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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 맞은 이형구 전북지방법무사회장 전북도민들 일상 속 생활법률서비스 제공 위해 노력"

오는 24일 이형구(67)제24대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장이 취임 1주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전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장에 당선된 이 회장은 ‘현장에서 발로 뛰는 법무사’, ‘도민곁에서 함께 하는 법무사’ 등을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왔다. 또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기존 법무사회에 큰 변화를 이끌어온 인물이기도하다. 이 회장을 만나 그동안의 사업추진 내용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임 1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저를 포함하여 우리 전라북도내 구석구석에서 실무법률가로서 열심히 업무를 하고 계시는 모든 법무사들의 마음을 모아 도민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올해는 대한법무사협회가 업무를 시작한지 125년 되는 해이며,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는 뜻깊게 환갑을 맞이하는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실 우리는 수 십년 동안 큰 변화 없는 기존의 틀에서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적으로 주어지는 변화와 혁신만이 단체의 생존권을 보호할 수 밖에 없으므로 철저한 사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로드랩을 갖추어 놓아야 성공적인 업무수행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무사는 독보적인 실무법률가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관리 또한 세심한 배려가 우선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3년 전 제23대 회장으로 출마하여 쓰디쓴 낙선경험이 있습니다만 제24대에 재도전을 위해 그간 꾸준한 정책 발굴은 물론 관내 법무사님들을 통하여 도민들에게 실질적인 법률 지식 전달 등 근접지원 방안 등을 구축해 놓은 터라 당선되자마자 집행부와 함께 정신없이 1년을 보냈습니다. 결국 3년 전 낙선이 제24대의 무난한 업무역량을 위한 새옹지마 격이라고 긍정하고 싶습니다.” 지난 1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사업 또는 정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회장으로 당선이 되면 그 일성으로 180만 도민과 함께 미래와 희망이 있는 강력한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약속의 첫 번째가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 정신으로 업무를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법무사의 직역수호 차원에서 대한법무사협회와 연대하여 중앙정부는 물론 국회 등을 방문하고 유관기관인 법원과 검찰에 목소리를 높이겠다. 세번째는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의 운영 체계 혁신입니다. 넷째로 전라북도청을 포함해 13개 시·군과 업무협약체결을 하여 ‘법무사를 도민곁으로’ 라는 슬로건을 목적으로 관내 법무사와 도민들과 서슴없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대폭적으로 확대해 법무사를 통한 생활법률 전수, 대화의 창 구축, 우리 동네 법무사 제도 안착 등 14개 공약을 제시한바 있습니다. 이 중 제일 시급한 것은 14개 시·군민의 각양 각층의 도민들로부터 요구되어 온 것은 지역 공공기관과의 업무협약을 체결해 도민들이 어려움 없이 생활법률지원을 받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위해서는 관내 모든 법무사님들이 불편함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라북도 법무교육원’을 설립하고 나아가 ‘생활법률지원단’이 구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이사회를 거쳐서 교육원에 분야별 조직구성을 하고 생활법률지원단 교수진을 구축했습니다. 사실 각 지역에서 공인격인 법무사들은 실무 분야의 살아 있는 법률을 전수할 수 있는 교수 수준에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현직 법원이나 검찰에서 생애의 한 부분인 청년기부터 장년기 까지 십 수년을 실무 법률로 무장된 분들이며 일부 고시 출신 법무사들은 그야말로 모든 법률과목을 섭렵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답변하신 생활법률상담 서비스에 대해 많은 관심이 많은데요 어떻게 이 제도가 운영이 될까요? “생활법률지원단은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 회 소속하에 법무교육원을 설치하여 교육인프라를 구축하였기 때문에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 265명 법무사 전원이 각 시·군 읍·면·동의 행정구역별 전담 생활법률 지원 강사로 배치해 24시간 도민들에게 준비된 프로그램을 통한 생활법률 전수 및 각종 생활법률을 상담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관내 공공기관과의 업무협약은 잘 알고 계시다시피 우리 전라북도는 14 시·군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이 14개 시·군을 총괄하는 곳이 전라북도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먼저 전라북도청과 업무협약을 하여 도민을 위한 총괄 생활법률지원단을 구축하고 그 다음 준비된 시·군을 순차로 업무협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창성해 잠정 중단을 한 후 올해 1월에 전주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였고, 2월에 전북도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6월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임박해 계획대로 진행한다면 새로운 단체장의 취임으로 실질적인 활동상 연속성에 실효와 우려가 있어 나머지 시·군의 업무협약 절차는 후반기로 순연된 상태입니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으로는 각 주민센터에 ‘우리동네 법무사’ 홍보 게시판과 전담 법무사 명함을 비치할 것이며 이를 원활히 하기 위해 올해 후반기부터 각 시·군과 순차적으로 업무협약을 신속하게 진행할 것입니다. 