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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 조정 '그라시재라, 서남 전라도 서사시'

그녀들이 쏘아올린 역사인식과 방언의 지극함 서남전라도 방언 “그라시재라”는 공감과 연민, 연대의식을 함의하는 따뜻한 온도를 지닌 언어다. 방언이란 공동체 문화역사를 담는, 그 지역 사람들 ‘존재’에 대한 입증이요 삶의 갈피다. 『그라시재라』에서 시인은 시적 자아의 정서와 사유를 시적 대상에 투사하거나 동화시키는 한편 현실을 내면에 포섭, 현실과의 화해 혹은 합일을 모색한다. 괄목할 점은 자신의 모어母語로 내면정서와 사유를 이야기(구체적 용례)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서효인의 발문처럼 1960년대 전남 영암지역 여성들의 실화 “죽음보다 깊은 비극, 삶보다 넓은 희극”인 근현대사의 참혹한 역사가 펼쳐진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과 신분박탈, 한국전쟁의 무고한 양민학살, 좌익으로 몰려 자행되던 보복학살, 가난으로 인한 행려병자 등이 속수무책 등장한다. 특히 노작문학상 심사위원회 평가대로 “현대사에서 격락되거나 묻힌 부문을 여성 주인공들의 목소리로 복원, 재구조화는 점에서 여성 서사의 새로운 진경을 열고 있”다. “육요지남서 자네집 식구 줄고 고샅이 호젓했는디 인자 애기 우는 소리 날 것 아닌가” “즈가부지 난리 때 가불고 어찌 사꼬 했는디 옹사건 살림이래도 인자 훈짐이 돌아라” <분통같은 방에 새각시(20쪽)> “지둥에 뭉꺼놓고 죄를 물음서 부연 살을 칼로 뿌어서 죽이는디 눈 뜨고는 못보제. 이놈들아 죽일라면 그냥 죽여라허고 영감님은 소리 지르고 뿌는 것이 머시냐고? 무시국 끼릴 때 한손에 무시 들고 칼로 슥슥 쳐서 넣는 것 모르냐? 그렇게 살을 비어내는 거시여” <지하실이 필요해(52쪽)> “오매 이 사람아 어째 이랑가 못 살 시상 살어났응게 되얐네 그러지 마소” “살도 못 허고 죽도 못 허것소 성님”<산 사람은 살아야지(62쪽)> 독자들이 이 시집을 읽는다면 ‘토벌 때 서방이랑 자석 죽인 웬수인 갱찰서 토벌 갱찰하고 살게 된 떼보각시’등의 질펀한 피울음이 내내 서럽고 아플 것이다. 이런 소중한 독서경험이 그들과의 연대가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표준어와 감각적 표현방식에 길들인 필자 또한 ‘사어死語에 가까운 지역방언만으로 시를?’ 돌올한 의문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돌이켜보건대 목포에서 태어나 영암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필자에게는 행운이고 필연이었다. 현재 영암은 사회경제학 측면에서 낙후와 인구소멸지역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그러나 영암은 고대 마한의 무역도시였고 도기문화가 화려하게 꽃 피웠던 곳이다. 월출산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정취가 녹아있는 영암에서 『그라시재라』는 영암의 ‘길가메시’요 ‘니벨룽겐의 노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생태주의자들이 종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언어 진화를 모색한다면 대표 단수만 옹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 정 시인은 “전라도 서남 방언을 바탕으로 모어의 확장 가능성과 그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밑으로부터의 역사’ 즉 소외계층(여성)으로 한국 근현대사 연구 범위를 확대시킨 역사의식의 발로라고도 할 수 있겠다. 타향을 전전하는 동안 삶이 심드렁해지고 녹록치 않을 때 습관처럼 남도사투리를 읊조린다. 타지의 생경함이나 부침에서 기인된 것도 있지만 귀소본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 정 시인은 필자에게 한 권의 대서사시와 어머니와 고향을 선물해주셨다. 기명숙 시인은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2.09.28 16:36

