘 가볼 군산항쟁관은 처음인데요. 무려 100여 년 주택을 리모델링해 군산항쟁관으로 개관했습니다. 이곳에는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옥구농민 항일전쟁에 대한 소개와 함께 옥고를 치른 군산 출신 34인의 항일투사와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군산 출신 18인의 애국지사, 서수 청년회에서부터 활동한 농민항쟁의 기수 두 분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택이다 보니 전문 전시관으로 꾸미기엔 다소 비좁지만, 당시 주거형태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요. 2층 가옥으로 단독주택 25평형 정도 되는 공간입니다. 입구에 기미독립선언문이 비치되었습니다. 요즘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 광복회 성북구 지회에서 시작한 '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릴레이 캠페인이 들불처럼 번졌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독립선언서 총 38개 문장 중 한 문장을 선택해 직접 필사한 다음 48시간 이내에 페이스북에 인증하고 다음 참여자 3명을 지목해 이어가는 캠페인입니다. 자~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군산항쟁관에서 군산 항쟁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를 만나보겠습니다. 군산 항쟁의 역사는 모두 8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중 군산의 항쟁을 소개합니다. 1. 임피 장터 3.1운동 만세 1919년 3월 29일 임피 장날 만세시위로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진장권에 의해 계획되었다. 그는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황봉규와 만나 시위를 결의했으며, 채만식, 김석종, 최한풍, 김흥렬, 황봉규 등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진장권의 집에서 태극기 200본을 만들었으나 일경에 발각되어 체포돼 끌려가면서도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하였고 임피 시장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2. 옥구 소작쟁의 항쟁 1927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360만 평의 논밭과 1,700여 소작인을 두고 한 해에 12,000석을 거둔 이엽사 대농장에 맞선 옥구 소작쟁의이다. 3. 군산 공립보통학교 학생 항쟁 운동지 서울의 3.1독립만세운동 이후 군산 공립보통학교 김학구, 나명조, 신형식 등은 학생 7070여 명을 선도해 동맹하고 연서로 퇴학 서류를 제출하며 항거했다. 이에 당황한 학교가 학부형을 소환해 압박하였으나 3월 23일 군산 공립보통학교를 불태워버리자고 결의하였으며, 이 불로 학교는 완전히 소실되었다. 4. 군산 정미소 거리 미선공 항쟁 운동지 1924년부터 1934년까지 10년간 이어진 미선공들의 생존권 투쟁이다. 5. 옛 구암교회 3.5운동 근거지 세브란스 의전에 재학 중인 영명 학교 출신 김병수가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구암교회 장로에게 전달했고, 영명 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했으나 거사계획이 발각되어 박연세 등이 체포되자 3월 5일 군산 구암교회 교인들과 군산 공립보통학교 등 학생, 규암 예수병원 직원, 시민이 함께 나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6. 옛 군산 경찰서 앞 항쟁 운동 군산 3.5 독립만세운동 1천여 명의 시위 군중은 군산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구속된 영명 학교 교사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당황한 일본 경찰은 재향군인과 이리 주재 헌병대까지 요청해 만세 시위대를 제압했으며 90여 명이 검거되었다. 군산항쟁관 여행은 일제강점기 시절 군산항쟁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의로운 도시 군산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각종 고문 도구를 보니 당시 경찰서나 헌병대에 체포돼 고문을 당한 선조들의 모습이 떠올라 먹먹한 가슴으로 바라봐야 했습니다. 군산항쟁관에는 항쟁의 역사와 함께 군산지역 독립유공자들이 공적을 살필 수 있어 더 뜻깊었는데요.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보겠습니다. 임병찬, 고석주, 이병관, 김성은, 이기준, 홍천경, 유희순, 정홍기, 홍종억, 김영상, 최태경, 이준영, 유복섭, 전오풍, 김수남, 노춘만, 김덕장, 이인식, 신관순, 임종우, 고봉민, 김홍렬, 문형모, 이재근, 안경태, 김영후, 김수영, 고민룡, 홍만종, 진장권 군산항쟁관은 작지만, 그 어느 전시관보다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군산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제대로 알게 해준 고마운 전시장이었는데요. 군산으로 시간여행을 오신 분들은 35년 군산항쟁의 역사를 오롯이 만나볼 수 있는 군산항쟁관을 꼭 만나보길 추천합니다. /글사진 = 군산시 사이버기자단 심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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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6 17:21

