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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범죄로 젊은 시절 낭비되지 않도록

▲ 서경원 변호사

뒤늦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다. 여기에는 심각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거나, 주인을 심하게 무는 등 행동교정이 필요한 강아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 가정에 전문 훈련사가 방문하여 문제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해 나간다.

 

위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강아지들이 어떤 문제 행동을 ‘갑자기’ 보이는 이유는 없다는 훈련사의 말이었다. 강아지들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할만한 행동을 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신호들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알면서도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 활동

 

나는 서울가정법원 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 활동을 하고 있다.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된 소년들이 적법 절차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소년들을 변호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소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조사하고 지도하는, 상담사와 비슷한 역할도 한다.

 

재판을 받게 된 소년들과 이야기를 하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겠구나.’라는 것이다. 소년의 주변을 살펴보면, 보호자가 폭력적이거나 방임하는 경우, 지속적인 주 보호자가 없는 경우, 집단 따돌림을 받았던 경우 등 그 보호력이 미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들은 계속 ‘신호’를 보낸다. 위 TV 프로그램 속 강아지처럼 말이다. 나를 돌봐주세요, 더 사랑해주세요, 내게 지금 이런 문제가 있어요,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라고. 소년은 어느 날 성인에게 대들기도 하고 잘 하던 숙제를 하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신호를 주변에서 잘 알아주지 않으면 소년은 외로움에 화가 많이 났을 것이고, 학교에 나가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소년일수록 문제 행동은 더욱 심화되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되어 나와 만나게 되었을 소년들. 우리는 그 사소한 신호를 무시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온정적인 시각에서 소년을 이해하기에는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가 상당히 큰 경우가 있다. 혹은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거나 죄책감이 적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진정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신과적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그 맨 처음 시작은 대부분 아주 작은 것이었을 터이다.

 

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국선보조인으로서 소년과의 만남이 지속적이기는 어렵다 보니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짧은 만남 속에서도 소년들이 세상에 나의 첫 신호를 이제라도 알아주는 성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와의 만남이 그들에게 치유와 반성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책임이라는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

 

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소년들이 보내는 그 첫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반응하는 것은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는 첫 단추이다. 그 첫 단추를 잘 꿰어서 소년들의 젊음이 더 이상 낭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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