현재 전주시 각 법정동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강사진은 구축이 되어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며 새로운 단체장이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 바로 협의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전북에는 가정법원이 없습니다. 법무사회도 가정법원 설치를 촉구하고 있는데요. 가정법원이 설치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180만 도민들이 한결 같이 염원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사 및 소년 사건, 가정보호 등의 사건이 증가됨에 따라 전문법원 설치의 필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주지방법원과 규모가 비슷한 창원지방법원은 가정법원 설치가 확정되었고 울산지방법원 역시 설치 운영 중입니다. 가정법원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은 전북, 충북, 강원, 제주 4곳으로 전북지역이 사법서비스의 상대적 소외감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헌법상 보장된 시민들의 재판을 권리의 보장 및 전문법원 설치 운영에 따른 사법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서 전주가정법원은 설치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전북도내 각 지자체와 정치권, 관련 유관기관과의 활발한 협력으로 전주가정법원 설치 건의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남은 임기동안 추가로 진행하실 사업 및 정책 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직 할 일들이 참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60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 도민들을 위한 직·간접적인 법률지원을 하였다는 것은 어느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어떤 정부가 시작되거나 마침과는 무관하게 묵묵히 모나지 않게 소액의 보수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법무사는 현직에서 평생동안 경험과 체험을 해온 과정이 끝없는 타인의 이해관계 속에서 함께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경험적 실무적 체험자들입니다. 따라서 사회에 진출하여서도 왕성한 활동보다는 섣불리 선뜻나서지 않는 성격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습관적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역대 회장님들께서 저와 같은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라 믿습니다만, 이제는 시대적으로 대전환이 되어야 하고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그 총대를 메고 앞장을 서야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여러 가지 출마 당시의 공약들이 산재하여 있지만 이것들은 하나씩 내부적으로 맺어가고 있어요. 그러나 대외적인 정책으로 위와 같은 기획과 계획은 철저하게 시행착오를 거쳐서 영속적으로 시민들과 도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제도가 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들께 인사부탁드립니다. “도민 여러분 우리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는 1963년 창설된 이래 반세기 동안 예향 전북도민에 대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다해왔습니다. 우리 전라북도지방법무사회는 법률실무가 단체로서 전국에서 최초로 광역단위 국민지원 생활법률지원단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도민들의 일상속 생활법률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생활법률지원단을 통해서 도민들의 자기방어 능력의 함양과 각종 법률적 불비로 인한 생활의 불안정을 해소하고 행복지수를 높여서 도민 여러분께 희망과 기쁨을 주고 지역사회에 봉사적 정신으로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이형구 전북지방법무사회장은 이 회장은 '법률로서 소외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로 유명하다. 지난 2014년 법무부로부터 ㈔생활법률문화연구소 설립 인가를 전국 최초로 취득했다. ㈔생활법률문화연구소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세무·계약·임대차·민원 등의 생활법률 상담 및 절차 진행, 문화 콘텐츠를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다. 이 회장은 "당시 법은 몰라도 당하고 알아도 당하고, 참으로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다"며 "이들을 돕기 위해 연구소 설립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법무부의 불가 판단이 수차례에 걸쳤지만 지속적인 서류보완을 통해 인가를 얻어냈다"고 회상했다. 순창 출신인 이회장은 1980년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전북대학교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1984년 전주지법 총무과에서 법원근무를 시작해 실무를 읽혔다. 이후 전주지법 민사과 합의 참여 사무관, 전주지법 임실등기소장, 전주지법 형사과 조사관, 전주지법 가족관계 담당관 등을 역임한 후 2014년 전주지법을 떠났다. ㈔한국생활법률문화연구원 이사장, 법무사 이형구 사무소장, 전북 사회적기업 법률자문위원장, 전주지법 민사·가사 조정위원, 전주지검 상고심의 위원, 전북지방법무사회장을 역임 중이다.

