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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팔도유람-부산 적산가옥 투어] 아픈 역사의 파편…아물 수 없는 상처를 더듬다
기타 기자  |  desk@jjan.kr / 등록일 : 2016.12.08  / 최종수정 : 2016.12.08  23:54:55
   
▲ ‘정란각’은 목재는 물론이고 유리까지 일본에서 실어와 지었다. 다다미방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으면 꼭 일본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적산가옥(敵産家屋). 광복 후 일본인이 물러가며 남겨 놓고 간 주택을 일컫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발간된 신문에 따르면 부산 시내 일인 가옥은 무려 1만 4000호에 이르렀다. 부산일보사와 부산시가 공동주최하는 부산 속 들여다보기(부속들)가 지난 19일 ‘제19회 적산가옥 투어’에 나섰다. 적산가옥은 당시 일본인의 안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광복동, 동광동, 부평동, 신창동, 대교동, 충무동, 보수동에 많았다. 하지만 적산가옥은 세월이 지나며 거의 사라졌다.

남아 있는 적산가옥도 지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형을 많이 잃었다. ‘부속들’은 왜 적산가옥에 주목했을까. 이날 조장현 해설사는 “적산가옥은 우리가 일제로부터 다시 찾은 재산이다. 일제 강점을 입증하는 네거티브 헤리티지(부정적 유산)로 건축과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 여행 온 게 아닐까

   
▲ 부산 속 들여다보기 적산가옥 투어 참가자들.

부산역을 출발한 버스는 먼저 동구 수정동 ‘정란각’으로 향했다. ‘문화공감 수정’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지만 아직은 정란각이 익숙하다. 꼭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주택가 담장 너머로 일본식 건물이 나타났다. 목재는 물론이고 유리까지 대부분의 건자재를 일본에서 실어왔다. 철도청장 관사로 지어진 정란각은 해방 이후에는 여직원이 200명이 넘는 유명한 요정이어서 최고 권력자들까지도 다녀갔단다. 영화 ‘장군의 아들’도 여기서 찍었다. 현재 1층은 카페로 사용되고,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공개될 예정이다. 다다미방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으니 꼭 일본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그 시절 부산의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특별한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사람도 보인다. 작은방의 서랍장은 기모노를 넣었던 곳이다. 이 서랍장 손잡이에는 여자 손가락 세 개만 들어가는 홈이 있다. 그 시절에 이런 디테일이라니…. 정란각 전속 해설사인 이몽래 가옥 관리실장은 “지진이 많은 일본이라 못을 안 박고 하중이 작게 만들었다. 건물 지을 때 매뉴얼을 정확하게 지켜서 유지가 잘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정동 일맥문화재단 건물로 사용되는 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토목업체에 종사했던 일본인 다나카가 지은 일식 가옥이다. 일식 기와지붕과 창문, 다다미 등 일식 주거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 보수공사로 연말까지 내부를 공개하지 않아 아쉬웠다. 조 해설사는 “담장이 크게 3단 구조로 되어 있다. 아래 큰 무늬, 중간 작은 무늬, 위쪽은 민무늬로 각각 다르게 장식된 담만 현재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화정 우리옷’은 두 가지 형태의 지붕이 이색적이다.

초량동 전통시장 근처에서 전통한복전문대여점 ‘화정 우리옷’을 만났다. 예전부터 지나가면서 특이한 건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 해설사는 “건축 양식이 오른쪽은 맞배지붕 형식, 왼쪽은 팔작지붕으로 두 가지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나무 비늘판으로 외벽을 장식하는 것도 일본식이다”고 말했다.

△오래된 건물의 변신은 무죄

2009년에 철거되어 이제는 다 없어지고 붉은 벽돌로 쌓은 벽만 남은 남선창고 터에 도착했다. 그 시절 함경도에서는 배로 물건을 싣고 부산으로 왔다. 부산에서 경부선 철도로 서울로 물건을 올려 줄 때 저장하던 창고가 남선창고였다. 20세기 초 한반도 물류의 상징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이 북선창고였다. 경원선이 생기며 윗지방에 북선창고가 만들어지자 남선창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에 가장 많이 보관했던 물건이 명태여서 ‘명태 고방’이라고도 불렸다. ‘부산 토박이 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명태도 사라지고, 남선창고마저 사라졌다.

   
▲ 커피집으로 변신한 백제병원의 미공개 정원.

‘브라운핸즈 백제’라는 카페로 변신해 핫플레이스가 된 백제병원에 도착했다. 이렇게 기구한 운명의 건물이 있나 싶다. 백제병원은 1920년에 병원으로 출발, 1930년에는 중국집으로 변신했다. 또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일본군 장교숙소였다. 광복 후에는 치안대 사무실로 사용됐다. 한국전쟁 후에는 예식장으로 사용되다 1972년에 화재가 난 뒤 상가 건물이 되었다. 정은숙 건물주는 평소 개방하지 않던 지하와 2층까지 부속들에게 구경시켜 주었다. 정 씨는 “예전에 롤러스케이트장, 탁구장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벽돌과 나무로만 만들어 철근이 안 든 오래된 건물에 대해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버스로 옮겨 타고 전통찻집 달마로 향했다. 거기서 사찰식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 건물은 양성봉 초대 부산시장이자 4대 경남도지사가 사용했고, 한국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도 머물렀단다. 달마에서는 부산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개보수를 너무 많이 해 지금은 적산가옥으로 보기는 어렵단다. 20대 초반의 푸릇푸릇한 뮤지션 김도현·이성용 씨가 아버님 어머님께 바친다며 이문세, 김현식의 조금 흘러간 노래를 부르자 기분이 묘해졌다.

동구 이바구길 금수사 부근에도 일식 가옥 한 채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건물 이름이나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회사에서 카페와 맥줏집으로 곧 문을 열 계획이라니 기대가 된다. 초량동 소림사 근처 대한불교선교종 천운사에도 일식가옥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행은 차와 떡 과일 대접을 받으며 주지 스님으로부터 절의 유래에 대해 들었다.

   
▲ 오래된 창고가 문화복합공간 비욘드가라지로 재탄생했다.

마지막 목적지는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 중앙동의 비욘드가라지이다. 원래는 대교창고라는 이름으로 쌀 창고였다가 제지 창고로도 사용됐단다. 지금은 플리마켓, 결혼식장으로 사용된다. 오래된 창고 역시 높은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해 소중한 창고들이 사라지고 있다. 비욘드 가라지의 한 관계자는 “넓고 비어 있다는 점에서 창고는 음악, 음식 등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어 버린 공간에 무엇을 채울까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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