한국전통문화전당 신임 원장에 예원예대 김도영 교수 내정

한국전통문화전당(이하 전당) 신임 원장에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 김도영(55·전북 전주시) 교수가 내정됐다. 전당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 8월 원장 공모 이후 공모 지원자 9명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 면접 심사를 통해 김 교수와 보도국장 출신 A씨, 지방의원 출신 B씨를 최종 임원 추천 후보자로 발표했다. 27일 이사회 등을 통해 김 교수를 원장으로 최종 선정했다. 그는 전북대 상과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동양미학전공), 국립전남대 대학원에서 문화재학박사(미학·미술사학전공)를 졸업했다. 전남대 일반대학원 외래교수, 전라북도교육청 교육거버넌스 위원, 전주시 한옥보존·경관위원회 위원, 한국서예문화학회 학술이사 등을 지냈다. 현재 예원예술대 교양학부 교수, 호남미술사학회 회장, 한국서예학회 부회장, 한국전통문화전당 자문위원장, 전북도·전남도·광주광역시·충북도청 문화재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앞으로 한국전통문화전당이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재창조를 통한 세계화의 융합 거점으로써 재도약하고 다시 한번 전주가 전통문화의 수도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데 전력하겠다"고 말했다. 임기는 오는 10월 11일부터 2024년 10월 10일까지 2년이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9.28 16:35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세계 곳곳의 이야기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설렘 속에 내가 만나거나 지나왔던 곳들은 첫사랑처럼 기억 창고에 차곡히 보관되어 있다. 가끔씩 햇빛에 바래거나 희미해진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의 여행을 새로 시작해 본다." '글이 그림이 되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 김병종 화백이 여행 산문집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너와숲)를 펴냈다. 김 화백이 <화첩기행> 이후 약 7년 만에 산문집을 출간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눈에 저장한 풍광과 외국 예술가에 대해 탐구하고 사색한 내용을 담았다. 예술가의 흔적부터 그들이 재능을 키워나갔던 도시, 공간,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행자 시선으로 그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여행만 떠나면 글을 끄적거리고 그림을 그렸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람과 사물의 풍경과 체험했던 것을 나중에라도 다시 끄집어내서 글로 정리하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여행 산문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코로나19로 여행가지 못했던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충족시켜 주고자 했다. 이밖에도 독자들도 각자 기억하고 싶은 삶의 순간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현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김 화백은 "내 나름대로의 문장과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영 찜찜한 기분"이라며 "표현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하고 돌아오면 어쩐지 변죽만 울린 것 같다. 표현을 한 후에야 여행이 육화 되는 것 같다. 나의 여행 방식은 그런 면에서 좀 독특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남원 출신으로 서울대 미술대학,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미대 학장 및 조형연구소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다. 40여 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세계적인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30여 회의 국내외 개인전, <화첩기행> 등 30여 권을 책을 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로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9.28 16:35

극작가 최기우 손끝에서 다시 시작된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문학동네는 아이들이 한 권의 책이 지닌 즐거움과 감동을 경험하고 직접 이야기 속 인물이 돼 보며 함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소통하며 협동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지난 2019년부터 어린이 희곡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열 번째 시리즈는 <어린이 희곡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최기우 극작가가 제15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인 김진희 작가의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를 희곡으로 각색한 <어린이 희곡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문학동네)를 출간했다. 이 책의 특징은 동화가 희곡으로 각색되면서 등장인물과 구성, 세부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요소가 지문이 되고 어떤 요소가 대사가 됐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등 장르 간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희곡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줄거리는 저승사자의 실수로 저승에 간 아이가 이승에 오기 위해 빌린 노잣돈을 갚아 나가는 과정에서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가치인 진실한 양심과 우정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원작의 줄거리와 의미는 충실히 살리면서 곳곳에 극적인 요소를 넣어 희곡의 재미를 더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이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지는 듯하다. 최 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후 연극, 창극, 뮤지컬, 창작 판소리 등 무대극에 집중하며 100여 편의 작품을 올렸다. 대한민국 연극제, 전북 연극제 희곡상 등을 받았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인문서 <꽃심 전주>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장이며 전주교대 대학원에서 '교육연극'을 강의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9.28 16:34

