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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방탄소년단(BTS)의 노력과 용기

지난 16일 그룹 방탄소년단은 각 언론매체를 통해 '프루프' 음반의 기점으로 팀으로서 음악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분간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솔로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면서 개인의 성장에 보다 집중한 뒤 돌아온다는 계획도 알렸다. 내놓은 곡마다 최정상을 만들고 1억 명이 넘는 ‘아미 A.R.M.Y’라는 팬클럽을 소유하고 있는 그들은 “가수로 데뷔해서 사회적으로, 세계적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됐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에 걸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동안의 활동 심정을 토로했다. 2013년에 데뷔한 그들은 10년이 안 되는 시간 속에 많은 관심과 이슈를 만들어 냈다. 과연 방탄소년단은 타고난 진정 천재이자 특별한 문화의 산물이었을까?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를 이야기 해보자. 클래식의 천재로서 가장 많은 음악 애호가들을 클래식으로 입문하게 만든 모차르트는 처음부터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작곡한 천재는 아니었다. 어릴 적 그에게는 뛰어난 교육자이자 매니저인 아버지가 있었고 신동에게 호의적이었던 귀족 사회가 있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음악 공부와 연습에 매진한 노력파였다. 성인이 돼 그가 작곡한 작품들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기울여 온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쓴 편지들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손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밤낮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최소 10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작곡 실력을 향상하고 작품의 질을 높여갔다. 모차르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상상하는 천재는 없다. 엄청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 배우지 않고도 알고 사회적 환경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바꾸는 그런 천재는 없다. IQ도 천재를 식별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천재라고 불린 사람들은 모두 환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많은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도 한 곡을 위해 지난날 수백, 수천, 수만 번의 음악을 고치고 만들었을 것이며 방탄소년단 구성원 하나하나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노래와 안무의 연습을 수천, 수만 번 거쳤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몇 년 전 유럽의 일간지 르몽드는 <유럽을 덮친 한류>라는 기사에서 “일본과 중국에 끼인 것으로만 알려졌던 나라,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로만 알려졌던 나라가 이제 자국의 문화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있다”라고 K-pop 진출을 알린 적이 있었다. 이후 우리 한국은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태권도, 한복, 한식, 국악 등 다양한 방면으로 세계 중심을 파고들었고 그러한 노력과 인내는 다시금 오늘의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행착오, 체험 그리고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노력, 인내가 있었기에 그들은 지금 세계 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K-pop 또한 그렇지만 이제 문화적 동기부여를 ‘made in’<제조국>보다는 ‘made by<제조자>로 더 생각할 때가 됐다. 수많은 문화와 기호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러한 제조자의 역할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며 천재적 진화 과정은 그렇게 후배들에게 전해지며 다양한 문화의 국가경쟁력으로 표출될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력과 용기는 그러한 과정 위에 있으며 세계 문화 중심에 다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30 16:43

"청, 꽃이 되다"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제55회 정기공연 개최

전라북도립국악원(원장 박현규) 창극단(단장 조영자)이 7월 8, 9일 양일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제55회 정기공연 <청, 꽃이 되다>를 선보인다. 2003년 공연 이후 20년 만에 선보이는 공연이다. 이 작품은 창극의 뿌리인 판소리의 본질적 요소를 살리는데 집중했다. 동초제 심청가를 살리면서도 그대로 담기보다는 재미있게 각색한 작품이다. 기존 동초제 심청가, <심청전>은 심봉사, 심청에 집중된 반면 <청, 꽃이 되다>는 싱봉사, 심청 외에도 곽씨부인에 대한 조명까지 놓치지 않았다. 공연은 직렬구조방식이다. 곽씨부인에 대한 조명도 있지만, 심봉사와 심청의 애절한 관계, 비극의 결정 등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심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효’를 전하고, 중심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연출은 신한대 공연예술학부 최교익 교수가 맡았다. 음악은 조영자 단장의 작창을 기반으로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 김창환 부지휘자의 작•편곡을 더했다. 안무는 전북도립국악원 이혜경 무용단장이, 지휘는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권성택 단장이 담당한다. 조영자 단장은 “이번 창극은 올곧게 동초제 심청가 소리를 대중의 시서에 맞춰 만들었다”며 “사회가 점점 삭막해져 가는 이때 심청이 꽃이 되어 환생하는 아름다운 효의 사상을 되새겨, 조금 더 우리 사회가 성숙되고 안정되어 가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예매는 전북도립국악원 홈페이지로 할 수 있으면, 공연은 무료다. 사전 예약제로 진행하며, 예약하지 못한 관객을 위해 공연 당일 1시간 30분 전부터 현장에서 좌석권을 선착순으로 배포한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2.06.30 16:43