[전북의 재발견] 전주 트레킹 코스 베스트 4 - 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걷기 좋은 곳

전주의 봄을 느끼다 요즘 거리 곳곳에 매화 등 봄꽃이 만개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죠? 봄이 오는 걸 시샘하듯 반짝 꽃샘추위가 왔지만, 모처럼 미세먼지 없는 맑은 주말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오랜만에 등산화 끈을 조이고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봄을 맞이하여 걷기 좋은 전주의 트레킹 코스 4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트레킹에 앞서 갑작스러운 운동은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충분한 준비운동과 함께 등산화, 스틱, 헤드 랜턴(야간산행), 방한용품(모자, 마스크, 장갑 등)과 간단한 행동식(물, 커피, 초콜릿, 견과류 등)을 준비하세요. (기타: 호루라기, 보조배터리)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곳은, 가을이면 코스모스 명소로 알려진 전주시 양묘장(호동골 자연생태체험학습원)입니다. 새벽에 내린 서리 때문인지 몰라도, 가을의 코스모스 핀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산불 감시초소가 자리한 행치봉은 두리봉(해발 435m), 묵방산(해발 521m)과 연계 산행이 가능합니다. 이른 아침 등산길에 오르다 마주친 고라니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만큼 이곳이 동물들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이란 거겠죠? 그동안 일출이 보고 싶을 땐 인근 모악산에 종종 오르고 했었는데요. 정상까지의 거리와 체력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행치봉에서도 쉽게 일출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①위봉산(524m) ②운장산(1125m) ③두리봉(435m) ④만덕산(762m) ⑤용화산(342m) ⑥고덕산(625m) ⑦경각산(660m) ⑧모악산(793m) ⑨기린봉(271m)까지 이어지는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시원한 공기를 한껏 마시니,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향긋한 꽃내음에 이끌려 발길을 옮기니 양묘장 비닐하우스 안에는 팬지, 비올라 등이 가득했는데요. 지금 전주한옥마을 등 도심 곳곳에 식재되어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전주의 봄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되어 아중저수지로 불리던 이곳은, 아중호수로 이름을 바꾸고 수상산책로, 수상광장 등이 조성되며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휴식장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호수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도록 순환산책로가 개통되고 주차장 및 편의시설이 확충되어 더욱더 많은 시민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기 좋은 코스로 추천해 드립니다. 일몰과 야경이 아름다운 기린봉 기린봉(271m)의 산새는 남노송동, 교동, 남고동, 인후3동 등에 걸쳐 있으며 사신중 두 번째 신 우백호(기린)에 해당하는 산으로, 시민에게는 성스러우며 일몰과 야경이 아름다운 산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기린봉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아중호수와 아중체련공원 쪽에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아중호수 경로는 정상 밑에서 로프를 이용한 등반을 해야 하고, 아중체련공원 경로는 정상까지 이어진 돌계단을 이용해서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중간마다 휴식 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고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등산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멋진 경관을 보기 위해서겠죠? 열심히 땀 흘려 올라온 만큼 멋진 일몰을 감상 할 수 있었습니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신가요? 전주한옥마을의 야경을 한눈에 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치명자산성지 코스를 추천해드립니다. 치명자산성지 코스는 군경묘지에서 오르는 코스와 한옥마을 임시주차장에서 오르는 코스로 나뉘는데요. 어느 쪽이든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는 코스입니다. 치명자산성지 관망대도 기린봉과 더불어 전주의 일몰과 야경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다만, 이곳은 천주교 순교성지인 만큼 쓰레기를 버리거나, 음주, 고성방가 등을 하지 않도록 더욱더 주의해야겠죠? 