전북명산,회문산의 속살

[전북 일가(一家), 이 사람] 천일제지 이용제 대표 "성실이 최선"…엄격한 아버지 대 이어 제지의 길로

천일제지㈜에 관심이 생긴 것은 단순했다. 지난 3월 천일제지㈜ 이용제 대표(61)가 전주시 명예시민이 됐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지난해 전주시 우수향토기업으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쓴 기억도 어렴풋이 스쳤다. 1987년 문을 열었다고 하니 35년 동안 제지업 한길을 걸어왔다. 대표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 것은 호기심이 시작었다. 명예시민이라는 말을 묻자 단순 주소는 서울이지만, 생활권은 전주라고 했다. 전주와 서울에 거주하며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전주, 목요일과 금요일은 서울 사무소에서 일한다. 오는 5월 1일 회사 창립 35주년을 맞는다. 지난 3월 말, 그리고 4월 들어 다시 한번 두 차례에 걸쳐 이용제 대표를 만났다. 천일제지를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붙었고, 향후 기업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조심스럽지만, 자부심도 느껴졌다. 용어가 낯설죠? 그래도 모든 것들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입니다. 실제로 그랬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제품 이름들이 낯설었다. 지관 원지와 합지, 고평량 원지 등 평소 들어보기 어려운 용어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우선 지관 원지는 화학섬유, 필름, 면사 등을 감는 데 사용하는 종이관의 원지다.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휴지심이 떠올랐다. 다만, 지관원지에 감기는 제품들이 다른 것이었다. 합지는 우리 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여러 장을 합쳐 두꺼운 제품으로 만드는 기술이 들어간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으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케이스, 달력 용지, 앨범용 마분지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된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음반 CD, DVD, USB 케이스 제작에도 천일제지에서 만든 제품이 사용됐다. 공업용 방직용 합지 원지생산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은 천일제지㈜ 밖에 없다는 설명을 할 때는 자부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음속 첫 번째 고향을 꼽으라면 '전주'라고 할 겁니다. 천일제지의 창업주는 이 대표의 선친(先親)인 이점호 대표다. 제지생산업계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선친이 서울, 천안 공장을 정리하면서 물 좋고 공기 좋은 전주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하다 ‘경성제지’를 인수하고 팔복동에 제1공장을 설립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대표 선친의 고향은 경남 마산이지만 모친의 고향이 김제로, 선친이 김제에 오갈 때 전주를 보고 제지공장으로 최적이라 생각한 것도 자리 잡게 된 이유다. 1987년 전주 팔복동 현 부지에 1공장을 설립했고, 2000년대까지 2공장 설립과 2, 3호기 증설 등 규모를 키워갔다. 이용제 대표는 지난 2012년 3월 제2대 대표로 취임했다. 현재 천일제지에서 생산하는 공업용 지관과 산업용 원지는 연간 18만여 톤. 최근에는 친환경 표지 소재 개발로 제품 검수가 까다롭다는 삼성전자 휴대폰 케이스를 만드는 데에도 납품하고, 출판사 아동 책자 제작 등에도 사용하면서 제품 우수성도 인정받았다. 이 대표는 매주 전주와 서울로 오가는 바쁜 일상이지만, 늘 마음은 전주에 있다고 말한다. 기업이 이만큼 성장하고, 직원들과 할 수 있는 것은 전주의 물과 땅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성원과 도움도 컸다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국내보다 세계에서 더 유명해요. 수출도 차츰 늘릴 계획입니다. 천일제지는 지난 2018년 500만불 수출의 탑 수상이나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 2021년에는 환경부장관상 등을 수상하는 등 지관 및 합지업계 대표주자로 공인받은 기업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전 세계를 무대로 수출을 해보니 고품질의 지관원지 생산을 하는 곳은 "우리 한 곳"이라 말한다. 국내에서는 유수의 기업들이 함께 제지업에 나서기 때문에 차이가 크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천일제지의 제품을 더 알아준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최근 내수와 수출 비중이 9대1 정도로 줄었지만, 향후 6대4까지는 늘릴 계획이다. 실제로 연간 제품 18만여 톤을 생산하고 있고, 우수한 제품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해외 각 나라에서 주문이 밀려오지만, 물가 인상과 코로나19로 선적 운송비가 올라 수출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계 무대를 상대로 "가능성을 봤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가격을 떠나 물건을 달라는 곳도 많고, 특히 입소문이 나면서 천일제지의 위상도 올라갔다고 평가한다. 좋은 것을 쓰자는 인식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변화해야죠. 저희가 생산량이 많은 곳은 아닙니다. 품질을 더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란 확신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지업은 사양산업으로 꼽힌다. 이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곧 제지산업의 쇠퇴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자신있다"고 말한다. 