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취추풍'
지난 21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단장/지휘 유장영)의 정기연주회는 또 하나의 의미있는 공연으로 평가된다. 근래 도립국악관현악단에서는 유명한 합주곡, 혹은 명인명창을 불러 협연하는 일반적인 형식을 탈피해, 해마다 새로운 주제를 정해 독특한 테마가 있는 공연으로 꾸미고 있다. 아, 안중근(2010년, 안중근 서거100주년), 천년의 보물, 팔만대장경(2011년, 팔만대장경 천년 기념), 그 강에 가고 싶다(2012년, 섬진강시인 김용택의 칸타타) 등이 그것이다.이번 공연은 전북의 정체성을 살린 주제이다. 바로, 전라북도의 산/들/바다/강/길 등 다섯 테마를 주제로 전북의 산하, 취추풍-가을바람에 취하다-를 무대에 올렸다. 전라북도의 아름다운 가을을 영상을 곁들인 다섯 주제로 엮었는데, 우리 지역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담겨있는 역사의 굴곡까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또한, 다섯 주제 모두 창작 초연곡으로 꾸몄다는 점은 상당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런 도전과 의욕은 지휘자와 단원들 간에 형성된 오랜 신뢰 그리고 연주력에 대한 믿음의 결과로 보인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형식과 내용의 국악관현악단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64년7월 25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을 시작으로, 이후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 오늘날에는 100여개의 국악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국악관현악단 역사가 50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양 오케스트라와 달리 많은 창작곡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중앙의 유명작곡가 곡을 지방에서 가져다 연주하는데 반해,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은 자체 창작위촉곡을 가장 활발히 만들어 온 단체인데다가, 오히려 전북도립의 곡이 서울 등 전국에서 연주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전통예술의 본향으로 자부하고 있는 전라북도가, 미래의 관점에서 볼 때, 21세기 초 새로운 전통예술의 종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고 여겨진다.이번 공연에서는 강은구, 황호준, 김계옥 등 중앙을 대표하는 세 명의 작곡가, 그리고 우리 지역의 유장영, 강성오 두 사람의 곡이 초연곡으로 선보였다.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최근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작곡가의 구성부터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떤 곡은 초연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부분적으로 아쉬움을 남겼고, 어떤 곡은 너무나도 앞선 선율적 실험으로, 오히려 가을 정취에 한 줄기 서늘한 바람같은 긴장감을 불어 넣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은 초연곡이 지니는 기본적인 위험요소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그리 크게 비판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특히, 두 번째 연주된 강은구의 들녘에 부는 바람은 서양의 현대음악을 방불케할 정도의 리듬감과 음정, 선율진행방식으로 손에 땀을 쥐게 했는데, 김제 만경들판에서 불려지는 농사소리를 선율의 테마로 삼고, 오채질굿 등 전라우도농악 판굿 가락을 리듬의 테마로 삼은 점은 높이 살만 했다. 또한, 강성오의 섬진강의 새벽, 황호준의 지리산은 젊은 작곡가다운 역동성과 실험성이 충만했고, 반면 김계옥의 해지려와 유장영의 길에서 길을 묻다는 각기 자신의 개성있는 영역에서 보다 노련하고 농익은 표현으로 시종일관 편안함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유장영 곡에서는 도입부의 생황 협주를 통해 길을 통한 문화의 영향을, 판소리 합창을 통해서는 길을 묻는 인간과 문명의 방황, 또한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자랑거리를 자진머리로 따로 묶어 표현함으로써 역동성과 흥겨움 살렸다. 이 곡은 앞으로 전북을 홍보하는 좋은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이번에 사용된 영상은 모두 올해 새로 촬영한 자료라 한다. 영상은 그 자체로도 의미와 시각적 전달력이 큰 힘이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아주 정교하게 편집되고 활용되어야 청각적인 음악 전달의 중심을 뒷받침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 보인 음악적 깊이와 성과를 볼 때, 앞으로 이 공연에서는 관현악 음악만 집중해서도 충분히 그 주제를 살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이화동 (전북대 예술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