'장문희 제자' 조혜진,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전서 대통령상 수상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장문희 명창의 제자 조혜진(38)이 6월 11, 12일에 열린 제22회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전에서 대통령상(명창부 대상)을 수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수상한 소식은 6월 12일에 전해졌지만, 장문희 명창의 제자인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온전히 장문희 명창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조혜진은 15년 동안 거주지인 광주에서 연습지인 전주를 오가며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문희 명창은 제자 조혜진을 “소리를 사랑하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이어 “제자는 38세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을 나이인데, 그럴 때마다 소리로 한을 풀었다. 힘들어서 소리를 포기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조)혜진이는 오히려 힘든 것을 계기로 삼고 더 열심히 소리를 배운 친구”라고 말했다. 조혜진은 “아직도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아 받아도 되나 싶다. 얼떨떨하다. 평소 선생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큰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진실된 소리를 하고 싶다. 앞으로 할 게 너무 많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조혜진은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나주시립국악단원을 역임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11회 무안전국승달국악대제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제16회 여수진남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 국회의장상 등을 받았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30 16:4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 우오즈미 나오코 '하모니 브러더스'

검색하다 눈에 띄는 책 표지가 있어 클릭해보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무언가 부자연스라운 모습이었다. 독특한 끌림에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주문했다. 그렇게 『하모니 브러더스』를 무작정 만났다. 7년 전 사라졌던 형, 유이치가 불쑥 나타나면서 가족이 저마다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마치 프로타주처럼 엄마와 아빠, 형과 특히 히비키가 도드라진다. 중학생인 히비키는 중고등학교 통합과정인 중학교에 입학한 우등생이었다. 집을 나간 형으로 인해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공부는 점점 어려워져 성적은 곤두박질치지만, 불안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숨 막히는 현실을 같은 반 후토시에게 은밀한 분풀이를 시작한다. 가끔 엄마가 가꾸는 화분을 밖으로 떨어뜨려 부숴 놓는다. 유이치 형이 돌아왔다. 크림색 원피스에 허리까지 기른 갈색 머리, 오렌지색 입술과 손톱을 하고 어느 날 불쑥 나타났다. 마치 사나흘 집 나가 동생이 잠든 사이 귀가한 것처럼 형은 태연했다. 형이 돌아온 후, 엄마와 아빠는 될 수 있는 한, 서로 마주치는 일을 피한다. 엄마는 형이 목욕하고 나온 욕조를 닦고, 자기 말만 불도저처럼 한다. 엄마의 기에 눌려 자기주장이 없던 아빠가 형에게 머무는 3주 동안 말 걸지 말라고 한다. 가슴 속에 따끔따끔한 것이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굴러다니는 사춘기를 지내는 히비키는 자꾸 형이 내는 소리가 거슬린다. 모두 불편한데, 유일하게 형만 여유로운 자유를 만끽하는 것만 같다. ‘이게 바로 저예요. 아버지! 숨 막혀서 나갔지만,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돌아온 거예요. 아버지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진짜 나!’ 당당한 자기를 보이는 형과 히비키는 달랐다. 뜻대로 안 되는 공부, 남모르게 하는 화풀이 대상인 후토시, 화분. 결국 끝은 분명히 있어서 후토시가 히비키의 속마음을 알아차린다. 약속한 3주가 지나고 떠나기 전 형이 작곡한 음악은 화해로 바꿔 놨다. 집에 돌아와 가족의 소리를 주워 담은 소리로 용기를 내는 히비키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후토시에게 손을 내민다. 동네에 있는 ‘양말 공장과 스타킹공장’을 ‘남자공장과 여자공장’이라고 말하는 편견처럼 우리는 가끔 보고 싶은 대로 보려고 한다. 일방적인 시각을 모두 나처럼 볼 것이라 착각한다. 가족이니까 오히려 말 못하고, 반대로 가족이니까 걸림 없이 아무 말이나 한다. 어쩌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가족은 보이지 않는 틈새가 많을 때가 있다. 너무 더웠던 여름 한낮, 나는 아들과 너무나 다르고 같았던 얘기로 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었다. 이제껏 반항 없던 아들이 슬리퍼를 신은 채 서울로 가출했다. 나는 아들의 큰소리가 화났던 것이 아니었다. 글 속에 ‘양말공장’을 남자공장이라고 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내 말만 한 것을 깨닫지 못한 대화였다. 우기니 내 말을 이해 못하는 건 당연했다. 오히려 지금에서야 아들과 잘 소통하고 있다. 형 유히치는 성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가족의 이해보다 자기존중이 우선이다.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환멸을 느낀다. 만약 내 아이가 성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다면 흔쾌히 기뻐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부모처럼…. 아들이 밖에서 소변을 보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참는다는 말에, 자식 잃어버릴까 봐 수술에 동행한 부모를 뉴스에서 보았다. 내가 이해할 일보다 자식을 먼저 보는 마음이 얼마나 먼 얘긴지 알기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우오즈미 나오코의 문장은 간결하다. 얇은 부피의 책 안에 가감 없이 표현하지만 섬세하고 단출하다. 주변인물인 후토시가 살아서 움직이는 묘사는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그녀의 글에는 상처보다는 성장의 메시지가 있어서 희망적이다. 『불균형』,『원예반 소년들』,『하고 싶은 말 있어요.』,『에이 바보』 비록 찢어진 상처지만 봉합해 아물게 해주는 많은 이야기를 권해본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마키코 언니’로 등단했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에서 ‘가족사진’으로 신인문학상 수상했다. 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와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가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29 16:38