순교자 묘 위쪽에 있는 예수 마리아 바위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자연과 종교의 신비함을 경험할 수 있으며,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새들의 노랫소리와 수줍게 핀 동백꽃들로 힐링을 선사하는 코스입니다. 이상으로 봄맞이 걷기 좋은 전주의 트레킹 코스 4곳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행치봉 아중호수 수변 산책로 기린봉 치명자산성지까지 연계 산행도 좋고, 개인 취향과 체력에 맞게 해당 장소들을 걸으며 전주의 봄을 온몸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글사진 =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이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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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5 13:25

[전북의 재발견]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 정읍에서 만나는 동학농민운동 역사의 현장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을 앞두고 떠나는 정읍 역사여행 누구나 학창시절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요. 지금의 전북 정읍시 고부면의 군수이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화 갑질에 못 이겨 전봉준을 중심으로 민란이 일어난 계몽운동이었습니다. 사건의 중심지이었던 고부면에는 현재 동학농민운동을 기념하고 교육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황토현전승일인 5월 11일로 제정돼 올해 동학농민혁명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큰데요. 나아가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더욱 특별한 올해, 항일 의병항쟁의 씨앗인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알록달록 색감으로 눈길을 끄는 곳이 있으니 바로 어린이 전시관입니다. 이곳은 동학농민운동에 대하여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재밌게 설명이 되어 있으며 다양한 게임과 체험놀이를 할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전시관이라고 해서 절대 허술하지 않습니다! 당시 농민군이 사용했던 구식 무기인 화승총과 일본군이 사용하였던 신식 무기인 스나이더 소총의 실물모형을 전시하여 당시 농민군과 일본군의 화력의 차이가 컸음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전시관을 따로 구성해 두었다는 점에서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새싹들에 우리의 역사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어 정말 좋더라고요. 어린이 전시관 맞은편에는 19세기 말 조선사회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당시의 생활모습과 농민들의 팍팍했던 삶이 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마을의 모습은 물론 실제 사용되던 농기구들과 생활용품들까지...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는데요. 손때 묻은 농기구들 속에서 당시 농민들이 쉬는 날 없이 죽도록 일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시관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바로 이 밥상이었습니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양반가의 밥상에 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누구보다 피땀 흘려 일한 농민은 풍족하기는커녕 밥과 국, 김치가 전부인 초라한 밥상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못 먹는 경우가 많아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도 모두 지주나 국가에 바쳐야 했기에 늘 기근과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합니다.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념관 중앙홀에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6인의 초상이 걸려있습니다. 좌측부터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최경선, 최시형, 손병희... 그들의 사진을 보아도 알겠지만, 그들은 양반이나 무관도 아닌 그저 평범한 농민이고 백성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시는 기념관 2층에서 시작되는데요. 2층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반겨줍니다. 이 지도에는 조선시대 발생하였던 농민봉기들의 점령지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임술년에 발생하여 임술농민봉기라고도 불리는 동학농민운동은 시발점이었던 고부를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를 모두 장악했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던 진주성까지 함락시켰다는 것에서 당시 농민군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당시에 사용되던 무기들이 보였습니다. 