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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인 듯, 속세가 아닌 듯…김제 청운사 하소백련
권혁일 기자  |  milpislove@jjan.kr / 등록일 : 2016.07.15  / 최종수정 : 2016.07.15  20:36:13


 

   
▲ 지난 13일,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

 

‘또’ 길을 잘못 들었다.

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몇 번씩 확인했건만, 실제 도로에서 그런 건 소용이 없었다. 내가 길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알파고가 인류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기고, 화면에 갇혀 있던 포켓몬들이 증강현실로 튀어나오는 세상인데 이제 그만 기계를 믿어야겠다.

 

   
▲ 그림=이권중


전북지역에서 연꽃으로 유명한 곳을 꼽자면 전주 덕진공원(덕진연못)과 정읍 피향정, 완주 송광사 등을 들곤 한다.
그리고 이 목록에 빠져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얀 연’이 가득한 곳으로, 홍련이 주를 이루는 다른 곳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청운사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하소백련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7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 열흘 동안 열린다.
하소백련 축제가 한창인 김제 청운사를 찾았다.

청운사에는 다른 절에 있는 일주문이 없다. 일주문 대신 기자를 맞이한 것은 ‘제15회 하소백련축제’라고 쓰인 연두색 현수막과 연잎이 뒤덮은 저수지였다.
사실 처음에는 이 저수지를 보고 너무 늦었나?’ 하며 실망했다. 왜냐하면 저수지를 연잎이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위로 올라온 연꽃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더 들어가 보면 진짜가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청운사로 들어섰는데,
진짜가 있었다.
 

   
▲ 지난 13일,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 입구의 저수지. 연잎만 가득한 모습이지만, 여기서 실망하면 안 된다.


차량 30여 대가 쉴 수 있는 주차장을 뒤로하고,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갔다.
전주 덕진연못이 ‘규모’로 승부한다면, 이곳은 아기자기함으로 맞선다.
대학 강의실 한 칸 정도 크기로 보이는, 생긴 것이 마치 논처럼 돼 있는 연못 4개가 연달아 나타나는데, 흰 연꽃이 길가에 바짝 붙어 올라와 있다. 그 거리가 어느 정도냐면, 그냥 길을 걷다가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대충 찍어도 잘 나올 만한 거리다.
 

   
▲ 지난 13일, 청운사 하소백련지의 연꽃.


비가 내리기 시작한 오전 11시. 빗방울이 연잎을 탁탁 때리는 소리가 은근히 즐거웠다.
한 방문객이 원두막에 앉아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휴대폰으로 찍은 연꽃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중이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찾아왔다는 그는 “매년 찾아오는데, 해마다 다른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백련의 매력…… 역시 ‘고고함’ 아닐까요? 예쁘고.”


안 그래도 가까운 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데크도 마련돼 있다. 다만 데크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다소 낡은 것이 흠이다.
데크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줄 사진사가 없어 난처한 표정인 일행을 만났다. 일행에 있던 이모 씨가 휴대폰을 내밀며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양어깨에 거무튀튀한 DSLR 하나씩을 걸치고 있는 것이 딱 봐도 기자 티가 났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보고 군산에서 왔어요. 연꽃 사진이 예쁘길래…….”


입구의 저수지를 보고는 실망했지만, 청운사 경내로 들어와 보니 그 실망이 만회됐다고 그들은 말했다.


“올라와서 보니까 연꽃이 예쁘네요. 비가 와서 그런지 한적하기도 하고……. 사람 북적이면 싫잖아요.”

 



아기자기한 맛이라고 하면, 청운사라는 절 자체도 그렇다.
일주문과 사천왕상이 없다는 데서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백련이 가득한 연못과 무량광전(無量光殿)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조그만 건물이 바로 이 절의 대웅전(大雄殿)이다. 대웅전은 각 사찰의 핵심 건물이기 때문에 가장 위엄 있게 지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절의 대웅전은 ‘위엄’보다는 ‘친근함’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 청운사 대웅전. 웅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친근한 느낌을 준다.

 

   
▲ 청운사 한쪽에 마련돼 있는 '하소연하는 곳'.


절 한쪽에는 ‘하소연하는 곳’이 마련돼 있었다. ‘하소백련’, 그러니까 ‘하소 연’과의 연상 작용을 노린 듯 보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티피’를 닮은 ‘하소연하는 곳’ 주변에는 방문객들의 소원을 담은 손바닥만 한 쪽지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문구는
 

“사랑하는 나의 자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라는 글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사랑하는 것이리라. “사랑하게 해주세요”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사랑하고 있으니 그렇게 표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

   
▲ 육체는 단명하나 금전은 영원한 것. 로또... 1등 당첨이 최고다.