무덤덤하게 따듯한 위로 건네는 법성포 블루스

강명수 시인이 첫 시집 <법성포 블루스>(천년의시작)을 출간했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50여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일상의 풍경과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인간의 삶이 가진 의미를 표현했다. 순탄한 삶은 아니지만 뜨거운 인생의 열기가 지나가면서 찾아온 감정 위주로 시를 썼다. 이에 시집은 법성포의 아름다운 정취가 펼쳐지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담긴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밖에도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을 포착하기도 하고,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시에 담았다. 인생의 좋은 것, 나쁜 것을 다 보여 주면서도 그 안에서 무덤덤하게 따듯한 위로를 보내는 것이 강 시인의 특징이다. 해설을 쓴 차성환 시인은 "그의 시에는 바다의 모래톱에서 망연하게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표정이 있다. 끈적끈적한 땀 냄새와 눈가에 흘린 눈물 자국, 헛헛하게 지어 보이는 씁쓸한 웃음. 그 인간의 체취를 넘어서 삶에 대한 무한 긍정과 함께 깨달음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있다"고 전했다. 강 시인은 "이렇듯 언어의 집을 짓는다.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음악 같은 내 삶의 이력, 시의 율동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항해는 미래 진행형일 것이다. 바다 위의 알바트로스처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제1회 김삼의당 시·서·화 공모대전 대상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9.28 16:34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7)조선에 남은 하멜 요리사 얀 클라슨

