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우리고을 인물 열전
[우리고을 인물 열전 18. 익산시 여산면] 국도 1호·고속도로 지나는 호남 관문…가람 이병기선생 고향갑옷터·닭작골 등 옛지명 / 고려·후백제 격전지 짐작 / 옛 명문가 여산 송씨 본관 / 판서 등 수많은 인재 배출
김재호 기자  |  jhkim@jjan.kr / 등록일 : 2017.11.13  / 최종수정 : 2017.11.13  23:16:49
   
▲ 지난달 14일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가람생가 현지에서 송하진 도지사와 황현 도의회 의장과 정헌율 익산시장을 비롯 가람 이병기 선생의 유족 및 시조 관련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람문학관 개관 테이프 컷팅을 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여산에 있는 호산(壺山·현재는 천호산)은 여산지역의 진산(鎭山)이다. 진산은 도읍의 북쪽에 있으면서 도읍을 보호하는 주산을 말한다. 실제로 여산은 호리병의 작은 입구 형상을 보인다. 동쪽 천호산과 서쪽 미륵산·용화산 사이에 위치한 탓이다. 북쪽으로 충남 연무읍, 남쪽으로 익산시 왕궁면이 소재한고, 남북을 잇는 국도 1호선과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한다. 호남, 전북의 관문이다.

여산(礪山)지역에는 삼한시대 이전에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마한이 백제에 흡수된 후에는 지량초현(只良肖縣)으로 불렸다. 신라와 고려 때는 여량현(礪良縣)으로 불리었다. 현재의 여산이란 명칭이 생긴 것은 조선 태종 2년(1402년)에 이웃 낭산현과 여량현이 합쳐지면서부터다. 여량현은 세종 18년(1436년)에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외향이라는 사실 때문에 군으로 승격됐다. 원경왕후 민씨의 외조부는 여산송씨 송선이다. 또 숙종 26년(1699년)에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정읍 칠보에서 출생, 송헌수의 딸)의 성향(姓鄕)이란 이유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산군에 속했던 11개 면 158개 리가 분할될 때 낭산면, 망성면, 황화면이 여산에서 떨어져 나갔다. 여산면은 천동면과 천서면, 부내면만으로 축소돼 여산리, 두여리, 호산리, 태성리, 제남리, 원수리 등 6개리 체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산에는 숯고개, 진터, 갑옷터, 닭작골 등 옛 지명들이 전하는데 전주성으로 진출하는 골목에 위치한 여산 일대가 후백제와 고려의 주요 격전지 였음을 짐작케 한다.

면소재지인 여산리의 동헌 건물과 노거수가 옛 여산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참상의 역사 현장도 남아 있다. 동헌 아래에 위치한 백지사터(白紙死)가 그것이다. 대원군 집정 때인 1866년 병인년, 조선 정부는 천주교 신자들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백지를 덮어 질식사 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에 위치한 동헌 뜰에는 대원군의 척화비가 세워져 있다. 광복 이후 여산 출신으로 가장 빛나는 인물은 국문학자요,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다. 지난 달 14일 원수리 진사마을 이병기 생가 옆에 가람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가람문학관이 개관에 이르기까지는 익산시 등 주변의 관심과 함께 평소 생가 관리에 힘써온 김장환씨(69·여산리·여산면지추진위원장) 등 지역민들의 여망이 크게 컸다. 김장환씨는 여산면지 발행에 앞장서고 있다.

   
▲ 익산시 여산면

△여산송씨의 본향

여산의 인물을 거론하자면 여산을 본관으로 하는 여산송씨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다. 고려와 조선에서 출세 가도를 달린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모든 송씨는 당나라에서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다 귀화한 송주은(宋柱殷)의 후손들이다. 그의 후손 자영의 세아들 중 맏이 계통이 유익, 천익, 문익 삼형제인데, 유익은 여산송씨, 천익은 은진송씨, 문익은 서산송씨의 시조가 되었다.

송유익(宋惟翼)은 훗날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銀靑光錄大夫 樞密院副使)로 追贈 되었다.

현재 송유익의 4세손인 송송례(宋松禮, 고려 충렬왕 때 중찬)를 중시조 1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으며, 송송례가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여산으로 하게 됐다. 여산송씨는 송송례의 아들 염과 분 형제의 아들 대에서 원윤공파, 밀직공파, 소윤공파(이상 염의 아들), 지신공파, 정가공파(이상 분의 아들)의 5파로 갈라졌다.

