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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군산이야기] 근대문화, 군산시간여행마을에서 만나요

너무너무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군산. 군산 내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원도심 일원의 근대문화 건축물들을 재단장하여 마치 그 시절로 시간여행 가듯이 변모했다는 소식을 접한 지 오랜데 이제야 다시 찾아봤답니다. 그 예전엔 유명하다는 빵집에서 빵 먹고 월명공원에서 금강 바라봤던 듯싶은데... 지금은 골목골목 가족과 연인, 여행 온 이들과 신식양복 입은 신사가 나올 것 같은 근대건축물과 구석구석 채워진 소품들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네요. 시간여행마을을 너무 늦게야 찾은 저는 오늘 여행을 그간 유명세를 너무 탄 근대건축물들이 아닌 찬찬히 걸으며 골목골목을 담아보려 합니다. 아무리 여행은 즐겁다손 몸과 마음은 가볍게 (주머니는 무겁게?) 해야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죠? 물품보관이 가능한 곳을 알려 드릴게요. 먼저 박물관부터 둘러보실 분은 근대역사박물관의 물품보관실을 이용하세요. 그런데 박물관은 입장을 해야 보관할 수 있어요. 박물관 둘러보신 후 나가실 때 안내데스크에 말씀하시면 되고요. 다른 한 곳은 박물관 반대쪽 동국사 방향 쪽에 있는 도시형민박(게스트하우스)조합인 펀빌리지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물품보관소입니다. 사용료는 500원이라 합니다. 펀빌리지 협동조합은 시간여행마을 내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숙박을 원하시면 홈페이지를 이용하시면 되고요. 자, 이제 짐도 보관했으니 가벼운 걸음으로 출발하세요! 얼마 걷지 않아 쉼터가 보이네요. 근대쉼터라 쓰여 있네요. 계단식 관람석과 2층에 평상, 벤치 등이 있어 쉬었다 갈 수 있고 공연도 분수 있겠어요. 이 묵직하게 누르는 느낌의 지붕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지붕 모양을 재현한 것이랍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마음이 눌려지듯 아픈 것만 같습니다. 한 블록쯤 내려가면 그 유명한 빵집 앞으로 광장이 하나 더 있답니다. 군산 구 시청광장이 새롭게 재탄생한 공간이랍니다. 옛 시청 건물이었는데 로데오 건물로 변신 후 현재는 공연장과 느티나무 숲길 등 휴식공간으로 버스킹 공연 등이 진행된다 하네요. 벤치에 앉아 공연을 보며 쉬었다 가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단점 하나 찾았네요. 마을 내 길가엔 주차가 참, 어렵다는 점... 골목이 넓지 않은 데다 길가 주차라인마다 어김없이 주차되어있어 주차가 쉽진 않을 듯싶네요. 이럴 땐 차 없이 걷는 즐거움이 두 배가 돼요. 될 수 있으면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시면 좋을 듯싶네요. 군산의 화려했던 근대문화를 둘러보는 길. 새로 지어진 건물은 거의 없고, 새로 지어진 건물도 골목의 근대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게끔 하나하나 채워지고 있었어요. 길가의 카페들 모습입니다. 이색적인 카페거리도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하던데, 이곳의 카페며 식당, 문구점, 책방, 액세서리 가게 등 하나하나 나 근대스럽지요?하며 서 있는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낡은 거 아닌 세련된 근대스러움이랄까.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담고 있어요. 걷는 것처럼 눈으로 즐겨보세요. 오래된 교회 건물을 고친 테디베어 박물관도 중앙에 자리하고 있고요. 심지어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문구도 이토록 센스 있다니! 특유의 사투리를 담아 재치 있는 안내판과 구석구석 군산시간여행 콘텐츠로 통일되어있어서 골목골목 참 볼거리가 많아 즐거웠답니다. 일본식 가옥과 근대를 지나오며 만들어진 특유의 느낌, 군산의 역사를 모르더라도 사진 찍기 예쁘고 이색적인 여행지로 좋은 이유는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곳은 군산근대역사체험공간으로 여미랑이라는 시 위탁의 숙박시설과 정원, 역사교육관 등을 만들어 놓은 곳이에요. 중앙엔 정원도 있는데요. 사진도 한 컷 찰칵!! 특별히 찾아가지 않아도 골목골목 붙어있는 당시의 사진만 보아도 근대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추억의 사진들을 한 장씩 살펴보면서 군산 여행을 이어 가봅니다. 아날로그의 감성이 살아 있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 군산으로 떠난 시간여행! 여유를 가지고 한 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시나브로 젖어드는 도시 감성. 근대문화의 매력적인 도시 군산이었습니다. /글사진=군산시 사이버기자단 배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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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1 18:00