신식소총과 화포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하는 농민군의 무기는 정말 보잘것없었는데요. 임진왜란 시절 사용한 구식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낫이나 도끼 등으로 항거했습니다. 또한, 닭을 가두는 장태에 불을 붙이거나 돌 등을 넣어 굴리는 방식으로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하였습니다. 농민군의 열악함은 무기뿐만 아니라 의복에서도 나타났는데요. 전시관 한편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마네킹이 서 있었습니다. 잘 갖춰진 관군과 일본군과 비교하면 농민군의 옷은 보잘것없습니다. 천하를 울리던 농민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하며 사실상 동력을 상실하고 총사령관이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이 체포되며 그 세력이 약화하고 결국 와해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전봉준을 심문하던 모습이 밀랍인형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2층 전시관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문득 기둥들이 특이해서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요. 기념관의 기둥들에는 모두 동학농민운동의 주체이었던 6인을 형상화한 조각이 붙어있었습니다. 이런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것이 정말 감동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동학농민운동 기념관은 단순히 농민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사회 불평등과 생활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어려운 역사는 다양한 전시를 통해 쉽게 배울 수 있었던 뜻깊었던 공간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위치 : 전북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15 홈페이지 : http://www.1894.or.kr/main_kor/index.php /글사진 =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배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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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5 13:04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3. 단종비 정순왕후의 애사(哀史)

우화루(雨花樓), 부처가 설법할 때 꽃이 비처럼 내린다는 의미를 담은 불가의 공간이다. 서울에 있는 청룡사 우화루는 단종(1441-1457년)이 유배 가기 전날 정순왕후(1440-1521년)와 마지막 밤을 보낸 장소로 헤어짐을 슬퍼하는 그들의 눈물이 비처럼 흐른 곳이다. 그런 이유로 영원히 이별을 나눈 집이라 하여 우화루를 영리정이라고도 부르고, 청계천에 있는 영도교는 영월로 떠나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곳에서 헤어져 다시는 못 만나 영영 이별한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비운의 사연을 지닌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정비인 정순왕후는 세종 22년 태인현(현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서 태어났다. 대부분 세자의 빈으로 추대되어 남편이 즉위하게 되면 왕비가 되지만,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상 왕과 혼인 한 왕비로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유일하다. 정순왕후의 아버지 송현수는(본관 여산(礪山)) 풍저창(豊㶆創, 궁중에 상납하는 곡물을 취급하는 관서)의 부사로 종 6품이었다. 정읍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가 왕비가 된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남편인 단종은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숙부인 수양대군(훗날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도 모자라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지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정순왕후 또한 부인으로 강등되며 궁에서 쫓겨나 18세에 단종과 헤어져 역사의 뒤안에서 피눈물을 삼켰지만, 단종보다 64년을, 세조보다 53년을 더 살며 82세까지 장수했다. 그녀의 고향인 정읍과 궁에서 나와 생을 마칠 때까지 지냈던 서울, 그리고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과 남양주 사릉에는 정순왕후의 한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비운의 삶은 수양대군이 1453년 김종서를 죽이고, 친동생 안평대군과 여러 대신을 죽인 계유정난으로부터 시작된다. 