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불멸의 백제
[불멸의 백제] (31) 2장 대야성 ⑩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8.02.13  / 최종수정 : 2018.02.13  23:01:21
   
칠봉산성 아래쪽으로 산기슭을 따라 강이 흐른다. 맑고 푸른 강이다. 강폭은 3백보 쯤 되었지만 아래쪽은 폭이 50여보로 좁아져서 나무다리가 놓여졌다. 이곳이 칠봉산성으로 오르는 앞쪽 입구다. 계백이 칠봉산이 바라보이는 황야로 들어섰을 때는 오후 미시(2시)무렵이다. 방령 윤충과 만나고 귀성하는 길이었다. 계백이 앞장을 섰고 10보쯤 뒤로 3기의 기마군이 따랐는데 속보다. 질주를 하면 말이 지치기 때문에 네 필의 말은 빠른 걸음으로 황무지를 횡단하고 있다. 가을이 되어가는 8월말, 말 무릎까지 닿는 잡초가 시들면서 칠봉산의 단풍이 멀리서도 붉게 물들고 있다. 그때다. 어디선가 아이의 외침 소리가 울리더니 앞쪽 풀숲을 헤치면서 큰 노루 한 마리가 가로질러 달려갔다. 빠르다. 노루 엉덩이의 흰 반점이 보이더니 사라졌다.

“앗! 노루다!”

뒤를 따르던 호위랑 무독(武督) 곽성이 소리쳤다. 그 순간 계백이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안장에 걸친 활을 빼들었고 고삐를 입에 물면서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눈 깜빡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 흥분한 전마(戰馬)는 네 굽을 모아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노루를 쫓는 것이다. 계백이 풀숲 사이로 보였다가 숨기를 반복하는 노루를 응시했다. 전마는 빠르지만 노루와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1백여보, 그 때 뒤쪽에서 호위 기마군이 쫓아왔지만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계백의 30보쯤 뒤다. 그때 계백이 활을 만월처럼 당겼다. 달리는 말위에서 입에 고삐를 물고 겨눈다. 뒤를 따르는 호위군사는 숨을 죽인 채 응시했다. 그 순간 계백이 시위를 놓았다. 앞쪽 1백10보쯤 떨어져있던 노루가 한걸음에 7~8보 간격쯤으로 도약을 했는데 그 도약해서 떠오른 순간을 겨누고 쏘았다.

“와앗!”

뒤쪽에서 함성이 울렸다. 솟아올랐던 노루의 목에 화살이 박힌 것이다. 노루가 곤두박질로 풀숲에 뒹굴었을 때 계백과 기마군이 달려가 에워쌌다. 곽성이 말에서 뛰어 내리더니 칼등으로 노루의 머리를 쳐 숨을 끊었다.

“나리, 명궁이십니다.”

노루 옆에 선 곽성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지난번 삼현성에서 적장을 쏘아죽이셨다는 소문도 군사들을 통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곽성은 한인(漢人)이다. 백제는 귀화한 한인은 물론이고 왜인, 남만인, 인도인까지 받아들였고 관직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30대 초반의 곽성은 산적질을 하다가 투항하고 백제인이 되었다. 계백이 흥분한 말갈기를 쓸어 달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가 노루를 쫓았던 것 같다.”

그때 옆쪽에서 풀숲을 헤치며 아이 둘이 달려왔다. 열두어살 짜리와 열살쯤의 사내 아이. 둘 다 남루한 베옷을 짚으로 묶었고 큰 아이는 조잡하게 만든 활을 쥐었다. 가쁜 숨을 내뱉으며 달려 온 둘이 멈춰 서더니 죽은 노루를 보았다. 그리고는 계백을 올려다본다.

큰 아이의 눈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찼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산성 아랫마을에 사느냐?”

“예, 나리.”

큰 아이가 가쁜 숨을 참으며 대답했다.

“아랫마을 곽신조의 아들 배준입니다.”

아이의 맑은 눈을 내려다보던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저 노루를 가져가거라.”

놀란 아이가 숨을 들이켰을 때 계백이 들고 있던 활을 아이 앞에 던졌다.

“이 활로 궁술 연습을 해라. 화살도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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