[익산에ON多] 익산의 역사가 흐르는 강, 만경강을 걷다

구강(舊江)의 흔적을 따라서 익산 만경강을 걷다 익산은 북쪽으로는 금강이 남쪽에는 만경강이 있어 예부터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강은 대단히 소중한 자산이었지요. 농업의 비중이 현저히 감소한 지금에서도 강이 지닌 가치는 대단히 높다고 생각됩니다. 강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기대어 살아온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경강 구강(舊江)의 흔적을 따라 걷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구강(舊江)의 흔적 속에 익산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익산의 이야기를 찾아 만경강 구강(舊江)의 흔적을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만경강은 발원지인 완주군 동상면 밤샘에서 시작해서 대아리 저수지에 모였다가 다시 흘러 고산천을 이룹니다. 고산천 물은 봉동을 지나면서 소양천을 만나 세를 키우고 삼례에서 전주천과 합류하면서 만경강의 모습을 갖춥니다. 삼례를 지나온 물은 익산 춘포면 입구에서 익산천과 만납니다. 이곳에서부터 만경강 걷기를 시작합니다. 걷기에 앞서 전망대에 올라 강 쪽을 바라보면 익산천 합류 지점 부근과 그 위쪽으로 모래밭이 생겼습니다. 모래를 보니 옛날에는 이곳이 모래찜질하던 곳이었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래밭 주변에서 놀고 있는 철새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철새를 관찰하고 있던 유칠선 박사(생태학)에 의하면 지금 보이는 새는 청둥오리, 물닭, 노랑부리저어새, 민물가마우지, 중대백로 등이랍니다. 만경강에는 많은 철새가 찾고 있는데 160~170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번 구강 흔적을 따라 걷는 코스 안내는 만경강 이야기 저자인 이종진 내 고향 물 해설사께서 해주었습니다. 만경강 익산 구간에는 네 개의 첩로(捷路)가 있는데요. 첩로(捷路)는 지름길을 의미합니다. 직강화 공사(1925년~1939년)를 하면서 굽은 수로를 직선으로 만든 곳이지요. 즉 첩로가 네 곳이 있다면 구강의 흔적도 네 곳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진은 만경강 구강(舊江) 지도 위에 제방과 첩로를 붉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첫 번째가 춘포 첩로입니다. 익산천이 합류되는 지점에 있는 판문마을에서 호소가와농장 주택이 있는 중촌마을까지 구간입니다. 구강(舊江)은 제방 바깥쪽 북쪽으로 굽어서 흘러 마을 앞으로 흘렀습니다. 지금은 판문마을 주변에서는 희미한 흔적만 보이고 제방에는 마침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제방 안쪽 강물은 반듯하게 흐르고 있는데 이 물길이 춘포 첩로입니다. 이 첩로가 지나는 땅은 행정구역상으로 김제시에 속해 있던 논이었습니다. 춘포 첩로의 종점인 중촌마을에서 보면 판문마을 쪽에서 보이지 않았던 구강(舊江)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이 구강은 중촌을 지나 반대 강 건너 구담마을로 흘렀는데요. 이곳은 지금도 행정구역으로는 춘포면에 속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중촌에는 호소가와농장과 이마무라농장 등이 있었습니다. 호소가와농장에서는 구강에 다리 놓아 이용했었고 구강(舊江)으로는 새우젓 배가 드나들었는데 강가에 심어 늘어진 버드나무에 배를 매어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현 중앙창호 건물 앞 파란 지붕 집 위치에 높은 주막이 있었고 여각도 두 곳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물류 이동이 활발했던 곳이라 생각됩니다. 서해에서 신창진까지는 큰 배로 이동하고 춘포는 작은 배를 이용했습니다. 자리를 이동해서 춘포에서 백구를 잇는 다리 중간에 서면 지나온 춘포첩로가 내려다보입니다. 좌측 제방 밖으로 멀리 돌아서 흐르던 강물이 첩로로 인해 일직선 가까운 형태로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춘포 문학 마당 앞 강 쪽에는 신월리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1920년대 만경강 직강화 공사를 시행하여 만경강으로 바뀌면서 마을 전체 주민들은 인근 마을로 분산 이사했습니다. 지금은 억새가 우거져 마을의 흔적을 볼 수는 없지만, 땅속에는 마을의 역사가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간리 첩로입니다. 용강마을에서 시작해서 석탄마을까지 이어진 구간입니다. 간리(間里)마을은 한자로 사이 간(間) 자를 사용하는데 아마 대장촌과 용강리의 사이에 존재한다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은 石灘洞(석탄동)인데 원래는 만경강이 이렇게 급한 사행을 이루며 물이 돌아가는 여울이라는 뜻의 돌여울이었습니다. 순우리말의 마을 이름을 굳이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원래의 뜻이 변형된 것이지요. 간리 구강은 만경강 직강공사 이후 주변에서 물이 모여들어 저수지와 같은 형태로 변화되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업용 간리 양수장입니다. 