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우리고을 인물 열전
[우리고을 인물 열전 12. 장수군 산서면] 학문 중시하고 문학 사랑한 '충효예의 고장'팔공산 서사면 해발 200미터 평활한 지대 / 선대 뜻 받들어 주민들 올곧은 정신 오롯이
김재호 기자  |  jhkim@jjan.kr / 등록일 : 2017.06.26  / 최종수정 : 2017.07.11  12:19:16
   
 
 

장수군 산서면은 장수군청 소재지에서 20㎞, 전주에서 40㎞ 거리에 위치한다. 장수군 7개 읍면 중 장수읍 등 6개가 해발 5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반면 산서면은 유일하게 팔공산 서사면 아래 해발 200미터 평활한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팔공산 북동쪽에 위치한 장수읍 등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비행기재를 넘어야 한다. 이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20㎞ 떨어진 남원을 거쳐 번암면 쪽으로 빙 돌아가야 했다.

고인돌과 돌도끼 등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됐고,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다. 삼국시대 백제 때는 거사물현이라는 독립된 현의 위상을 가졌고, 신라 때는 임실지역이 주가 되는 청웅현에 속했다. 고려 때는 거령현이 됐고, 남원부에 예속됐다. 조선 때 신서방, 진전방이 됐는데 고종 때 수서방으로 개칭됐고, 1914년에 산서면이란 명칭이 생겼다. 이는 장수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북동쪽으로 영대산과 팔공산 등이 든든하게 지켜섰고, 서남쪽으로 낮은 야산 지대가 형성돼 있지만, 남으로 탁트인 지세다. 전체면적 47.75㎢ 중 밭이 270여㏊, 논 1100여㏊, 임야 2,900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산내면에 들어서면 ‘충효예의 고장’이라는 표석이 눈에 띈다. 3·1운동기념비, 호룡보루와 향토수복기념비, 그리고 수많은 서원, 정자 등에서 충효예를 중시하며 삶을 이어온 주민들의 올곧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유고집에서는 산서면 사람들이 예로부터 학문을 중시했고, 문학을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선비들은 진실했고, 훌륭한 선인들의 뜻을 받들어 충효예를 근간 삼는 삶을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선대의 뜻을 이어 지난 1997년에는 산서면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문향이자 양반고을 산서면의 인물들을 권희상 노인회장, 권승근 문화원장, 육동수 전 산서면장, 정익수 전 산서새마을금고 이사장, 배형근 산서면장, 박경애 부면장 등의 도움을 받아 소개한다.

△정·관계

산서면 출신으로 중앙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물은 하월리 출신의 정재석, 봉서리 출신의 정세현씨다.

정재석(丁渽錫)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으며, 1979년 상공부장관, 1992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역임했다. 봉서리 태생인 정세현(丁世鉉·72)씨는 서울대 출신의 정치학 박사다. 1977년 통일원에 들어가 대북정책업무를 담당했고,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통일부 차관을 거쳐 2002년부터 통일부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2010~2014년까지 원광대 총장을 지내며 학계에도 몸을 담았다.

정재석 전 장관의 동생인 정장현씨(丁璋鉉·78)는 서울대법대를 졸업한 후 아산사회복지재단 사무총장, 현대백화점 사장 등을 거쳐 제14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오산리 출신의 권정주(權正周)씨는 감사원 감사관을 역임했고, 마하리 출신으로 전북대를 나온 김광영(57·金廣泳)씨는 감사원 공공감사운영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산서면 출신 중에서 장수군수는 아직 배출되지 않았다. 다만 전북도공무원교육원장을 지낸 권건주(權鍵周)씨(63)가 내년 단체장 선거를 겨냥해 뛰고 있어 지역민들 사이에 관심이 되고 있다.