천일제지의 경우 산업용 지관을 생산하는 곳으로, 생산량을 늘리기보다는 품질을 높이는 데 더 힘쓰고 있다. 지난 코로나19 상황에 박스나 골판지 등의 수요가 늘면서 생산 설비를 증설한 곳들은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는 수량을 줄이는 대신에 품질을 높이도록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천일제지의 장비는 작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단폭'이라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생산량은 적을 수 있어도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대표는 "업계가 어려워질수록 우리 제품은 살아남는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제품이 세계 최고⋯ "직원들과 나누고 싶다" 이용제 대표(61)는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천일제지(주)의 총괄 대표이사를 맡아오며 전북애향운동본부 기업특별대상, 전라북도지사 표창, 오백만불 수출의 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대외적인 성과들이야 드러난 것들이고, 개인적인 삶이 궁금했다. 어린시절 기억을 물으니 아버지 이야기부터 나온다. 특히 '엄격한 아버지'였다고 말한다. 밤늦게 들어오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고, 저녁 식사는 가족들과 해야 했다. 친구들로부터 원망을 사기도 했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해 기업을 꾸린 아버지를 보며 꿈을 키워갔다. 중앙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기 전 1년 동안 자유롭게 지낸 것이 인생의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만큼 성실하게 살려고 애썼다는 설명이다. 천일제지에는 10년, 20년, 30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속자가 많다는 것도 이 대표가 자랑하는 것 중 하나다. 200명가량의 직원 중에서 30년 이상 근속자가 10명이 넘는다. 대를 이어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다. 이 대표는 "주변에서 ‘장기근속자가 많아 회사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능력은 큰 차이가 아니고,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론이다. 오래된 인연들과 같이 가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기업이 잘되면 직원들과 같이 나누는 것도 신념이다. 이 대표는 세계 최고 제품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반도체를 많이 떠올리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천일제지의 제품이 세계 최고'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지난 35년의 세월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전북일보SNU 팩트체크 제휴

[팩트체크] "광역도시 없는 지역은 실제수요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국가교통망 정책서 소외 지역낙후 가속화됐다”는 주장 ‘사실’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서 전북관련 사업이 단 1개만 반영되자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덕(전주갑)의원이 지난 9일 열린김부겸 국무총리후보자 청문회에서 광역도시가 없는 지역은 실제수요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국가교통망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광역도시가 없는 전북, 충북, 강원 등은 대도시권광역교통망에 포함되지 않아 정부가 대도시권광역교통망 구축 사업으로 배정한 예산 127조 1192억 중 단 한 푼의 예산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역별 빈익빈부익부가 가속화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김윤덕 의원이 총리후보자와 국토교통부 장관후보자 청문회서 한 광역시가 없는 광역지자체는 정부의 교통망 계획서 소외되는 구조라는 발언 1.국토교통부가 제공한 광역교통위원회 현황과 예산배정, 사업현황 분석 2.현행법 상 광역도시와 철도망계획 확인 대도시권광역교통망 대상 권역은 현행법과 광역교통 2030사업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김윤덕 의원의 주장처럼 현행법(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대도시권을 특별광역시 및 그 도시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으로 국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역시를 배출하지 없는 전북은 대도시권광역교통망에 제외돼 있다. 현행 법령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에서 대도시권광역교통망을 확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권역별로 수도권부산울산권, 대구권, 광주권, 대전권으로 분류했다. 전북, 충북, 강원은 대상이 아닌 것이다. 2021년 2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가 밝힌 대도시권 광역교통 위원회 주요업무 추진현황을 보면 대도시권광역교통기본계획은 해당 법 제3조에 근거한다. 이 때문에 전북, 충북, 강원은 대상지역이 아니다. 광역교통2030 사업의 총사업비는 127조 1192억 으로 지방대도시는 부산울산, 대구, 광주, 대전으로 국한돼 있다. 이들 지역과 연관되는 경남, 전남, 충남은 대도시권역으로 인정받아 예산이 배정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철도 외에도 고속도로나 국가도로도 마찬가지였다. 