또 수십 년간 토사와 부유물 등이 쌓여 주변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2018년 말 익산시에서 준설작업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간리 첩로 서쪽 끝부분에 석탄마을이 있었는데 모두 이주하고 농업용 창고만 있습니다. 구강 바로 위쪽 제방에는 봄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봄까치꽃입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랍니다. 만경강 제방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 아직은 냉기가 느껴지지만, 발아래에는 분명 봄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곳에서 목천포 구간은 만경강 정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복잡한 편입니다. 제방에는 수문 공사와 자전거 도로 공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공사가 완료되면 만경강을 포함한 익산 자전거 일주 여행 코스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백구정 첩로입니다. 옛둑2길(이뜨기)에서 시작해서 수문 공사를 하는 지점까지를 말합니다. 지명을 아직도 이뜨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옛둑 즉 구강의 둑이 있던 마을을 지칭하는데 옛둑이 변화되어 이뜨기로 불리고 있답니다. 만경강 건너편 산 정상에 정자가 있었는데 그 정자가 백구정이라서 백구정 첩로 라 했습니다. 만경강 제수문을 닫으면 수문을 통해 구강 시점으로 강물이 유입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구간 구강에 특히 물이 많은 이유는 천동, 천서 방향 즉 구 익산천 물이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구강 시점에는 배수 시설과(수중 펌프) 하천부지로 물을 보냈던 수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은 목천포 첩로입니다. 시점은 논으로 사용되면서 폐쇄되었고 종점은 목천포 구 만경교 직전에 있습니다. 현 종점도 새로 만든 물길입니다. 본래 구강 종점은 구 만경교와 현 만경교 사이에 있는 수문입니다. 익산장례식장을 지나 흐르는 물길인데 사용되지 않으면서 좁은 물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목천포 첩로가 생기기 전 구강의 길이는 무려 4km였는데 목천포 첩로의 길이는 1km로 단축되어 홍수 시 배수효과는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답니다. 목천포에는 구 만경교 일부가 남아 있는데요. 그 위에서 바라보면 목천포 첩로를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1908년 신작로(전군가도)가 만들어졌을 때는 백구정에서 목천 구강 앞까지 연결하는 직선 도로였으나 1928년 만경교가 설치되면서 길이 바뀌었습니다. 구 만경교는 2015년 익산 쪽 5 스판, 김제 쪽 3 스판만 남기고 철거되었습니다. 구 만경강 옆으로 철교 3개가 지나가는데요. 복선 일반 철도용 2개 나머지는 고속철도용입니다. 그중에서 맨 처음 설치한 철교는 한강 철교 이후 처음으로 만든 철교라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랍니다. 구 만경교 앞쪽에는 만경강 물 문화관 부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낮은 지형이었으나 성토하여 도로 높이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행정구역은 김제시이지만 물문화관 관리는 익산시에서 할 계획입니다. 만경강 구강의 흔적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옛 나루터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만경강이 구 이리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만경강 남쪽 지역인 김제지역에서 이곳 나루터를 가장 많이 이용하였고요. 마을 명칭도 나룻가마을인데요. 지금도 구강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나루터가 있던 곳은 도시 개발이 되어 동익산과 접하고 있었습니다. 만경강이 이렇게 시내 안쪽으로 흘렀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만경강 구강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익산의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만경강의 관점에서 익산의 역사 흐름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만경강 구강 전체에 대해 개략적으로 바라보는 수준이었습니다만 향후 개별 첩로 구간을 돌아보면서 세부적인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익산의 만경강은 관광, 생태는 물론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사진 = 익산시 블로그 기자단 김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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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9 13:56