병약했던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승하하면서 왕위에 오른 어린 왕 단종이 겪은 두려움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그 수난의 역사 속에 이듬해인 1454년 왕비로 간택된 송씨가 실제 왕비였던 기간은 고작 1년 6개월이었다. 송씨가 왕비가 되기까지에는, 아버지 송현수와 친분이 있는 수양대군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수양대군의 편에 있던 영응대군(세종의 8번째 왕자)의 부인이 송현수의 누이이고, 송현수의 처 민소생의 자매인 민대생의 딸은 권세가인 한명회의 부인이었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였던 단종의 혼인은 문종의 상중이라 반대가 있었지만,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심 하에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송현수의 딸인 송씨를 단종의 비로 간택한다. 수양대군은 이후 친동생인 안평대군과 많은 대신들을 죽이고 나서 조카인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된다. 사육신을 중심으로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난 세조 2년(1456년)의 『조선왕조실록』에 임금 세조가 송현수에게 술을 부어 올리게 하고 그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내 굳게 고집하여 듣지 아니한 것은 경이 나의 옛 친구인 까닭이다라는 기록을 보아 세조가 불러일으킨 피바람 속에 사육신과 관련자들을 죽였지만, 친분이 있는 송현수의 목숨을 구해준다. 하지만, 불안한 세조는 이듬해에 영월에 있는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고 송현수도 결국 죽임을 당한다. 단종이 유배를 가면서 18세에 홀로된 정순왕후는 궁에서 나와 정업원(淨業院, 현 청룡사)에서 지냈다. 한 마리 원통한 새 궁중을 나와 / 외로운 몸 외짝 그림자 푸른 산중을 헤맨다 / 밤마다 잠을 청하니 잠은 이룰 수 없고 / 해마다 한을 다하고자 하나 한은 끝이 없네 단종이 영월에서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시구지만 그리움이 사무쳐 한이 된 정순왕후의 마음도 평생 매한가지였다. 자식이 없는 정순왕후는 시누이 경혜공주의 아들인 정미수를 시양자로 삼았지만 정미수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 이씨에게 자신의 뒤를 부탁한다. 밤낮으로 슬퍼하여 울고 있던이라며 자신을 표현한 정순왕후는 82세(중종 16, 1521년)로 한 많은 삶을 마쳤고 해주 정씨의 묘역이 있는 남양주에 모셔졌다. 그런 까닭에 매년 양력 5월 20일이면 전주 이씨, 여산 송씨, 해주 정씨의 세 문중이 모여 정순왕후에게 제를 지낸다. 숙종은 1698년 정순왕후를 복위시키며 단종을 평생 생각하고 그리워했다는 의미로 정순왕후의 묘에 사능(思陵)이라는 능호를 올렸다. 사릉참봉의 벼슬을 한 서유영은 아! 왕비는 어린 나이에 불문에 몸을 의탁하여 한을 품고 고통을 인내하며 여생을 마쳤다며 『금계필담(1873년)』에 탄식을 하고는 능침을 배알할 때마다 목이 메인다고 했다. 사릉의 꽃과 나무, 선봉(仙封)을 지켜주고/ 소쩍새 소리마다 원망이 서려있네 / 정업원 동편에 있는 세 길 넘은 바위는 / 지금도 영월의 봉우리를 바라보네라는 문구로 슬픈 역사로 남은 정순왕후의 넋을 달랬다. 숙종의 주도 아래 단종과 정순왕후를 복위시킨 데 이어 영조는 친히 사릉을 찾아가 예를 마치고 정순왕후의 흔적을 찾아 정업원의 옛터에 정업원구기라는 비석을 세우고 유적지에 친필을 남겼으며, 정조도 단종에 관한 과거사 재정립을 하고 관련 유적을 정비하며 기록을 남겼다. 특히나 영조가 정순왕후에 극진한 예를 갖춘 데에는 영조의 생모인 최숙빈과 정순왕후가 같은 동향인 정읍 출신인 까닭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읍 시산리 동편마을에는 정순왕후의 태생지 안내판이 증조할아버지인 송계생의 유허비각과 노태우 대통령 때 새긴 정순왕후여산송씨태생지비가 함께 있다. 정순왕후가 궁을 나와 머물던 현 종로구 일대에는 단종이 있는 영월인 동쪽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는 동망봉을 비롯하여 자주동천과 여인시장이 있던 장소들이 유적으로 있고, 영월에는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하며 정순왕후를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과 장릉이 있다. 그 한을 달래려 1999년에 사릉에서 자란 소나무를 장릉에 옮겨 심고 정령송(精靈松)이라 하였지만, 합장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각자 잠든 능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나라의 자랑이 되었지만 그들의 한은 어찌할까. 봉분을 이불처럼 감싸고 있는 떼라도 서로에게 보내주어 그리운 마음을 보듬게 하면 좋겠다. 또한, 정읍의 정순왕후 태생지도 인근 태산 선비문화와 연계하여 왕가의 여인 정순왕후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는 의미 있는 유적지로 보완해 지역의 자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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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1 20:30

[한바탕 전주 즐기기] 전주 초밥 맛의 승부 웨리단길 초밥장이 vs 객리단길 초밥집