김 의원이 주장한 전주 같은 도시는 대도시권 교통망에 포함된 나주 같은 지역보다도 수요가 많음에도 정책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난 2019년 국가교통조사DB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전국 여객 O/D 보완갱신 데이터와 한국교통연구원이 같은 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주시와 인접 도시 간 평균 통행량(6만3781건)과 광주권역 평균 통행량(8만403건)은 1만6622건 차이지만, 대도시권 광역교통 정책으로 예산배정에 있어 실제 수요보다 불리한 점이 파악됐다. 또 전주와 나주를 예를 들 때 전주 인구 약 66만 명, 나주시 인구 약 12만 명으로 5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지만,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배차는 30편대로 거의 같았다. !function(e,i,n,s){var t="InfogramEmbeds",d=e.getElementsByTagName("script")[0];if(window[t]&&window[t].initialized)window[t].process&&window[t].process();else if(!e.getElementById(n)){var o=e.createElement("script");o.async=1,o.id=n,o.src="https://e.infogram.com/js/dist/embed-loader-min.js",d.parentNode.insertBefore(o,d)}}(document,0,"infogram-async"); 현행 제도와 교통정책을 검토해 본 결과 광역시가 없는 광역지자체는 수요와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정부의 교통망 계획서 소외되는 구조라는 발언은 사실이다. ※자세한 내용과 근거자료는 전북일보 인터넷 신문(jjan.kr)과 SNU팩트체크 홈페이지(factcheck.snu.ac.kr)에서 확인 가능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4)숙빈 최씨와 영조의 사모곡

청와대가 개방되었다. 연일 관심이 뜨거운 청와대는 역사성과 장소성이 특별한 곳으로, 고려시대 남쪽 수도인 남경 궁터의 흔적을 품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굴곡진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진 뒤에는 12명의 대통령이 업무를 보고 생활해 대통령궁으로도 불렸다. 중세와 근·현대에 이르러 장장 천여 년의 시간이 중첩된 장소인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그 서편에 자리한 칠궁도 주목받고 있다. 칠궁은 왕을 낳고도 왕비가 되지 못한 7명의 후궁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 다음으로 큰 사당이다. 칠궁에 모셔진 후궁들은 살아있을 때 왕비도 못되었고, 죽어서도 왕의 곁에 묻히지 못했지만 낳은 왕자가 왕이 되었으니 외로웠으나 성공한 삶이었을까. 아니면 왕실의 암투에 전전긍긍한 인생을 살았을까. 원래 칠궁은 영조(1694-1776)의 생모로 드라마 ‘동이’로 알려진 ‘숙빈 최씨(1670-1718)’의 사당인 ‘숙빈묘’였다. 무덤을 지칭하는 묘(墓)가 아닌 사당을 지칭하는 묘(廟)로 숙빈묘는 이후, ‘상서로움을 기른다’란 뜻의 이름을 받고 ‘육상(毓祥)묘’로 고쳤다가 ‘육상궁’으로 격상되었다. 영조는 육상궁에 ‘어머니의 은혜를 온전히 보존하는 사당’이라는 현판을 내리며 자주 들러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기렸다. 영조 재위 시절 200여 번 정도 육상궁을 방문했다 하니 영조의 효심이 대단하다. 그 옛 모습은 현재 칠궁 내 우물 냉천에 남긴 영조의 시구와 영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던 냉천정 등이 남아 있으며,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739년에 그린 <육상묘도>에서는 육상궁의 초기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데 홍살문과 초가의 건물이 북악산을 배경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고, 육상묘 신위 봉안에 참여한 18명의 관원 명단이 상단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741년 그려진 〈장안연우〉에서는 초가가 기와집 형태로 바뀌어 표현되었다. 하지만, 영조의 정성이 무심하게도 육상궁은 1878년과 1882년 두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다시 지어졌다. 이후 추존 왕인 진종(효장세자)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신위를 모신 연호궁이 육상궁에 옮겨와 함께 있다. 점차 저경궁(인빈 김씨), 대빈궁(희빈 장씨), 선희궁(영빈 이씨), 경우궁(수빈 박씨), 덕안궁(순헌 귀비 엄씨)이 옮겨오고 조성되면서 칠궁이 된 것이다. 칠궁이 원래 육상궁이었다고 하나 실제 가보면 육상궁이 아닌 육상묘라 새겨진 현판이 연호궁 현판 뒤에 걸려 있다. 가려진 듯 보이는 위치에 육상묘로 남아 있는 현판을 보자면 괜히 마음이 씁쓸한데 죽어서까지 시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모시고 있는 정빈 이씨가 안쓰럽고 육상궁의 현황을 보면 영조의 억장도 무너질 것 같다. 조선왕조 임금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 자리를 지킨 영조는 왕위에 오른 내내 숙빈 최씨의 지위를 격상시키며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태평성대를 누린 시기지만, 어머니 숙빈 최씨가 궁중 나인출신이어서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한다. 숙빈 최씨는 7세 때 입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입궁 전 기록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숙종의 후궁이 된 후 기록은 왕자를 출산한 호산청 일기 등 자세한 사료들이 남아 있다.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궁궐에서 쫓겨난 후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다 알려져 있다. 훗날 영조가 된 둘째 아들 연잉군을 낳고 ‘귀인’이 되었으며, 단종이 복위 되었을 때 ‘숙빈’으로 승급되었다. 