[카드뉴스] 노조 결성 뒤 CCTV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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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9.03.19 12:21

[카드뉴스] 한지붕 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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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9.03.19 12:20

[카드뉴스] 끊이지 않는 몰카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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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9.03.19 12:19

[카드뉴스] 익산시체육회 운영 마비

  • 기획
  • 전북일보
  • 2019.03.19 12:17

취임 1주년 맞은 김선기 전북연구원장 "최대 현안은 지역주도형 일자리 창출 위한 맞춤형 정책 개발"

전북연구원이 전북발전과 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연구, 연구윤리를 지키고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창의적인 연구 수행, 국가와 지역사회의 정책에 직결된 연구를 수행하는 전북연구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전북의 씽크탱크로 우뚝 서기 위해 새 출발을 하고 있는 전북연구원 김선기 원장을 만나 연구원 운영방향과 나아갈 모습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전북연구원장에 취임하신 지 1년이 되셨습니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신다면. 전북연구원에 대한 지역사회의 기대가 워낙 크기도 하고 국책연구원과 달리 지방연구원은 지역사회와 한 몸이 되어 돌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동안은 쉽지 않은 부담으로 느껴졌습니다. 취임 당시 전북연구원은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누적돼 있어 연구원의 정상화가 매우 시급한 형편이어서 조직의 안정화와 분위기의 일신을 통해 대외적으로 실추된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다행히 직원들이 원장의 운영방침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새로운 변화에 동참해주어 이제는 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습니다. - 취임 당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취임 당시 연구원이 당면한 매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연구원의 제도를 개선하고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직원들의 숙의과정을 거쳐 6대 분야, 28개 세부과제로 구성된 연구원 혁신방안을 마련해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직원들도 서로 화합하고 조직도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되찾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도의 선진화와 조직의 안정화를 바탕으로 연구원 본연의 미션에 충실해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는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 취임당시 연구원 조직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드러나 조직 정상화와 안정화를 강조하셨는데, 어느 정도 성과가 있으셨는지요. 취임 직전 연구원은 지난 수년간 누적된 문제와 한 동안 발생했던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지역사회의 비판적 평가와 함께 위상과 신뢰가 훼손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취임 직전에 언론 등을 통해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취임 직후부터 직원들에게 조직의 정상화와 안정화를 특히 강조해왔습니다. 조직의 안정화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는 개선하고 그릇된 관행은 고치도록 독려했으며,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의 화합과 결속을 지속적으로 당부했습니다. 원장이기 보다는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의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포용과 화합의 모습을 보이려고 나름 노력해 왔으며 긍정적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 연구활동 활성화도 강조하셨습니다. 변화가 있습니까. 연구원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본연의 연구활동입니다. 연구활동은 연구사업 뿐만 아니라 연구성과를 전북도와 지역사회에 전달하고 공유하는 일련의 연구조성사업도 포함됩니다. 연구사업은 전북연구원이 도의 출연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종합연구기관이기 때문에 도정 전반을 지원하는 정책연구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원의 연구역량을 높이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기본기획연구도 매우 중요합니다. 연구조성사업을 보다 활성화해 연구성과가 사장되지 않고 지역사회 여론과 도정을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연구원에서 해마다 당해 연도 10대 정책 어젠다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전북 현안 중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올해에는 일자리, 포용경제, 지역개발SOC환경, 인구, 균형발전, 농산어촌경제, 산업, 여성, 문화관광, 새만금 등 10대 분야를 선정하고, 각 분야의 정책어젠다와 추진과제를 발굴제시했습니다. 전북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단연 일자리 창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는 도민이 누려야 할 행복한 삶의 기본요건이자 그 자체가 최상의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북이 당면하고 있는 인구유출, 저출산, 청년여성노인문제 등의 이슈가 모두 일자리와 직결돼 있습니다. 저성장이 고착화돼 가는 상황에서 일자리는 국가적으로도 최우선 과제지만 도 차원에서도 지역주도형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맞춤형 정책 개발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 향후 연구원 운영과 관련하여 계획하고 계신 것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올해는 전북대도약을 실천하는 첫 해인 만큼 도정방침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연구를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선정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함께 세 가지 연구활동을 역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연구원에 설치된 대도약정책지원단 등 특별연구조직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기존 연구인력을 특별연구조직에 겸직 배치해 핵심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원장이 직접 성과를 관리할 예정입니다. 그간 다소 소원했던 시군과의 정책소통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또 다양한 학술행사를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국가기관, 지역유관기관, 지역 언론 등과 학술행사를 공동 개최하며, 국책연구기관이나 타 시도연구원과도 공동연구를 추진해 연구활동의 영역과 네트워크를 확대할 예정입니다. ■ [김선기 원장은] 국가균형지역발전 전문가, 30여년 지방행정연구원 근무 김 원장은 지난해 3월 전북연구원장을 맡으면서 대학 진학 차 서울로 올라간 지 40년 만에 고향인 전주로 내려왔다. 오랜만의 전주 생활에 생소했었다는 그는 고향이라 그런지 점점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껴진다고 한다. 전주에서 태어난 김 원장은 전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지리교육학 학사와 도시계획 석사,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1987년부터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30여 년 동안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과 부원장, 원장권한대행 등을 역임하며 지역발전정책과 지방자치 간 협력 등에 대해 연구하는 등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발전 분야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든 공직생활을 국책연구원으로 활동해온 그는 전북연구원장을 맡을 당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국책연구원은 자신의 분야만 연구하면 되지만, 전북연구원은 도정지원을 위한 종합정책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전북연구원이 도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싱크탱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기획
  • 강정원
  • 2019.03.18 20:18