△학계

건지리 출신의 류재신(柳在新)씨는 전라북도교육청 7대와 8대 교육감을 지냈으며, 교육계에 지여한 공을 인정받아 군민훈장 기린장(1983)과 국민훈장 모란장(1984)을 수상했다. 또 한대희(韓大熙)씨는 임실·순창·장수 교육장을 역임하고 1979년 애향대상을 수상했다. 사창리 출신의 양환승(梁桓承)씨는 농학박사로서 전북대 농과대학장을 지냈다. 1997년 전북도민의장 산업장을 수상했다. 정기수(丁奇洙)씨는 서울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공주대에 재직하며 불어교육학과장을 지냈으며 한불 문화교류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교육훈장을 수훈했다. 오산리 출신의 권이종씨(權彛鍾·77)는 독일에서 교육학박사를 받고 서울시립대교수, 교원대 교수를 역임한 아동교육전문가다. 신창리 출신의 이달형(李達珩)씨도 교육학박사로서 명지대 교수를 지냈다. 월곡리 출신 정필수(丁必洙)씨는 미국 텍사스대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항만유통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백운리 출신인 오병무씨는 순천대 교수이고, 오성리 출신인 송기재(宋基在)씨는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하고 산업경제계획원 연구원으로 있다.

△법조계

이룡리 출신의 방봉혁(房峯爀)씨는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또 신창리 출신의 이영기(李永基)씨는 사시 35회에 합격, 부산지검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사계리 왕곡 출신의 김순곤(金順坤·83)씨는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사무국장으로 퇴임, 1980년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업무와 관련해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등기부와 대장의 일원화 문제에 관한 연구’ 등 다수의 저술도 남겼다.

△군인과 경찰

신창리 출신의 이재훈(李載薰)씨는 진안경찰서장을 역임했고, 역시 신창리가 고향인 이석형(李碩珩)씨는 육군 중령으로 전북방첩대장, 전주농조장 등을 지냈다.

△경제계

월곡리 출신의 정동섭(丁東燮)씨는 경희대를 졸업, 현재 태림포장공업(주) 대표다. 경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국무총리·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역시 월곡리 출신인 정영섭(丁榮燮)씨는 서울대를 나와 동일제지 이사로 있다. 재무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하월리 출신의 정석현(丁石鉉·66)씨는 전주공고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해 주경야독으로 한양대를 졸업했다. 작은 공구상으로 시작, 지금의 수산중공업을 일궜다. 금탑산업훈장, 노사문화대상대통령상 등을 수상했으며, 무역협회 부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문화예술체육계

음악과 미술 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인물은 찾기 힘들지만, 유학자들이 남긴 문집이 다수 전해오고 있다. 정유헌의 유헌집, 방만오의 만오유고, 김명은의 명은집, 이경석의 경석시집 등 유고집이 50개가 넘는다. 이런 영향으로 서예에서 출중한 인물들이 나왔다. 1869년에 출생한 이수형은 호남 명필로 유명했는데 남원 양사재(養士齋) 현판 등 다수의 글씨를 남겼다.

오룡리 출신의 이규진씨는 전북대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대 서예가로 유명하다. 국전에서 여섯 번 특선할 만큼 실력을 갖춘 국전추천작가, 국립현대미술관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작품이 중국국립서법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산서면 옆에 위치한 임실군 지사면 관곡서원에 있는 경행문(景行門) 편액, 무주 적상산 안국사 청하루(淸霞樓) 편액 등이 소남의 글씨다.

마하리 출신의 육종진씨는 제1회 동아미술대전에서 특선, 제5회 동남아현대대전 입선 등 실력을 발휘했다.

체육계에서는 마하리 원흥마을 출신인 홍성진(53)씨가 현대건설 배구감독에 이어 현재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뛰고 있다.

광해군 9년 내진전방 대창부락에서 출생한 장옥경의 ‘불고정별곡(不孤亭別曲)’을 보면 산서인들의 예술적 기질이 엿보인다. 불고정별곡의 첫 구절을 소개한다. ‘靑山은 에워들고 綠水는 도라가고 夕陽이 거들 때에 新月이 소사난다. 一樽酒 가지고 시름프자 하노라’

-다음 회에는 완주군 봉동읍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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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희
산내면에 들어서면 -산서면에들어서면, 월곡리-사계리 서원, 사창리-사상리 사창,오룔리-이룡리 오룡,
(2017-07-10 10: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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