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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을 시작하는 사람들 "오늘은 남은 삶 중 가장 젊은 날…못 할 게 없다"
전북일보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1.04  / 최종수정 : 2017.01.04  22:53:20

“야이~ 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외치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나이는 물론 과거 경력에 상관없이 사회 현장을 누비는 ‘철 잊은(?) 청춘’들이 적지 않다.

전주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북의 주민등록인구 187만 명중 17.8%가 65세 이상으로 조사됐다. 전북의 고령 인구 비율은 2013년 16.7%, 2014년 17.2%, 2015년 17.8%로 최근 3년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부분의 장년층 직장인들은 “50대 후반이나 60세에 은퇴하고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아직 대비책을 세우지 못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은퇴 이후 막상 일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의 종류와 보수, 근로조건 등이 은퇴 이전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은퇴와 함께 자존심은 물론 과거를 다 떨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가 쉽지 않다. 보다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 제2막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전북일보가 들여다봤다.

■ 67세 박용곤씨, 경비원 생활서 행복 찾는 코카콜라맨

   

박용곤 씨(67)는 지난해 11월 완주군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의 경비원직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눈물을 쏟았다.

“지금까지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연로하신 어머니가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진안군 백운면 출신인 박 씨는 원래 코카콜라맨이었다. 지난 1973년 세계적 기업인 코카콜라 전주공장에 입사했다. 당시 전주시 팔복동에 있던 공장에서 품질관리직으로 20년 넘게 근무했지만 광주로 공장이 이전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형제자매가 4남 3녀인데, 모두 서울에서 일하고 있어요. 광주로 회사를 옮기면 진안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돌볼 수가 없어 그만뒀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효심이 박 씨의 인생 2막을 열어줬다.

지인의 제안으로 택시업계에 발을 들인 뒤에는 만취한 손님으로 부터 험한 소리를 듣기도 했고, 여고생 승객들의 품격에 감동해 교장에게 ‘학생들이 참 바르다’며 손편지를 써보내 자신의 이름이 학교에 알려지는 일도 있었다.

“택시 기사를 막 대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아 10년 정도 하다 그만뒀다”는 그는 한식당과 노래방 운영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으로 그의 인생에 최대 고비가 왔다. 노래방 영업을 할 당시 손님에게 술을 팔다 신고돼 영업정지 1개월과 벌금 100만 원을 부과받은 뒤 자영업을 포기했고, 무기력에 빠졌다.

“이후 지역노인일자리센터를 찾았죠.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지금의 직장을 소개받았습니다.”

어렵게 재기의 기회를 열어준 직장에서도 박 씨의 노력은 계속됐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곳이라 쇳가루가 많이 날리다 보니 사원들이 인상을 자주 쓰더라고요. 어두운 표정으로 어두운 직장 분위기가 염려돼 아들 같은 사원들에게 출퇴근 시간 직접 다가가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어요’라고 매일 인사해요.”

격일로 근무하는 박 씨는 주말마다 아흔을 넘긴 어머니를 찾는다. 누구에게는 인생 2막이라는 ‘경비직’이 가벼운 일자리로 보일 수 있지만 박 씨는 새로운 일에 적응해가며 매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언젠가 경비원을 그만두면 진안으로 내려가 어머님을 모시고 귀농·귀촌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흔히 주변에서 ‘내 나이가 10년만 젊었어도 못할 일이 없었을텐데’라는 말을 하는데 ‘앞으로 1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이 제일 좋을 때’ 아닌가요?”

행복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는 박 씨의 말이 귓가를 울렸다.

■ 64세 강세규씨, 공무원에서 노인 취업 팀장으로

   

“노인분들에게 적당한 일거리는 자신감과 건강을 가져다 줍니다.”

전주시 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만난 강세규 씨(64)는 혈색 좋은 얼굴에 누가 봐도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얼굴 가득한 환한 미소는 덤이다.