[전북의 재발견] 김제 도자기 체험학습 - 아이들과 도자기 체험하기 좋은 곳

전통공예 도자기의 매력 속에 빠져들다 불청객 미세먼지로 하루하루 답답하긴 하지만 낮에도 저녁에도 이제는 따스한 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날씨가 매우 따뜻해졌습니다. 드디어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봄이 왔나 봅니다. 겨우내 추위 때문에 웅크린 몸과 마음 가족, 친구들과 봄꽃 놀이 구경하는 것도 좋고 친구들과 봄꽃 놀이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특별한 경험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요? 지평선 축제의 고장이면서 과거 농경사의 모습으로 시간여행 할 수 있는 김제에서 즐길 수 있는 전통문화 도자기 체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성 가득 담은 세상에 하나뿐인 도자기로 가족 찻잔과 그릇 만들어 보세요. 도자기 체험장은 김제 벽골제 맞은편 아리랑 문학관 뒤에 있는 창작스튜디오 전통문화 공방에 있습니다. 현재는 리모델링 작업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잠시 중단한 상태지만 도자기 체험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러면 전북 무형문화재 29호 토광 장동국 선생님과 함께하는 도자기 체험장을 가보겠습니다. 김제 도자기 체험학습장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생활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데요. 펀칭, 흙가래, 점토판, 물레 등 성형 기법을 활용하여 흙 피리, 컵, 다육식물 화분 등 종류도 다양한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체험은 사전예약입니다 ◆체험학습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체험 과목 재료비, 소성비 포함 가격입니다. ◆주소: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 1길(벽골제 창장 스튜디오) ◆문의전화 : 063-546-7534 / 010-7448-0002 체험 프로그램 및 비용은 아래 사진 참고해 주세요. 마침 가족 그릇을 만들고 싶다며 찾아온 체험객이 열심히 네모난 접시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살짝 물어보니 집에서 사용할 접시와 그릇을 만들고 싶어 왔다고 합니다. 장동국 선생님이 매화 그리는 노하우도 전수해 주고 체험객이 초벌구이 된 그릇에 직접 매화를 그려보았는데요. 처음 그리는 매화인데도 잘 그려진 것 같죠? 완성되면 이렇게 예쁜 매화 그림이 그려지네요. 나만의 그릇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새겨지는 그림 하나하나에 정성스런 손길이 더해집니다. 초벌구이된 그릇에 매화 그림을 그리면 전북 무형문화재의 솜씨로 유약을 바르고 초벌, 재벌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예쁜 그릇이 완성되면 택배로 받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 체험마을에서 도자기 체험을 몇 번 해봤지만, 전북 무형 문화재분께서 친절하고 자세하게 체험 지도해주니 더욱 자세히 배울 수 있더라고요. 김제 도자기 체험장은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우수한 가치를 보유, 체험객들로 하여금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도자기 체험장에서는 토광 장동국 선생님의 작품세계도 볼 수 있는데요. 백자, 청자, 분청, 목단 등 다양한 작품과 함께 김제의 상징, 쌀을 형상화한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살짝 만져보며 감상하니 박물관에서 유리창 너머로 볼 때 느끼지 못하는 도자기의 아름다운 선과 색, 무늬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되더라고요. 도자기 체험을 하셨다면 김제 주변도 함께 둘러보세요.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아리랑 문학관과 대한민국 농경문화 1번지를 볼 수 있는 벽골제,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현장 하얼빈역과 소설 아리랑을 배경을 재현한 아리랑 문학마을 등 볼거리 많은 김제로 봄나들이 가보세요~! /글사진 =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신총용

  • 기획
  • 기고
  • 2019.03.18 12:26

[한바탕 전주 즐기기] 전주 아중호수 순환산책로 완전정복

도심 속에서 즐기는 행복한 산책 '아중호수 순환 산책로'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아중호수 생태공원 순환산책로가 개통되었다는 정보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아중호수는 아중초등학교, 호동골 공원 주변에 있는 전주시의 생태공원으로 이전에는 아중저수지로 불렸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아중저수지로 부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주시는 지난 2009년부터 약 10년 동안 아중호수에 생태공원 순환산책로를 조성해왔습니다. 그동안 아중호수의 산책로는 중간에 끊겨있어 들어갔던 길에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했던 불편함이 있었지만, 순환산책로'가 새롭게 개통되면서 이제는 아중호수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중초등학교 방향에서 시작하여 순환산책로 한 바퀴를 둘러보았습니다. 표지판 상에서 5문에 해당하는데요. 저는 5문에서 수상테크광장을 지나 1문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경사로를 여유 있게 올라가다 보면 아중호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 없을 시간을 노려 평일 아침에 아중호수를 찾았습니다. 확 트이는 사진들을 담고 싶었는데, 오전에 방문하길 잘한 거 같습니다. 경관을 즐기며 더 걸어보았습니다. 이 산책로는 야경이 유명하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해가 있을 때의 호수가 더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두울 때는 멋진 조명을 볼 수 있지만, 이런 풍경들은 낮에만 볼 수 있죠. 조금 더 걸어보겠습니다. 아중호수의 풍경 볼만하시죠? 이번 순환산책로 개통으로 저~기 해가 떠있는 방향의 산책로를 돌아 현재 위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중간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앉아 쉬면 반대쪽 산책로가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기에 좀 더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정도 왔으니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해보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음..... 꽤 멀리 왔습니다. 딱 중간지점까지 온 것 같습니다. 중간지점에는 좀 더 큰 휴식공간이 있으며, 날씨가 따뜻해지면 조그만 야외무대로도 활용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이제 다시 출발하면서 풍경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운치 있는 갈대를 지나면 시작한 지점의 반대편에 도착하게 됩니다. 약 2.4km의 순환산책로 중 이곳까지의 거리가 약 1.6km에 해당합니다. 새로이 조성된 0.8km의 산책로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등산해야 할 것 같은 가파른 코스에 살짝 당황했었지만, 산책로가 쾌적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게 되면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략 40여 면 정도의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주차장에서 주차하신 뒤 제가 왔던 코스의 반대로 돌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새롭게 조성된 개통된 아중호수 순환산책로를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아중호수 순환 산책로는 자연경관을 조망하며 호수를 돌아 나올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서 산책하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또한, 산책로 중간에는 편의 시설과 쉼터들이 잘 마련되어 있어 시민이 산책을 즐기기에 너무나 좋은 공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일상 속 잠시 휴식이 필요한 여러분께 아중호수 산책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글사진=전주시 블로그 기자단 원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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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5 15:44