물론 ‘로또 일등’ 같은 평범한(?) 소원도 많이 걸려 있었다.
사찰 주요 건물이 있는 곳 맞은편에는 일종의 식물원처럼 다양한 연 종류를 모아놓은 곳도 있다. 이곳에는 홍련도 있고 다양한 연들이 조그만 화분(?)에 담겨 있는데, 백미는 역시 수련이 아닐까 싶다.
 

   
▲ 이것은 수련이다. 마침 비를 몇 방울 맞아 한층 더 맑아 보인다.

 

   
▲ 이렇게 작은 화분(?)에 다양한 연 종류가 담겨 있다. 깔끔하거나 잘 정돈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이 나름의 맛이 있다.


수련과 연은 사실 잘 모르고 언뜻 보면 “뭐가 다른데?” 하기 쉽다. 마치 (기자를 포함해)사람들이 봄에 매화와 벚꽃을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까.
간단히 보자면, 잎이 수면 위로 높이 올라와 있으면 연이고 수면에 동동 떠 있으면 수련이다. 꽃의 위치도 마찬가지다. 꽃이 수면 위로 높이 뻗어 있는 것은 연이고, 수면에 떠 있는 것은 수련이다.
잎 표면을 봐도 구분할 수 있는데, 연잎은 마치 기름 코팅이 돼 있는 것처럼 물이 묻지 않는다. 가운데가 움푹하고 물방울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잎은 연잎이다. 반면 수련의 잎은 ‘팩맨’을 닮은(혹은 한 조각 먹은 피자를 닮은) 모양이고, 물이 묻는다.
 

   
▲ 다양한 연꽃들.

 

   
▲ 다양한 연꽃들.

 

   
▲ 다양한 연꽃들.


다시 연못가를 따라 발을 옮겼다.
청운사 하소백련은 사실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주지 도원(道源) 스님이 20여 년 전 천안 인취사에서 8뿌리를 얻어 청운사 경내 논배미에 옮겨 심은 것이 청운사 하소백련의 시작이었다.
‘생산불교를 통한 농촌 살리기’의 일환이었다.
‘하소(蝦沼)’는 ‘새우 하’와 ‘늪 소’를 쓴다. ‘마치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의 명당’이라는 의미로 도원 스님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백련(白蓮)’은 말 그대로 ‘하얀 연’이다. 그것도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티 없이 맑고 고운 연꽃이다.
청운사 관계자에 따르면 하소백련지의 백련은 엄밀히 말하자면 ‘청련’에 가깝다고 한다.

“다른 백련은 붉게 올라오고 꽃이 피는 과정에서 하얘지는데, 하소백련은 푸르게 올라와서 하얗게 만개하는 게 특징이지요.”
 

   
▲ 백련 봉오리와 활짝 핀 백련.


지난 2002년부터는 ‘하소백련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올해가 15번째다. 올해 축제는 7월 17일까지인데, 하소백련은 이르면 6월부터 피기 시작해 늦게는 9월 초까지도 남아 있으니 축제 기간을 놓쳤다고 ‘너무 늦었다’ 생각할 필요는 없다.
8뿌리에서 시작된 하소백련은 이제 청운사 경내와 저수지를 가득 메울 정도가 됐다. 청운사 관계자가 “너무 많아져서 최근에 줄인 것이 이 정도다”고 말할 정도다.
전체 면적은 1만여 평이라고 한다. 1평은 3.3㎡니까, 약 3만3000㎡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계산해놓고 보니 은근히 대규모다.
 

   
▲ 청운사 뒤쪽 언덕에서 바라본 하소백련지. 청운사 경내 연못 하나의 규모는 대충 이 정도다.


연은 꽃잎부터 뿌리까지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또 특징이다. ‘무농약·친환경’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하소백련지에도 연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과 연잎 차 등을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식당은 무량광전 바로 아래쪽에, 카페는 주차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
 

   
▲ 카페에서 백련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창밖 하소백련지.


덥고 습한 여름 날씨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카페에서 얼음 띄운 백련차 한 잔 마시며 창밖 연못을 바라보면 그만한 피서도 따로 없을 것이다.
한 잔에 3000원인 (시원한)백련차를 주문했더니, 얼음이 띄워진 시원한 잔과 단 과자 한 조각이 함께 나왔다.
백련차에서는 단맛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단맛 비슷한 맛이 난다. 은은한 것이 꼭 연꽃 향기를 미각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카페를 맡아 운영하고 있는 정하담 씨는 “주로 오후에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면서 “꽃은 오후에 오므라들지만, 향은 오히려 꽃이 오므라든 저녁에 더 진해진다”고 말했다.
보통 연꽃은 아침 일찍 피어 오후가 되면 오므라들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사진이나 어떤 시각적 유희가 목적이라면 될 수 있으면 오전에 찾아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정 씨의 말대로 연꽃의 향을 즐기고 싶다면 저녁에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

연잎을 탁탁 때리던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이제 다시 속세로 돌아갈 시간이다.
 

   
▲ 하소백련의 고운 자태.

 

   
▲ 연 봉오리에 앉아 있는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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