“너희는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디서 오는 길인가?” “우리는 화란인이며 코레아에서 오는 길입니다” 1666년 9월 14일, 조선 탈출에 성공한 네델란드 선원 하멜 일행 8명이 나가사키 관리에게 심문받으며 답변한 말이다. 본국인 네델란드로 돌아가기 위해 그들은 표류한 이유와 당시의 현황 그리고 조선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름·나이·항해할 당시 직책과 거주하는 장소까지도 최선을 다해 답변하였다. 남원에는 요리사 얀 클라슨(Jan Claeszen, 49세)을 비롯하여 헨드릭 코넬리슨(Hendrick Cornelissen, 37세)과 요하니스 람펜(Johannis Lampen, 36세) 3명이 남아있고, 순천에 조타수 야콥 한스를 포함한 3명 그리고 여수 좌수영에는 포수 산더 바스켓을 포함 2명이 남아있다고 『하멜보고서』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은 조선을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하멜표류기』의 일부이다. 하멜 일행이 표류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의 행적이 자세하게 전해진 데에는,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이 네델란드 본사에 <항해일지> 등을 기록해서 보고 해야만 하는 직책인 ‘서기(書記, 회계사 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1653년 하멜 일행은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타고 7월 30일 지금의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났다. 악전고투 끝에 암초에 좌초되어 제주도에 표착한 날이 8월 16일이었다. 선원 64명 중 선장을 포함한 28명이 죽고 36명이 살아남았는데, 당시 하멜은 23살이었고 훗날 1666년 탈출할 때 나이는 36살이었다. 조선 땅에 그토록 오랫동안 머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생존자들은 시신을 수습하여 함께 묻어주며 조선에서의 ‘13년 28일’ 중 첫날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파도에 떠 밀려온 생필품을 살펴보고 밀가루와 고기 베이컨이 들어있는 상자와 와인 상자를 발견했지만, 불이 없어 요리하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텐트를 만들어 비를 피하고 있는데 세 명의 현지 사람이 나타나 화승총으로 위협해 불을 얻어내었다. 아마 그때 첫 요리를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그 요리사가 ‘얀 클라슨’일 확률이 높지만, 기록에는 없다. 그들은 좌초한 곳이 일본 부근일 것이라는 생각했으나, 그들을 포위하고 억류한 사람들의 옷차림이 일본이나 중국과 달라 어딘지 알 수 없었다가 제주임을 알게 된다. 제주도 사람들은 점차 하멜 일행을 관대하게 대했으며 지닌 음식이 베이컨과 고기뿐임을 알고, 너무 굶주린 상태에 많이 먹으면 탈이 날 것을 염려해서 쌀죽을 조금씩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와인을 맛보고는 무척 만족해했다고 하며, 이후 숙소로 옮겨와 심문받을 때도 외출을 허락해 점차 반찬 요리도 해 먹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던 10월 29일 벨테브레이(J.J. Weltevree)라는 조선으로 귀화한 네델란드인 박연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일본으로 향하던 중 음료수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에 상륙하였다가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조선인 여자와 결혼하여 귀화한 사람이었다. 박연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과 맞서 싸운 조선의 군인이었다.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총포 제작과 조작법을 지도하며 포로들을 감시하고 통솔한 자로, 하멜 일행의 통역을 위해 제주에 내려가 대면하게 되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는가?” 그가 누군지 제주 목사가 묻자, “우리와 같은 화란인”이라 대답하자 제주 목사는 웃으며 “틀렸다. 이 사람은 코레시안(Coresian, 조선인)이다”라고 했다. 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류와 행적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윤행임(1762-1801)의 문집 『석재고(碩齋稿)』에는 “박연은 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뒤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자기 옷깃이 다 젖을 때까지 울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제주에서의 10개월을 보낸 뒤 왕명을 받아 박연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와 훈련도감에 배치된 하멜 일행은 조선군 신분이 된다. 하지만, 일행 중 두 사람이 청나라 사신을 만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쫓겨나게 된다. 유배 가는 길에 배웅나온 박연과 마지막으로 보고, 1656년 강진의 전라병성에서 담장을 쌓으며 잡초를 뽑고 주변을 정비하는 노역을 하며 고향으로 갈 희망 없는 삶을 살게 된다. 현재 강진 병영성 인근의 천연기념물 성동리 은행나무는 하멜의 기록에 등장한 나무라하며 주변의 특별한 마을 돌담은 그들의 흔적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그곳에서 하멜 일행은 7년 동안 22명이 남는다. 그러다 기근이 심해지자, 12명은 여수로 5명은 순천으로 5명은 남원으로 각각 이송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여수에 있던 8명이 탈출에 성공하고, 죽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2년 뒤 1668년 일본으로 송환된다. 그런데, 그중, ‘남원에 살던 요리사 출신인 얀 클라슨’은 송환을 거부하고 조선에 남았다. 네델란드에 도착한 하멜은 억류 기간 못 받은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동인도 회사에 보고용으로 기록한 항해일지를 기반으로 <하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이 1668년 책으로 출간되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유럽인들에게 조선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17년 재미교포 잡지에 연재된 것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청춘』 6월호에 처음 소개되었고, 이후 『하멜표류기』로 출판되었다. 하멜 일행은 남(南)씨 성을 나라에서 하사받았고 강진에는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후손들이 있었다고 하나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더구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남원에 남았던 요리사의 흔적은 더욱 묘연하다. 오래전 이국적인 모습의 사람이 조리한 서양 음식의 흔적이 남원에 아직 남아있을까? 그 마음과 자취를 따라 가을날 사랑이 깃든 남원으로 특별한 맛 기행을 떠나야겠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9.28 15:38