[전북의 재발견] 완주 장군봉 등산 코스 - 전북의 숨겨진 명산 장군봉과 해골바위

전북 완주 장군봉을 소개합니다. 전국 8대 오지 중 한 곳 완주군 동상면 구수마을에서 시작하는 성치산 장군봉은 사자바위, 두꺼비바위, 거북바위, 해골바위 등 기암괴석을 품고 있는 숨겨진 명산입니다. 완주 장군봉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공수부대 유격훈련장이 있을 정도로 암석이 많고 험해 평범한 산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산행코스는 주차장 - 장군봉 - 두꺼비바위 - 해골바위 ? 주차장 약 8km 원점회귀 코스로 4시간 전후가 소요됩니다. 구수리마을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장군봉 산행 코스는 이정표와 등산 리본만 잘 따라가면 어려움 없이 완주할 수 있으니 이정표를 믿고 산행만 즐기면 됩니다. 완주 구수리마을 앞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멋진 기암괴석을 품고 있는 장군봉을 향해 마을 길을 걷다 보면 정상(2.5km)을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산행이 시작됩니다. 2.5km 이정표에서 40여 분 오름길을 걷다 보면 본격적인 바위 슬램 구간입니다. 스틱은 배낭에 고정하고 두 팔로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암릉 슬램 구간. 조금 험하게 보이지만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는 시설과 바위도 미끄럽지 않아 조금만 조심하면 누구나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습니다. 薄霧 (박무 : 옅은 안개) 때문에 시원한 조망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저~~~ 멀리 보이는 운장산, 연석산이 그리는 수묵화는 정말 푸근하면서도 멋지죠. 한없이 쉬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몇 걸음 걷다 뒤돌아 산 아래 풍경을 보며 쉬엄쉬엄 걷다 보니 장군봉이 보입니다. 어느새 장군봉을 향한 마지막 암릉 길이 나타납니다. 주차장에서 1시간 30분 걸려 장군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장군봉에서 보이는 해골바위 방향 능선 길과 북장군봉. 박무에 가려 저 멀리 대둔산과 계룡산은 볼 수 없었지만, 성큼 다가온 봄기운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군봉에서 724봉(북장군봉)과 해골바위로 향하는 길입니다. 조금 어려운 길이지만 암릉 산행의 짜릿함과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완주 장군봉의 산행 코스입니다. 장군봉 정상에서 해골바위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장군봉의 명물 물개바위를 만나고 산죽 터널과 암릉 슬램 구간을 지나면 금방이라도 팔짝 뛰어오를 것 같은 두꺼비 바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두꺼비 바위부터 15분 정도 편안한 능선을 따라 걷다가 해골바위와 싸리제로 내려가는 분기점에서는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합니다. 해골바위까지는 암릉길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거북바위를 지나 전망 좋은 바위에서 잠시 숨 돌리며 오늘 걸어왔던 장군봉을 바라봅니다. 드디어 장군봉 산행길 하이라이트 해골바위에 도착했습니다. 장군봉 정상석 만큼이나 반가운 해골바위를 보기 위해 장군봉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군봉의 대표 명물이랍니다. 해골바위는 성인 2~3명이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나있는 바위인데요. 신묘하게도 해골 눈코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골바위라 했나봐요. 북한산과 도봉산에도 해골바위가 있는데요. 그것하고는 비교 불가인 것 같습니다. 해골바위 밑에 위태롭게 보이는 바위가 있네요. 설마 저 나무 받침 때문에 바위가 쓰러지지 않는 건 아니겠죠? 장군봉의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한걸음 내려오다 보면 구수리 마을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전북의 숨겨진 명산 장군봉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약 4시간 걸리는 완주 장군봉 등산 코스는 계곡물 사이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구수리 마을과 약간은 스릴 있는 암릉 구간을 오르내리면서 곳곳에 숨겨진 기암괴석들 만나는 재미가 있는데요. 연석산,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이 그리는 아름다운 산 그리메까지 볼 수 있는 전북의 산 중에서 숨겨진 명산 등산 추천코스로 소개합니다. /글사진=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신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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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5 15:32