숙종의 총애를 받은 숙빈 최씨는 희빈 장씨가 세상을 뜨자 왕비가 될 수 있었지만, 희빈 장씨의 폐해에 지친 숙종이 ‘후궁이 왕비가 되서는 안된다’고 내린 법령에 따라 왕비도 못되었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어머니의 지난날을 안타까워하며 어머니가 궁중 나인으로 일을 할 때 누비를 짓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평생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영조의 손주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 서린 한을 풀어냈다면, 영조는 고생하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기리며 사모곡을 불렀을 것이다. 영조는 숙빈묘를 육상궁으로 격상시킨 것처럼, 파주에 있는 숙빈 최씨의 무덤인 소령묘를 소령원으로 높여 고쳐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숙빈 최씨의 아버지인 최효원(1638-1672)을 영의정으로 어머니 남양 홍씨를 정경부인으로 추증했다. 또한, 숙빈 최씨의 생가가 서울 세종로 일대인 여경방 서학동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반면, 숙빈 최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담양과 장성 일대 그리고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생가가 있는 정읍에 신분상승 꿈을 이룬 최복순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최복순은 어린 시절 숙빈 최씨 이름인데 어린나이에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은 숙빈 최씨가 담양의 용흥사에서 기도를 올려 왕자를 낳는 꿈이 이루어져 용흥사에 은혜를 갚아 번창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1936년 편찬된 『정읍군지』에는 대각교에서 귀인인 인현왕후의 가족을 만나 훗날 궁에 들어가 소원을 이룬 전설이 기록되어 있고, 정읍에는 그 만남을 기념하는 ‘만남의 광장’도 있다. 하지만, 숙빈 최씨의 어린 시절에 관한 정확한 사료가 없어 알 수 없다. 칠궁의 세월을 묵묵히 품고 있는 오래된 나무에 기대니 지나는 바람에 영조의 애절한 사모곡이 실려 오는 듯하다. 가만 눈을 감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 구중궁궐을 지나 삼남대로 옛길의 한 모퉁이도 찾아가 본다.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전북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56)어휘와 어법에 천착, 비평의 새 길 연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는 1941년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에서 부 오해준과 모 선준량 사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제초등학교 졸업하였고, 김제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부안여자고등학교와 전주해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75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군산공업전문대학(현 호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재직하였다. 1989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소월 시의 상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85년 뉴욕의 주립대학과 연변대학의 교환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며, 중학교 다닐 때 『무정』, 『유정』, 『단종애사』와 『원효대사』 등 이광수 소설을 섭렵하였다.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시인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선생이 소개되는 광경을 보면서 찬탄과 경이에 빠졌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전주고 1학년 때 서라벌예대에서 주최하는 전국고등학교 현상문예에 시 「옛날」이 당선되었는데, 담임 선생님 옆자리에 앉은 신석정 선생이 이를 크게 칭찬해주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운명과도 같은 신석정 시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석정 선생을 모시고 강인한, 오홍근, 강일부 등과 함께 맥랑시대라는 동인회를 결성하여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였다. 1960년 전북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그는 의외로 소설을 썼고, 3학년 때는 전북대학신문사 주최 현상문예에 소설 「신화」 가 당선되었다. 당시 그와 함께 시에 당선된 장지홍, 수필에 당선된 김형진은 훗날 오하근이 주축이 된 『문예가족』의 멤버가 되어 많은 활동을 하였다. 대학 시절 김교선, 이기우, 천이두 등의 지도로 문학평론에 몰두하였으며, 마침내 1981년 『현대문학』에 「불, 그 영원한 조합」이라는 평론이 추천 완료되었다. 그 후 그는 우리 문단의 깐깐한 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해석의 오류로 먹칠 된 작품들에 대한 바로 잡기에 앞장서면서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연구 저서들을 다수 출간하였다. 『김소월 시어법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현대시 해석의 오류』, 『전북현대문학(상, 하)』 등의 역작을 저술하였다. 