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최진석의 노장적 생각
도전이 초월의 동력이다긴 시간 스스로 역사가 될 준비한 사람은 항상 옳다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7.07.17  / 최종수정 : 2017.07.17  21:16:46
   
▲ 송필용, 초월
인간에게는 초월의 욕구가 있다. 초월이 다 언어를 벗어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초월은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것,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 더 확장되는 것, 더 넓어지는 것, 더 높아지는 것 등등을 한꺼번에 가리켜 하는 말이다. 가장 높고 크게 확장되어 있는 존재로 인간은 일단 ‘신’(神)을 모셔 놓고, 부단히 그곳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초월의 욕구다. 외재적 초월도 가능하고 내재적 초월도 가능하다. 내면으로도 가능하고 외면으로도 가능하다. 정신으로도 가능하고 물질로도 가능하다. 초월의 정도가 자기 통제력의 두께다. 통제력의 내용은 복잡 다단에게 현현한다. 얼마나 초월되었느냐가 얼마나 크게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개인적인 초월의 여정에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고 우주도 있다. 여기에 환경도 있고 인권도 있고 자유도 있고 혁명도 있고 저항도 있고 역사도 있다. 학습도 바로 여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학습과 역사는 매우 밀접하게 붙어있다. 역사적 경험에서 학습에 성공하면 그 역사는 빛나고, 학습에 소홀하면 그 역사는 찬란하기 어렵다. 동아시아의 근대 역사는 서양 침탈로 시작한다. 서양에 대한 반응이 곧 동아시아 역사의 많은 내용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국도 이렇다. 중국의 개항은 1842년 제1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난징조약이 시작이고, 일본의 공식적인 개항은 1854년 미일화친조약이 시작이다. 우리는 서양의 대리인 격인 일본에 의해 강제개항을 당하는데, 바로 1875년 일본이 강화 해협을 불법 침입하여 이듬해에 강제로 맺은 강화도 조약이 그 시발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하고 나서 22년 만에 힘을 키워 다른 나라를 강제 개항시킬 정도가 된 것이다. 물론 강제 개항의 그 시점에 일본과 조선 사이에는 벌써 국력에서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22년이다. 이 22년 동안 일본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바로 학습이다. 서양에 당하고도 그 서양을 배우려는 열기가 왕성했다. 이것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표어에 집약되었다. 이런 점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도 영국을 필두로 한 서양에 굴욕을 당하고 나서 나라 전체가 “서양을 배우자!”(“向西方學習”)라는 구호로 가득 찼다. 조선은 굴욕을 당하고 나서 서양(일본)을 배우자는 자발적 열기가 성숙되지 않았다.

막부정권의 쇄국정책으로 일본은 220여 년간이나 닫혀 있었다. 1853년 7월 8일 오후 5시경 매튜 페리(Matthew C. Perry)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 소위 흑선(黑船, 쿠로후네) 4척이 에도 앞바다에 들어오면서 일본은 엄청난 변화 앞에 직면한다. 쇄국을 유지하려는 막부와 개방을 요구하는 거대국가 미국과의 대결로 판이 전개된 것이다. 물론 막부가 전면적인 쇄국을 시행하면서도 네덜란드를 예외로 두고 서양 연결 통로를 열어둔다거나 1814년에 영일사전을 편찬한다거나 하는 등의 미래를 향한 개방적인 도전을 제한적으로나마 시행한 점이 훗날의 역사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던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때 시대적 사명감을 가진 예민한 지식인들의 투쟁과 학습에 대한 열망은 일본으로 하여금 ‘당황스런 새 판’을 적극적이고 생산적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였다. 뜻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도전적인 자세로 과감하게 역사 속으로 뛰어든다. 여기에 일본 발전의 핵심이 있다. 그들은 역사를 위하려 하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조국을 위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 역사 자체가 되려 했고 자신을 ‘일본’ 자체로 만들려 했다. 이들 가운데 앞장서서 스스로 일본의 ‘역사’로 완성되려 했던 젊은이가 그 시대의 중심에 살았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요시다 쇼인은 우리에게 큰 고통과 치욕을 안겨준 일제 식민지 침략의 이론적 근거인 정한론(征韓論)을 완성하고,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의 기초를 다진 장본인이다. 궁극적으로는 침략자 일본의 심장이다. 흑선을 직접 본 쇼인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그 전에도 서양 문명의 강대한 변화를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구미 열강과의 격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배도 대포도 적수가 안 된다’라는 위기감을 친구에게 편지로 쓸 정도였다. 그러나 기득권과 타성에 젖은 막부는 쇼인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개혁을 도모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강국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마침내 시모다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군의 함선에 접근하여 밀항을 시도하기까지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국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수감된다. 출옥 후에도 일본의 미래를 향한 착실한 행보를 이어간다. 고향 하기(萩)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운영하며 근대형 인재들을 배양하는 데에 힘을 쏟은 것이다.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기서 배양된 인재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력으로 성장하여 일본 근대를 튼튼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토 히로부미도 요시다 쇼인의 제자며, 아베 신조 현 총리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들면서 그를 계승하는 일을 사명으로 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은 쇼인이 강조했던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기까지 하다.