대부분 초밥이라고 하면 일본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전주에서도 맛을 보면 깜짝 놀랄만한 초밥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는데요. 지금부터 여러분을 초밥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소개해 드릴 곳은 웨리단길에 자리 잡고 있는 초밥장이입니다. 초밥장이의 인테리어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당과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 맛만큼은 어떤 초밥집보다도 화려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초밥장이의 특징은 숙성회를 초밥에 사용한다는 것인데요. 횟집에서 먹던 갓 잡은 생선의 식감과는 확연히 다른 식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숙성회는 일본 초밥의 특징인데요. 일본을 가실 수 없는 분들은 초밥장이에 오셔서 정통 초밥의 맛을 느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초밥은 어떻게 숙성하느냐에 따라 맛을 좌우합니다. 생선을 다루는 법과 생선의 살을 숙성시키는 법이 초밥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밥장이에서 만든 초밥의 식감은 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하여 초밥의 새로운 세계를 여러분께 보여줄 겁니다. 게다가 서비스로 나오는 게살 튀김도 맛이 참 좋습니다. 살이 도톰하게 오른 게살을 통째로 튀겨서 제공하는데요. 한번 드셔 보시면 그 맛에 빠져들게 되실 겁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추천해 드리고 싶은 메뉴는 사시미 정식인데요, 회, 초밥, 매운탕, 튀김 등을 한 번에 맛보실 수 있습니다. 가격은 조금 세지만 1인분도 주문할 수 있으니, 남 눈치 보지 않고 초밥을 즐길 실 분들에게 추천해 드립니다.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곳은 객리단길에 위치한 초밥집입니다. 가게 이름이 초밥집입니다. 처음에 가게 이름을 들었을 때는 좀 어색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만큼 초밥에 매우 자신이 있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가게 2층으로 올라가는 벽에 적혀진 문구처럼 인생도 초밥처럼 날로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초밥집 직원분들이 초밥을 날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초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 만드는데요. 직원분들이 초밥을 만드는 장면을 잠시 구경해보겠습니다. 실제 가게를 방문해보시면, 밀려드는 주문에 정신없이 초밥을 만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두 명의 주방의 손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초밥 만드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주방장 앞으로 혼자 오신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도 갖춰져 있으니, 혼자 초밥을 먹고 싶으신 분들도 대환영입니다. 초밥집의 인테리어는 초밥장이와는 조금 달리 화려합니다. 일본적인 느낌을 좀 더 강하게 살렸습니다. 주문한 초밥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초밥집의 초밥은 초밥장이의 초밥과는 맛이 조금 다릅니다. 초밥장이가 좀 더 쫀듯하다면, 초밥집은 조금 더 부드럽습니다. 개인의 기호에 따라 골라서 가시면 될 듯합니다. 초밥집 역시 숙성회를 사용하는데요. 초밥장이와는 약간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웨리단길의 초밥장이, 객리단길의 초밥집 어딜 가시든 맛있는 초밥을 즐기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초밥이 정말 대단한 것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세계화에 성공했다는 것인데요. 세계 어디를 가도 시내 중심지에 초밥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은 의견으로는 밥 위에 음식재료를 올리면 초밥이 되는 간단한 구성이 세계화에 밑거름된 것 같습니다. 저는 초밥을 먹으면서 전주가 자랑하는 한식도 초밥처럼 세계화가 되어, 세계 어디에서도 만나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전주 웨리단길 또는 객리단길에 오신다면 초밥의 세계화와 한식의 세계화를 생각해보면서 무엇이 다르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고민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아 초밥 맛있다에서 그치지 말고, 한식이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고민하며 초밥을 드셨으면 합니다. 언젠가 전 세계 모든 시내 중심에서 한식점을 만나게 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글사진 = 전주시 블로그 기자단 곽상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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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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