여산송씨는 영의정 1명, 좌의정 1명, 왕비 1명, 판서 다수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여산송씨의 중시조가 된 송송례는 1270년 직문하성사(直門下省事)로서 권신 임연의 아들 임유무를 죽이고 왕정을 바로세웠다. 송거신(宋巨信)은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당질로서 태종의 신임을 받았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임진왜란 때 동래성이 함락될 때 장렬하게 전사한 절신으로 유명하다. 송질은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으로서 영의정에 올랐고, 송익필은 선조 때 대학자로서 ‘8문장’의 한사람으로 꼽혔다.

△정·관·법조계

두여리 출신인 박선규(56·두여리)는 언론인 출신으로 정계와 관계에서 활동했다. KBS 기자였던 그는 1999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2008년 대통령실 언론2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 청와대 대변인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지냈다.

제남리 출신의 송삼섭씨(70)는 여산초중학교, 전주고를 거쳐 서울법대에 졸업한 인재였지만, 연좌제에 막혀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고 알려진다. 쌍용그룹, 일진그룹 법률고문을 역임했다.

△교육계

원수리 출신의 국문학자이자 시조시인 이병기(1891년~1968년)는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전북대 교수를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글운동을 벌인 국문학자요, 독립운동가다. 첫 국어사전 편찬에 열정을 다했고, 현대 시조문학을 개척해 세운 시조시인이다.

두여리 출신인 유인종 전 서울시 교육감(85)는 노스캐롤아이나대학원 철학박사이고, 고려대 교수를 거쳐 1996~2004년 서울시교육감을 지냈다. 그는 교육감 재임시절 일제고사 폐지, 고액과외 폐지, 자립형사립고 반대 등 학교교육 살리기에 열정을 쏟았다. 여산리 출신의 김양수씨(77)는 성신대 총장을 역임했고, 여산리 출신의 하중호씨(82)는 여산초, 전주고,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후 금융계에서 일했다. 퇴직 후 예절 교육 활동에 열정을 쏟았으며, 목포대와 세종대에서도 일했다. 제남리 출신의 배경식씨(69)는 한일장신대 교수를 역임했다.

△군경

이남신 예비역 대장(73·육사23기·제남리)은 육군 7사단장, 육군본부 감찰감, 8군단장, 국군기무사령관, 3군사령관을 역임한 뒤 김대중 정부에서 함참의장을 지냈다. 퇴임 후 육사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다. 유해근 예비역 중장(72·육사 26기·원수리)은 35사단장, 특전사령관에 이어 교육사령관을 지냈다. 송승석 예비역 준장(64·육사 32기·두여리 수운마을)은 76보병사단장, 수도포병여단장, 수도방위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성우회 안보전문위원, 한국위기관리연구소(KICA)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임하고 있다.

△경제계

여산리 출신인 이연(1915년~2003년) 전 대한석탄협회 회장은 신흥고를 졸업하고, 1994년 원광대에서 명예경제학박사를 받았다. 1963~1992년 동원탄좌 회장,1986~1997년 대한석탄협회 회장 지낸 그는 강원도 사북에서 석탄을 채취하는 동원탄좌를 운영하며 큰 돈을 벌었으며, 동원전자 등 10여 개 방계기업을 세워 운영했다. 서울 강남의 특급호텔 리츠칼튼서울의 이전배 사장(60)은 그의 아들이다.

두여리 출신의 송관용(1932~2014) 전 부림흥산(주) 회장은 여산보통학교, 고려대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쳤다. 삼우토건, 삼강통상(주), 부림흥산(주)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으며, 여산에 두여장학회를 설립, 고향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여산리 진성섭씨는 쌍용그룹 사장을 지냈고, 호산리 최창규씨는 대구, 두여리 출신 이정수씨는 대전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원수리 내동마을이 고향인 이경수씨(49)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아딸’을 창업, 크게 성공했다. 지역 출신 이정원 목사의 아들 이경수 대표는 2017년 들어 아딸 브랜드를 탈피하고, ‘감탄’ 브랜드를 새롭게 내세웠다.

재경익산향우회 부회장 이지희 사장은 원수리 출신으로 서울 경희대를 졸업한 후 토너 등 전자제품의 부품을 만드는 클린톤전자 대표다.

△문화체육언론계

원수리 출신의 이만희씨(81)는 대전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10호 각색편 보유자다. 각색편은 연안이씨가(延安李氏家)의 고유 음식으로 그 제조법이 지난 2000년에 대전광역시로부터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됐다.

여산리 교동 출신으로 이리농림과 고려대를 나온 배성환씨(84)는 한국일보 부사장을 역임하고 재경익산향우회를 이끌었다. 역시 여산리가 고향인 이정근씨(71)는 매일경제 동경특파원을 지냈다. 이봉원씨는 KBS제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전문기자인 스포츠조선 이상주 부장은 제남리가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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