근대 이후로 일본과 한국의 국력 차이가 난 근본적인 이유를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이 있었고, 한국에는 요시다 쇼인 같은 인물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내면에 있는 무엇이 ‘요시다 쇼인’을 만들었을까? 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을 밀항까지 감행했던 그의 도전 정신에서 찾는다. 도전은 ‘초월’의 동력이다. 도전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밝고 강한 미래를 보장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결정한다. 페리도 이 점을 주의 깊게 본 듯하다. 요시다 쇼인이 밀항하려고 그의 제자와 함께 군함에 접근한 것을 보고 페리는 말한다. “이 사건은 우리를 매우 감격시켰다. 법을 어기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식을 넓히려는 두 청년의 뜨거운 열정에 놀랐다. ... 지금은 엄격한 법에 억눌렸지만 만약 모든 일본인이 이 두 젊은이와 같다면 일본은 미국만큼 강대해질 것이다.”(Japan Expedition, 1854) 페리는 도전과 발전을 일치시켜 보는 안목이 있었고, 페리의 말대로 일본은 강대해졌다.

전번 주에 14명의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하기 시에 갔다. 하기 시의 거리 곳곳에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거나 같이 활동했던 인사들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재밌게 그려진 캐릭터는 매우 친근감을 주게 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써진 업적들은 그들을 존경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일본은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학습의 지속성을 전혀 잃지 않고 있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역사속의 인물들과 그들의 업적을 어려서부터 매우 친근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요시다 쇼인 빵도 있고 과자도 있고 책받침도 있다. 생활 속에서 역사를 학습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가. 역사 학습이 사라졌다. 하기 시에 가려면 후쿠오카 공항을 거치는데, 그 도시에는 구시다 신사(櫛田神社)가 있다. 이곳은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할 때 사용했던 칼이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신사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소원을 써서 걸어 두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한국인들의 소원패도 많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조금이나마 학습했다면, 어떻게 구시다 신사에다가 자신의 소원패를 걸 수 있겠는가. 일말의 자존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학습은 도전을 하게도 하지만 최소한의 기품을 지킬 수도 있게 해준다.

초월의 욕구는 자신을 점점 높고 넓게 확장하므로 시대 의식을 포착하게 한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은, 즉 초월의 욕구가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으려 애쓰기 보다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식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대 의식은 나를 보편의 단계로 확장시키는 방아쇠다. 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을 도전이라고 한다. 젊은이들과 얘기를 하면서 도전을 강조할 때가 있는데, 그 때 나오는 대부분의 질문들이 다음과 같다.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더라도 사회에서 그 실패를 허용하거나 보살피는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았다. 도전하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 위험을 누가 책임지는가?” 도전, 모험 그리고 탐험을 말할 때는 항상 나오는 질문이다. 이것은 나의 매우 협소한 경험인데, 다른 나라 젊은이들에게 도전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곤 했다. “도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내게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도전할 마음이 생기는가?” 초월의 견지에서 볼 때, 도전해서 실패하였을 경우를 걱정하는 질문과 도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질문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크다. 도전은 우선 뒤를 돌아보는 조심성이 결여되어 있어야 미덕이다. 이런 미덕이 갖춰져 있어야만 ‘초월’의 확장이 실현된다. 학습을 통해 두텁고 두터워진 존재는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그가 당기는 도전의 방아쇠는 역사의 순방향에 조준되어 있을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긴 시간 스스로 역사가 될 준비를 진실하게 한 사람은 항상 옳다. 스스로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보상을 기대하거나 결과에 전전긍긍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유롭다. 두려움도 없다.

절대 자유와 한계 지우지 못하는 큰 업적을 이루는 경지를 장자(莊子)라는 철학자는 ‘소요유’(逍遙遊)라 말했다. ‘소요유’의 상징은 ‘대붕’(大鵬)이다. 대붕은 원래 작은 물고기였다. 우주의 바다에서 긴 시간 학습한 공력(積厚之功)이 극한까지 커져서 질적인 전환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던 찰나에 바다가 흔들리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9만리를 튀어 올라 새가 되었다. 이것이 ‘대붕’(大鵬)이다. 대붕은 9만리를 튀어 오르는 내내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섬진강 인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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