그는 1970년대 초 석정 선생의 추천으로 시 부문에 등단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 평론으로 등단하여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 이상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부안여고에 재직하면서 「국정 중학 국어에 나타난 오류」(신동아)와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타난 오류」(전북일보)를 발표하여 당시 교과서의 문장, 문법, 표현법 등 수많은 오류를 지적하여 바로잡게 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에 집요하게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평론의 길을 열었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김소월 시업법 연구』(1995)를 비롯하여 많은 평론에서 작품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끈질긴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한 「어느 선각자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글에서는 현대문학사에서 외면당했던 많은 작가를 새롭게 조명하여 우리 문단을 풍성하게 하였다. 호병탁은 『문예연구』(2018년 96호)의 기획 추모특집 「오하근론」에서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밝힌 바 있다. 첫째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잡아주어 작품 해석의 물꼬를 제시하였다. 특히, 문학작품 중에서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작품, 해석에 논란이 있는 작품, 고착된 오류가 있는 작품들을 골라 오류를 바로잡아 올바르게 해석하는 물꼬를 열었다. 다음으로는 전 북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2010년 『전북현대문학』 상ㆍ하 권을 상재하여 전북지역 문인들의 작가론과 작품론을 개진하여 전북문학의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현대문학의 초창기 유엽(柳葉,1902-1975)으로부터 시작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전북문학사를 다듬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최명표는 「자세히 읽기와 지역에서 살기」라는 오하근 추모 기획특집에서 그의 공로를 김소월 시 정본화 작업으로 소월 시 연구의 활로를 모색하였으며, 전북문학을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문신은 오하근의 비평은 어김없이 진정성이라는 해석이 뿌리를 내렸다고 하면서 오하근은 해석의 힘을 사랑했고, 해석의 힘으로 비평의 지평을 열어가고자 했다라며 그의 비평적 진정성은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오하근은 이렇듯 평론에 굵직한 획을 남겼으며 크게 영달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평생 고향에서 후학들 지도와 연구에 전념하다가 76세 되던 해인 2017년 11월 17일 밤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생전 고인과 함께했던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청운사 주지 도원스님을 비롯하여 동인회 문예가족, 전북대 국문과 제13회 동기생들, 금요회, 맥랑시대 가족들은 2019년 5월 3일 김제시 청운사 연지에 오하근 평론가 문학비를 세우고 그의 문학을 기렸다. 이날 제막식에는 호병탁의 사회로 서재균 오하근문학비건립추진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안평옥 시인의 추모시 낭독이 있었다. 그의 제자 오용기은 『문예연구』(2018)의 추모특집에서 늘 함께했던 스승과의 사별을 안타까워하면서 스승의 문학적 열정을 다음과 같이 회억하였다. 선생님 웃음소리 기침소리 사이로 쟁쟁하게 되살아올 문학의 혼과 열정을 기다리렵니다. 평생을 두고 선생님께서 나누신 인정과 지성에 감동한 많은 분들이 살아 있는 백과사전을 무심코 찾다가 문득 빈자리 허전하게 더듬게 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냥 가신 것이 아니라 봄 잎이 녹음 되고 단풍으로 천지를 채운 뒤 욱욱청청한 숲에 침잠함으로써 오히려 새 날 다시 뽀땃이 암냥하는 순리로 돌아오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문예연구 96호(2018 봄)

행복한 금토일

[新팔도명물] 특색있는 강원도 동해안 물회

'새콤달콤'… 물회는 '갓 잡아 올린 생선이나 오징어를 날로 잘게 썰어서 만든 음식. 잘게 썬 재료를 파, 마늘,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으로 버무린뒤 물을 부어서 먹는 음식'으로 국어사전에 담겨 있다. 영어로는 'Cold Raw Fish Soup'. 차갑다는 단어가 포함될 정도로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여겨진다. 여름철 별미로 여겨질 수 있지만 최근에는 사시사철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음식이다. 원래 조업을 하는 어부들이 먹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의 동해안 6개 시·군의 지역별 특색있는 물회를 만나보자. ■강릉=회가 흔한 동해안, 특히 강릉에서는 물회가 귀한 음식이 아니었다. 신선한 회를 그냥 먹거나 회무침으로 먹으면 되지 굳이 물을 부어 물회로 먹을 이유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에는 물회로만 유명해진 집이 몇집 있다. 강릉의 물회는 주로 오징어나 가자미로 만든다. 여기에 우럭미역국을 반드시 곁들여 준다. 오징어나 가자미는 강릉에서 흔히 잡히는 생선이라 만만한 횟감이다. 요즘이야 고추장이 흔해 초장타령이지만 강릉의 장은 막장이었다. 과거에는 투박한 막장에 동치미 국물 등을 더해 맛을 냈으리라. 그렇게 만만했던 물회가 최근에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28000원~3만원을 넘어서 버렸다. 그래서 회 좀 칠줄안다는 강릉사람들은 시장에서 물가자미를 사와 집에서 물회를 만들어먹는다. 물가자미는 가격이 저렴해 20마리에 2-3만원이면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저렴이 물회를 먹고 싶다면 배달회를 시켜 유튜브나 인터넷에 떠도는 쉽게 만들 수 있는 물회육수 레시피로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냉면육수, 갈아만든 배 등으로 파는 물회의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다. ■동해=동해의 청정지역에서 갓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요리는 동해 어디에서나 마음껏 즐기실 수 있다. 