[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삶과 죽음을 비춰보는 종교 기록

최근 전동성당에서 이색적인 사진 출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천주교 신앙인이 담는 전동성당의 사진이 있을 것이고, 조금 특별하게는 여행으로 한옥마을에 방문하여 일상의 시간과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남기는 사진이 있다. 그런데 종교적 신념이나 일상적 방문과는 색다르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들로 구성된 사진가들의 출사가 130년 동안 한자리에 우뚝선 전동성당의 상징적 면모를 사진과 기록으로 담아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130주년을 맞이한 전동성당은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사진과 기록을 공모하고 있는데, 현대의 사진뿐 아니라 장롱과 다락에서 나온 몇몇 기록은 그 동안 미처 몰랐던 것이어서, 향후 많은 이야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가령, 전동성당을 처음 지은 보두네 신부에 관해서는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데,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메달과 죽음을 얼마 앞두고 쓴 편지 등이 이번 공모를 통해 확인되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사실 동서를 막론하고 종교유물과 종교기록은 그 자체로 시대의 거울이기도 하고 역사적 상징성도 크기 때문에 박물관과 기록원의 콘텐츠를 구성하는 데도 비중이 크다. 또한 그것들은 시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어서, 종교유물과 기록물이 시대사와 생활사를 손색없이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직지이다. 직지를 통해서 당시의 불교사상은 물론, 한지문화나 인쇄문화와 같은 서지학적인 차원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기록은 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종교유물과 종교기록이 훼손과 망실의 속도에 있어서도 빠르다. 더러는 너무나 소중하기에 가지고 있던 사람의 죽음과 동시에 태워져 없어지거나, 더러는 너무나 쓸모없다고 여겨지기에 버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종교유물과 종교기록을 모으려는 시도가 결코 이른 감이 있는 것도 아니며, 솔직히는 늦었지만 지금이 또한 적기라는 마음으로 시도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주시에서 오는 20일부터 주최하는 전주 기록물 수집 공모전의 특별 주제로 시민의 삶 속에 종교문화 기록을 발굴하고 모으려는 의도가 뜻깊다. 혹자는 종교에서 수집하면 될 일인데, 구태여 전주가 나서서 할 필요까지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직지가 종교유산이자 동시에 국가유산인 것처럼, 어떤 특정인이나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모두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설령 그것이 수집된 이후에도 기증으로서만이 아니라 기탁의 맥락에서 관리하고, 언제든지 해당 종교에서 필요로 할 경우에 공유할 수 있다고 한다면, 모두의 자산인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기록원이 그렇게 종교기록을 보전하고, 국학진흥원의 유교책판이 그러하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전주시에서 전주정신의숲 프로젝트를 통해 민간기록물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종교와 관련된 유물과 기록이 상당수 확인되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종교인이 이리저리 이사하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최종적으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모든 것을 고물상에 넘기거나 없애려고 하였던 것도 있다. 전주정신의숲에 기탁된 그것들은 몇 차례 전시에서도 선보여졌고, 몇 점은 유일본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아 소중하게 보전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담겨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설립될 때부터의 기록과 사진을 20여권의 앨범에 간직하고 있던 교사의 기탁 사연도 있다. 어느 날 명을 달리하면서 앨범들도 사후 정리 과정에서 온 데 사라졌다가 소장자의 가족이 그것만큼은 꼭 간직하고 있으라고 했다면서 전주정신의숲에 기탁하였다. 그 앨범에는 예전의 학교시설, 종교시설은 물론 전주의 근현대 발자취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것으로 가득했다. 자칫 없어질 수 있던 것이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무소유의 정신이 짙게 깔린 까닭일까? 우리나라 유산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불교유물과 불교기록의 경우, 훼손과 망실의 속도는 훨씬 심하다. 전주와 전북의 근대현대 기록과 사진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한 스님은 당신이 그 중요성을 아는 만큼, 불교계에서도 이런 마음들이 널리 퍼져 많은 기록들이 다시금 되살아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목이 쉬도록 한다. 이제 그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해당하는 일일 것이기에, 이번 종교문화 분야의 기록공모가 기대된다. 꼭 신앙인이나 종교인이 아니어도, 졸업여행에서건 수학여행에서건 어김없이 사진 한 장 정도는 담은 기억을 누구나 가진 전동성당, 금산사, 서문교회, 원불교 교당의 모습은 물론이고, 민족종교의 그 기록이 어느 누군가의 기억만이 아니라 전주의 기억이 되고 모두의 기억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자산인지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만큼 또 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가지게 될 것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빛깔을 담아낼 수 있는 이들이 그려내는 전동성당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누구나 으레 포토 존에서 담아내는 전동성당이 아닌 종에 얽히거나 이층 회랑과 지하 주추에 담긴 이야기를 간직한 기록과 사진은 무엇을 또 말할까? 이번 출사에 나온 이들이 한결 같이 다음에는 일찍부터 준비해서 금산사의 사계를 담으면 좋겠다고 하듯이, 전주의 종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자료들이 담고 차고 넘치게 나오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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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4 20:56