2024년 전북에 이건희 컬렉션 온다

이건희 컬렉션이 오는 2024년 전북에 온다. 전북은 컬렉션 개최도시 가운데 가장 후발주자로 전북이 늦어지게 된데 대한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가 고 삼성 이건희 회장 기증품(이하 이건희 컬렉션)이 국가 보유 미술품의 지방 순회 전시 활성화를 위해 오는 10월부터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을 본격적으로 개최한다. 전북 지역은 2024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3년에 걸쳐 14곳에서 지역 순회전을 펼친다. 첫 시작은 국립광주박물관(10월 5일∼내년 1월 29일), 광주시립박물관(10월 5일∼11월 27일)이다. 이어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연다. 2023년에는 대구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국립대구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2024년에는 전북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충남도립미술관 등이 예정돼 있다. 지방국립박물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었던 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토대로 박물관별 특성화된 전시를, 지역 미술관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이건희 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등 이건희 컬렉션 중에서도 엄선한 명작 50여 점을 포함해 각 기관 상황에 맞춘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광주 지역에 설치될 작품과 전시 기간 등만 공개했다. 다른 기관에서 전시할 작품은 추후에 공개할 예정"이라며 "2024년에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맞으나 작품, 전시 기간, 전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2.09.27 16:54

캔버스 속 안개와 노는 송관엽 화백...10월 9일까지 개인전

경산 송관엽 화백이 10월 9일까지 향교길68(대표 조미진)에서 개인전 '붓을 든 철학자 2022'를 연다. 이번 전시에서 2m가 넘는 대작을 포함해 다양한 크기의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신작을 중심으로 원숙한 맛을 전할 예정이다. 그는 평소 자연을 관찰하고 감상하다가 그림이 될 것 같으면 수 차례, 수십 차례에 걸쳐 그곳을 찾아가 작업에 몰두한다. 새벽, 해 질 녘, 비가 오는 날, 안개가 피어오르는 날, 맑은 날에도 찾아가 풍경과 느낌을 마음에 담고 이후에 붓을 잡는다. 이에 송 화백의 산수화는 일반 산수화와 다르다. 그의 산수화에서는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안개와 산마루를 돌아 나오는 구름 등 전통 산수화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녹색 등이 펼쳐진다. 조미진 대표는 "안개는 산을 희롱하고, 송관엽 화백은 그 안개와 논다. 골짜기 안개를 불러와 앞산을 가리고, 눈앞의 안개를 얻어 먼 산을 부른다"며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우주의 순환과 자연의 진리, 생명의 가치 등 조화를 담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화백은 원광대 미술교육과, 동 대학원을 나왔다. 그는 전라북도 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전라북도 미술대전 한국화분과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2.09.27 16:54

선선한 가을 바람 타고 날아온 뜨락 음악회 초대장

사회적 기업 마당의 <가을날의 뜨락 음악회(이하 음악회)> 스물여섯 번째 무대가 오는 10월 1일 오후 6시 30분 국립전주박물관 본관 앞 뜨락에서 개최된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클래식 위주의 공연이 펼쳐진다. 기타, 오보에, 바순이 얽혀 만들어내는 화음이 인상적인 클래식 합주 '에스트로 앙상블(Estro Ensemble)'과 팝, 오페라의 매력을 노래하는 '라 스트라다(La Strada)'가 환상적인 공연을 선사한다. 에스트로 앙상블은 '아리오소', '트리오 소나타 사단조', '카바티나'를 통해 기타, 오보에, 바순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할 예정이다. 또 탱고의 역사 중 '보르델 1900'에서는 오보에와 기타의 합주를 선보인다. 라 스트라다는 '대성당들의 시대', '일몬도', 'Once upon a dream' 등 유명한 뮤지컬 노래와 영화 OST로 가을밤의 정취를 깊게 할 계획이다. 에스트로 앙상블은 깊은 음색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김우재의 클래식 기타, 'Washington Asia Press'에서 호평을 받은 손연지의 오보에, 괴팅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이자 두이스부르크 필하모니 공동 수석을 역임한 허지은의 바순으로 구성돼 있다. 라 스트라다는 지역을 대표하는 젊은 성악가들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 KBS 기획 공연 <나이트 피버> 등 다양한 공연 및 축제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통 성악곡부터 뮤지컬, 영화 OST 등을 다양하게 소화하고 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2.09.27 16:54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무형유산 한자리에...29일부터 전주서 축제

