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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의 현악 4중주

▲ 윤미애

중화요리 집 태백관의 소리는 4중주다. 인연이라는 질긴 현으로 구성된 현악4중주다. 탕탕, 똑딱똑딱, 달그락달그락, 부릉부릉, 지천명을 넘긴 태백관의 4인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잘 버무려진 삶의 화음이다. 소리란 듣는 이의 몫. 한낱 음식점의 잡동사니 소음도 내게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삼십년 전 그날, 늙은 호박을 싣고 태백관에 온 트럭과 이삿짐을 싣고 온 우리 트럭 간에 좁은 골목에서의 영역다툼으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설핏 트럭 위에 실린 커다란 호박에 욕심이 갔다. 얼마 후, 앞치마를 두르고 달려온 부부의 손에 아까 그 호박이 들려있었다. 부끄럽게 호박 한 덩이를 건네받으며 우리는 그렇게 태백관의 사람들과 이웃이 되었다.

 

척추 골수염으로 왜소한 키를 가진 주인이자 태백관의 주방장인 양씨와 아내 윤씨의 도마질 소리는 바이올린의 고음 대다. 주방을 오가는 오씨의 목소리는 비올라의 중음이고, 배달하는 장씨의 활기차고 싱싱한 소리는 첼로의 저음이다. 그들은 모두가 동등하게 분담해서 제 소리를 낸다. 처음부터 빠른 선율로 다잡아 이끌기도, 때론 가쁜 숨을 내뱉고 잠시 숨고르기도 한다. 그 조화로운 삶의 소리가 리듬과 선율, 화음이 완전한 화성과 음색의 하모니를 이루는 날이면 태백관의 영업은 성공이다.

 

삶이 조금 나태해진다고 느낄 때 현악4중주를 듣는다. 온 몸을 휘감는 부드러운 음향과 중간 중간 격렬해지는 짜릿함, 연주가 끝난 후 남는 여운과 잔상. 잔잔한 선율의 풍부한 리듬감이 좋아서다. 그러나 연주자들은 말한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균형을 이루어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몫의 소리에 충실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고 예민해진다고.

 

맛 집으로 유명해진 그 곳 사람들은 어릴 때 고아원에서 함께 자라 지금껏 형제의 연으로 살아가지만 혈육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다. 처음부터 그들의 연주가 완벽했던 것도 아니었다. 불협화음으로 만났다 헤어지기도 여러 번. 그때마다 화합만이 살길이라는 걸 깨달았고 서로를 보듬어 오늘에 왔는지도.

 

‘탕탕’ 본격적인 태백관의 영업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1바이올린 연주자인 양씨가 반죽을 내리친다. 에너지가 넘친다. ‘똑딱똑딱’ 태백관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육신을 가진 윤씨의 동작도 세심하고 빈틈이 없다. 리더를 보좌하는 제2인자의 솜씨답다.

 

‘달그락달그락’ 홀을 담당하는 오씨. 예의 바르고 인사성이 밝아 적임자다. 건설현장으로 부초처럼 떠돌다 다친 다리를 끌고와 합류했다. ‘부릉부릉’ 골목골목 오토바이로 곡예 하듯 배달 다니는 장씨는 공장용접공으로 일하다 한쪽 눈을 잃고 방황할 때 양씨가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번듯한 대로변에 나앉지 못하고 생의 뒤안길만 전전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도심의 변두리 좁은 골목. 그들이 비비고 기대며 내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있어 삶의 생기가 넘친다.

 

저 집, 오늘도 제1바이올린의 굽이치는 선율이 경쾌하다. 뒤를 이어 나긋하면서도 고요한 제2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곧 비올라와 첼로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것이다. 아침 골목이 기지개를 켜며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수필가 윤미애 씨는 경북 포항 출신으로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 수필 대상, 포항소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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