[전북의 독립현장] 정읍, 호남 만세운동 불 지펴…남원, 민·관 함께 의거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정읍지역의 31운동은 호남지역 독립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헌병대의 무력 사용에도 불구하고 10일간 지역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남원에서는 덕과면장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 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일본제국주의의 억압에 숨 죽이던 민관이 함께 의거한 독립운동으로 평가된다. △태인에서 불어온 불길정읍 전역으로 1919년 3월 16일 태인 장날 정오를 기점으로 지역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당시 31운동 직전에 고종황제 국상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던 태인면 청년 김현곤, 송수련, 박지선은 김성수와 송진우 등 당시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만나 만세운동 계획을 알렸다. 또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서를 정읍으로 가져와 뜻을 함께하는 청년들과 만세운동을 논의했다. 이들은 지역민들이 많이 모이는 태인 장날에 의거하기로 하고 각지의 동지들을 규합했다. 태인면사무소 서기를 지내던 김현곤은 송한용의 집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수천장을 등사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시장 상인 및 주민들에게 건넸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청년들은 면사무소 인근에서 시장까지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시장에 모였던 수천명의 군중이 호응했다. 만세운동이 격화되자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일부 대열이 주재소까지 나아가자 헌병 등이 총을 겨누고 군중을 폭행했다. 태인지역의 만세운동은 10여일 동안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투옥된 애국지사들은 6월 또는 1년 반의 옥고를 치른 뒤에도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투쟁을 이어갔다. 태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정읍 전역으로 퍼졌다. 천도교와 기독교인 등은 3월 23일 정읍 장날을 맞아 만세운동을 계획했지만 전날 헌병대 급습을 받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4월 2일 읍내 장날에 덕천면에 사는 송기룡과 박제구 등 애국지사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수많은 군중이 들고일어났다. 정읍은 독립운동을 이끈 참지성인으로 꼽히는 백봉 라용균(1895~1984) 선생을 배출한 고장이다. 1918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재학 중이던 라용균은 백관수, 김도연 등과 함께 대대적인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우고 28 독립 선언에 나섰다. 28 독립 선언에서 재정 분야 책임자였던 그는 거사 뒤 관련자가 체포되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상하이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돼 법제위원과 정무조사 특별위원 및 정치분과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입법 활동과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국회에서는 백봉 라용균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9년부터 백봉 신사상을 제정해 매년 모범적인 의정 활동을 한 국회의원에게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민관이 다 함께 대한독립만세 전북지역에서 가장 치열한 항일운동을 벌였던 임실 둔남면 인근에 자리한 남원 덕과면에서는 면장 등 면사무소 직원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불붙었다. 덕과면장 이석기는 재종제 이성기, 면직원 조동선 등과 1919년 4월 3일 신양리 도화곡의 식수기념일을 맞아 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비밀리에 각 면장에게 만세운동 참가 취지서 등을 보내며 동참을 호소했다. 이석기는 우리 조선 국민도 독립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시 도화곡에 나온 800여명의 면민들에게 만세운동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면민들이 호응하며 시위 행진을 벌였다. 무장한 일본 헌병대는 만세운동에 참여한 면민들을 억압하는 등 무력으로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에 영향을 받은 남원지역민 1000여명은 4월 4일 장날 광한루에 모여 태극기를 선두로 만세운동을 벌였다. 기독교인들은 작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눠줬고, 천도교인들은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당시 일본 헌병대의 무차별 총격으로 시위 대열은 해산하고, 8명이 현장에서 순국했다. 또 10여명이 중상을 입고 20명이 붙잡혔다. 앞서 3월 2일 서울에서 온 독립선언서가 임실을 거쳐 덕과면 교인들에게 전달됐다. 남원읍 금리에 있었던 천도교 교구장 유태홍은 선언서 취지를 교인들에게 알리는 등 대한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31운동 길이 빛내리 정읍시와 태인청년회의소는 지난 1일 태인면 일대에서 독립만세운동 기념 행사를 열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1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 100년 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날의 역사를 재현했다. 정읍시는 오는 8월 중 태인 31운동 등 정읍지역이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남원에는 덕과면 31운동 발상지 기념탑과 함께 기념비가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동아일보사는 창간 54주년을 맞아 남원청년회의소의 협력을 받아 1974년 3월 1일 남원 31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한 1919 기미년 31 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1919년 4월 3일 남원 덕과면에서 이석기 면장 주도의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4월 3일 덕과면 만세운동은 남원군민에게 많은 자극과 감동을 안겼다. 만세운동은 일제에게도 큰 충격을 줘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설립되는 밑거름이 됐다. 문화정치기간에 창간된 동아일보사는 이 같은 남원지역의 뜨거운 자주독립의 정신을 기리고 순국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남원청년회의소와 이 비를 건립했다. 국가보훈처는 2002년 11월 이 기념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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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국
  • 2019.03.1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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