오는 29일부터 10월 초까지 전주 곳곳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무형유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펼쳐진다. 제5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한마당 축제가 막을 올리고 2022 대한민국 무형유산대전이 막을 내린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한마당 축제 전라북도무형문화재연합회(이사장 왕기석)가 주최·주관하는 이 축제는 오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전주 경기전 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의 주제는 '전북의 혼, 미래를 비추다'다. 개막식은 29일 오후 4시 30분. 축제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존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축제를 기획했다. 축제 기간 신명 난 무형문화재 보존회의 퍼레이드, 여러 분야의 보유자가 합심해 만들어낸 입체 창극 특별 기획공연, 무형문화재 보유자 공연, 장인의 혼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10월 1일까지 문화공간 기린에서는 '장인의 혼, 미래를 담다' 전시도 진행한다. △ 2022 대한민국 무형유산대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경훈)이 주최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이 주관하는 이 축제는 오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이어진다. 개막식은 30일 오후 3시. 주제는 '자연과 사람을 잇는 무형유산'으로, 자연에서 재료와 영감을 얻어 사람을 통해 대대손손 이어가는 무형유산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담았다. 공연과 공예 분야 보유자 작품전, 무형유산 디지털 체험, 2022 보유자작품전(10월 9일까지) 등이 진행된다. 이밖에도 30일과 10월 1일에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전라도 한옥마을행 꽃가마' 당일 버스 투어 패키지도 운영한다. 한옥마을 먹거리 투어, 오성한옥마을 자유 관광, 축제 관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세한 내용과 사전 예약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 문화재·학술
  • 박현우
  • 2022.09.27 16:53

문화재청, 남원서 425주년 만인의사 순의제향 행사

문화재청 만인의총관리소(소장 정영환)는 지난 26일 오후 3시 남원 만인의총에서 최응천 문화재청장, 이용호 국회의원, 국주영은 전북도의장, 최경식 남원시장, 만인의사 후손들, 유관기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국선열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순의제향(殉義祭享) 행사를 가졌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당시 최대 격전지인 남원성 전투에서 5만6000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신 민·관·군 의사를 모신 곳으로, 민족의 빛나는 호국정신의 상징이자 우국충절의 숭고한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다. 행사는 만인의총 관리소장이 초헌관을 맡아 분향(焚香, 향을 피움) △초헌관이 헌작(獻爵, 술잔을 올림)하는 초헌례(初獻禮), △축관(祝官)의 축문 낭독, △아헌관이 헌작하는 아헌례(亞獻禮), △종헌관이 헌작하는 종헌례(終獻禮) △대통령 헌화(獻花, 문화재청장 대행)와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남원시립국악단의 정화무인 지전춤, 창작국악인 만인의 염원 등 추모 공연과 의총 참배가 이어졌다. 지전춤은 죽은 이의 영혼이 원한을 풀고서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도록 지전(종이돈)을 가지고 추는 춤이다. 문화재청은 앞서 지난 23일 충남 금산 칠백의총에서도 430주년 순의제향 행사를 가졌다.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선생과 승장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700여 명의 의병이 금산 연곤평(延昆坪)에서 1만 5000여 명 왜적과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그분들의 유해와 의로운 넋을 함께 모셔놓은 곳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호국선열의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고 이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길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꾸준히 개발ㆍ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백세종
  • 2022.09.27 14:19