얼큰한 해물탕과 매콤한 해물찜은 기본으로 신선한 활어회와 더위를 날려버릴 물회. 이중 동해시를 들렸다면 꼭 맛보고 가야 하는 음식은 물회다. 계절별로 제철 생선이 달라지긴 하지만 신선한 오징어와 뼈째 자른 가자미 등의 물회는 일품이다. 여기에 싱싱한 상추와 오이 등 각종 채소와 식당마다 더덕 등을 가미한 비법이 담긴 특별한 살얼음 육수를 붓는다면 이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고 싶어진다. 일례로 한 식당에서는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나 가족들이 찾는 경우를 보고 놀랐다는 후문도 있다. 그만큼 잊지 못하는 맛이다. 바다와 인접한 동해에서 육수에만 집중하면 싱싱한 회의 맛을 놓칠 수도 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동해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회의 신선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회를 씹을 때는 마치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해장국처럼 시원한 속풀이가 가능하고 알싸하고 달달한 맛과 함께 바다를 즐기는 것. 이것이 동해에서 맛볼 수 있는 물회의 일석이조 매력이다. ■속초=속초에는 여름이면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물회를 찾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일단 살아있는 싱싱한 활어로 만들어 내는 물회는 더위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입맛과 생기를 되찾아 주는 음식이다.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물회는 거슬러 올라가면 오징어물회가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오징어물회는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먹던 음식이었다. 어부들이 조업 중 바다에서 잡은 오징어를 야채와 초고추장을 물에 함께 버무려 훌훌 마시면서 먹은 게 오징어물회의 시작이다. 오징어는 비리지 않은데다 육질이 단단해 씹는 맛이 일품이다. 어떤 물고기든 신선한 횟감이면 입에서 살살 녹기 마련이지만 오징어 물회는 동해안 횟감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오징어물회를 일반 횟집에서 상품화 해 팔기 시작하면서 그 맛이 소문이 났다. 물회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며 오징어뿐만 아니라 가자미 등 여러 가지 재료의 물회가 생겨났으며 최근에는 해삼, 멍게, 문어, 전복 등 갖가지 재료를 넣은 고가의 물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삼척=삼척 물회는 다양하다. 물회 전문점마다 전통과 정통성을 고집하고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맛볼 수 있도록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싱싱한 횟감을 사용한다는 동해안 특성을 잘 살렸고, 전문점 마다 천차만별인 소스류, 횟감에 어울리는 각종 부산물 첨가 등으로 다양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 전날 술을 마신 뒤 속풀이가 필요한 술꾼들에게는 해장용으로, 일반 관광객들에는 찬 맛으로 먹는 별미인 물회는 싱싱한 횟감에 차가운 육수와 초장이 가미된 동해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일품 음식이다. 회 본연의 맛을 즐기도록 각종 회에다 초고추장만을 내놓는 전문점이 있는가 하면, 회에다 각종 야채와 날치알, 콩가루까지 첨가해 마른김에 싸 먹도록 하는 전문점도 있다. 모든 물회에 살얼음 육수는 기본이다. 살얼음 육수는 완성도를 높이는 결정체다. 소스 또한 다양하다. 전문점마다 공개하지 않는 비법이 숨어있다. 삼척항 주변 한 전문점은 5년 이상 묵은 집장을 밑간으로 한 뒤 고객마다 초고추장을 첨가해 먹는 자유를 주고 있다. ■고성=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고성은 동해안 최북단의 청청한 황금어장을 자랑한다. 삼선녀어장, 저도어장, 북방어장 등 3대 어장과 연안에서도 다양한 해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대문어, 광어, 가자미, 우럭은 기본이고 오징어, 전복치, 미역치, 놀래미, 해삼, 멍게, 소라 등 바다가 내어주는 식재료가 넘쳐난다. 이 때문에 매운탕과 물회는 지역의 대표음식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특히 물회는 그날 어획한 해산물을 사용해 신선함과 담백함이 으뜸이다. 재료는 횟집마다 천차만별이다. 매일 잡히는 어종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성물회는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각종 채소와 고추장으로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을 만든다. 여기에다가 메인 식재료인 자연산 회가 얹혀지면 잊지못할 동해바다의 맛이 완성된다. 동해안 최북단 항구인 대진항과 거진항, 고성물회의 1번지 가진항, 낚시객이 많이 찾는 공현진항, 고성의 관문에 위치한 봉포항과 아야진항 등 어느 곳을 가든지 자연산 해산물로 만들어 내는 물회를 즐길 수 있다. ■양양= 양양에서의 물회는 ‘맞춤형’이 가능하다. 양양 수산항의 한 횟집은 참가자미 물회를 대표 메뉴로 내놓는다. 여기에는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던 참가자미와 함께 전복, 해삼, 멍게가 곁들여진다. 물회에 들어가는 모든 해산물은 당연히 100% 자연산이다. 특유의 향으로 인기를 끌며 요즘은 전복보다 가치가 높아진 해삼을 추가하고 싶다면 약간의 비용만 더 지불하면 된다. 데친 미나리를 물회와 함께하면 그 향이 남 다르다. 동해안에 횟집을 자주 찾는 지인의 소개로 가면 광어, 우럭, 물가자미 등 다양한 횟감을 물회 재료로 주문해 즐길 수 있다. 한 여름에는 오징어 물회가 인기다. 질긴 껍질을 제거한 오징어가 들어간 물회는 ‘싱싱함과 상큼함’ 그 자체다. 양양의 경우 수산항과 낙산, 물치항 등 지역 대부분의 해변 횟집에서 물회를 주문할 수 있다. 가격은 1인분에 1만5,000~2만원이다. 글=강원일보 지방종합 사진=강원일보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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