남들보다는 다소 늦은 31세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강 씨는 2014년 12월 퇴직할 때까지 전주시청과 완산구청, 조촌동, 팔복동, 송천1동, 동산동 주민센터까지 전주시 곳곳을 두루 거쳤다. 주로 세무 업무와 노인 관련 업무, 어린이집 관련 보육 업무 등을 맡았다.

퇴직이 다가오자 강 씨는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 퇴직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퇴직 전 5년 동안 보육 업무를 맡은 경험을 살려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론공부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강의를 하고싶은 마음에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퇴직 이후를 고민하다 2012년부터 우석대 아동복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보육 업무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강의를 해보자고 생각했다”는 그는 “하지만 막상 오랜 시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되더라”며 진로를 변경한 상황을 설명했다.

강 씨에게 그때 떠오른 것이 노인 관련 업무다.

“나도 곧 노인이 될 테고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노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업무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일자리를 찾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보람도 느끼고 싶었죠.”

한평생 공무원 업무를 하며 얻은 경험과 그때 취득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큰 도움이 됐다.

“처음 전주시 노인취업지원센터 채용 공고를 봤을 때 ‘이 일이다!’ 싶었습니다. 공고문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노인 관련 업무를 한 경험이 있으면 가산점이 있더라고요.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죠.”

지금 일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강 씨는 공직 생활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내 일자리 하나 얻어서 좋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이곳에서 어려운 노인분들께 일자리를 소개하고, 또 취업에 성공하도록 도와주면서 정말 큰 보람을 얻었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행복한 사람 아닐까요.”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강 씨는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노년에 접어든 사람은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55세 김미현씨, 농진청 연구원 접고 의류 수거업체 취직

   

“많은 분들이 새로운 일에 부딪쳐 보기 전에 주변 환경이나 이목 등을 너무 신경 쓰시는 것 같아요.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저하실 필요가 없지 않은가요?”

전주시 전미동 재활용의류 수출업체인 (유)우리산업에서 근무하는 김미현 씨(55)는 의류 수거 도중 속눈썹에 하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전주시 여성인력개발센터 소개로 지난해 8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김 씨는 하루 종일 서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먼지가 가득한 옷가지들을 분류한다. 이 옷들 중 쓸만한 것들은 동남아 등지로 수출된다.

김 씨는 현재 인생의 2막을 넘어 3막, 4막 째를 살고 있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198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 그는 대학 2학년 때 현재 삼성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1남 1녀를 뒀다.

결혼하면서 미술학도의 길을 접은 김 씨는 대신 신한은행에 입사해 은행원이 됐지만 IMF가 터지면서 불어닥친 정리해고 바람속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후 다시 수원시 권선구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사회복지 업무를 맡았지만 건강이 썩 좋지 않아 힘든 사회복지 업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8년 만에 일을 그만 뒀다.

그의 세 번째 직장은 농촌진흥청으로 연구원을 돕는 예비연구원이 돼 연구를 보조했다.

은행원에서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으로, 또다시 농진청 보조연구원으로 남들은 쉽게 얻기 힘든 자리를 김 씨가 연이어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대령 전역) 덕분에 국가유공자 자녀가 됐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삼성그룹에서 퇴직하고 농진청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두 사람은 고심 끝에 지난 2014년 전북으로 이사하기로 뜻을 모았고 남편의 고향인 완주 소양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북혁신도시까지 출퇴근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계약기간 만료도 다가와 재계약을 포기하고 농진청을 떠났다.

부부의 연금으로도 충분히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집에 틀어박혀있기 보다는 일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전주시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찾았고, 센터에서 제안한 재활용의류 수거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보수는 농촌진흥청 근무 때 보다 턱없이 적은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마냥 기쁜 김 씨다.

김 씨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일을 한다는 것이 기뻤어요. 4대 보험도 다 되고 공휴일에는 쉬고, 안정된 직장이지요”라며 “조금 더 여유가 된다면 대학교 때 하다 만 천연염색 등에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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