"전북 문단의 큰 별을 기리며" 중산 이운룡 시인 전북 문인장 치러

"'큰 어른 한 명을 잃는 것은 박물관 하나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북 문단의 큰 어른을 잃었습니다. 박물관뿐만 아니라 문학관까지 두 가지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북받쳐 오는 슬픔에 갇혀 있습니다." 전북 문단을 기둥처럼 받쳐 주고 따듯하고 포근한 통솔력으로 후배 문인을 아껴 줬던 중산 이운룡 시인 별세에 전북문인협회는 26일 전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전북 문인장을 치렀다. 전북 문단의 큰 별이자 거목인 이 시인이 지난 2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이날 문인장에는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김남곤 시인, 김영 전북문인협회장,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서정환 신아출판사 회장, 양병호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중하 소설가(우신산업 대표), 안도 시인, 이동희 시인, 도내 문인 등이 자리해 함께 이 시인을 애도했다. 사회는 김정길 전북문인협회 수석부회장이 맡았다. 김영 회장의 조사, 이운룡 시인과 절친이었던 김남곤 시인의 조시, 이재숙 시인의 추도사, 문인 대표 소재호 회장의 인사, 유가족 대표 인사, 헌화, 묵념 등이 이어졌다. 학창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은 "중산 이운룡 시인과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다. 사회에 나서 시 한 편 써본 적 없는 제게 아름다운 시 세계, 문단으로 이끌어 줬다. 이 시인이 천상에서도 시 마음껏 쓰고 편안하길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숙 시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이 자리에 섰다.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다. 선생님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고명한 시인이시고, 따듯하면서도 선명한 평론가셨으며, 참스승이셨다. 저희의 횃불이 돼 주신 분이다. 덩그러니 남겨진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 선생님이 평생 닦아 오시고 거두신 길을 기억하겠다"라며 추모사를 전했다. 한편 고인인 이운룡 시인은 진안 출신으로 전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조선대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전북에서 최초로 열린시창작교실을 개설하고, 전북문인협회장,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전북문학관 관장 등으로 지냈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다. 장지는 진안 마령 선영.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9.26 16:47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미술사상 처음으로 법정에 간 화가와 평론가 2

두 번째 쟁점은 ‘무엇을 그렸느냐.’다. 풍경화라고는 하는데 “이것이 왜 풍경화냐?”, “어디를 그린 것이냐” 등의 질문이 있었다. 휘슬러는 대답한다. “이 풍경화는 크레몬 공원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어두운 공원을 배경으로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어 또 비아냥거림의 목소리가 나온다. 어둠 속에 금물을 뿌렸던 이 그림을 보면서 “떨어지는 불꽃의 구성이나 색채, 세부적 표현들이 풍경화라기보다는 배열의 실험에 불과한 것”이라는 혹평에 다시 “이 그림은 검은색과 금색을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으로 음악으로 치면 야상곡 같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사실 음악은 가사 없이 느리고 빠르고, 높고 낮고, 길고 짧은 곡만 듣고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유독 미술에서만은 가사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길고 또 휘슬러가 안타까운 것은 같은 류의 그림을 그리던 터너에게는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며 본인에게는 엄격한 고전의 풍경화의 원칙을 열거하는 것이다. 결국 재판은 휘슬리의 승소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휘슬리는 막대한 재판 비용으로 살던 집까지 팔아야 하는 가난뱅이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러스킨에게는 휘슬리에게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는데 금액은 1파닝(한화 10원)의 웃지 못할 것이었다. 이 재판으로 휘슬러는 파산하고 러스킨도 우리들 말로 쪽팔려서 옥스퍼드의 석좌교수 자리에서 퇴임하였다. 그러나 휘슬러는 나중에 이 불친절한 그림, 즉 야상곡을 800기니(한화 약 1억 2천만 원)에 팔 수 있었다. 누구의 승리인가를 따지기 전에 꼭 한 번은 꼭 있었어야 할 재판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 여기에는 사진술의 발명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1839년에 발명된 다게레오 타이프로 거의 인물사진을 독식했기에 휘슬러는 잘 나가던 초상화가에서 다른 그림으로 전향을 해야 했고 풍경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험적으로 비구상까지를 실험하였으니 미술사에서는 이득인가 실인가는 여러분이 따져주기를 바란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9.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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