아동문학전문지 '아동문학사조' 제6호 발간

아동문학 전문지 <아동문학사조(兒童文學思潮)> 제6호(아동문학사조사)가 발간됐다. 박상재 발행인은 <아동문학사조>가 추구하는 편집 방향을 설정했다. 박 발행인은 “작가들이 탐구하는 소재와 지향하는 가치관을 통해 시대정신을 탐색하고, 아동문학 이론과 작품 연구,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가작품론, 서평 등을 중점적으로 게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동문학사조> 제6호는 동시조의 숲, 사조응접실 특집으로 꾸며졌다. 이밖에도 다시 읽고 싶은 동시•동화, 탐구-아시아 현대 아동문학사, 아동문학정원-만나고 싶은 시인•작가, 특선 신작 동화•동시, 제5회 신인 문학상 당선작, 해외 그림동화, 북한의 아동문학•동화시, 서평 등이 담겨 있다. ‘동시조의 숲’에서는 하순희 시인의 동시조 창작론, 전병호 시인의 허일 동시조론, 김종헌 평론가의 동시조집 서평, 박방희, 유순덕, 유이지, 이재순, 진복희 시인의 ‘특선 동시조’ 작품을 다룬다. ‘사조응접실’에서는 박상재 발행인, 구순을 맞은 원로 시인 신현득 박사,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개인 문고를 개설한 조대현 작가와의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다시 읽고 싶은 동시•동화’에서는 고인이 된 조유로 시인, 정휘창 작가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탐구-아시아 현대 아동문학사’에서는 오타케 키요미 교수의 일본아동문학사, 권애영 박사의 중국아동문학사가 연재돼 있다. ‘만나고 싶은 작가ㆍ시인’에는 동시인 박혜선론(박선미), 이묘신론(황수대), 동화작가 김리리론(최미선), 김성범론(마성은), 백승자론(김경흠)이 담았다. 또 제5회 신인문학상에는 박미정(동시, 대구), 차진태(동화, 춘천), 박가연(평론, 서울), 하근희(평론, 대구) 등이 당선됐다. 이들의 등단 작품도 실었다. 박상재 발행인은 권두 칼럼을 통해 2월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하고,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가 수여하는 안데르센상을 받을 이수지 작가를 축하했다. 그는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위상을 한껏 높인 이번 수상을 독자들과 함께 기뻐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국제 아동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져 오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6.29 16:38

'강의 사상가' 송만규 화백, '강의 사상' 출간

“한 방울의 물이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니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새 길이 열리지 않는가!” ‘섬진강 화가’ 송만규 화백이 섬진강의 사계절을 담고, 그 위에 잔잔한 글을 얹었다. 강의 덕성과 품성을 드러낸 작가의 창작 과정을 담아 <강의 사상>(기획출판 거름)을 펴냈다. 송만규 화백은 섬진강 전체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포착한 8장면의 사계를 총 32장의 대형 화폭으로 그려냈다. 1경은 붕어섬, 2경은 구담, 3경은 장구목, 4경은 사성암, 5경은 왕시루봉, 6경은 평사리, 7경은 송림공원, 8경은 무동산, 일명 섬진팔경이다. 송만규 화백은 화백을 넘어 강의 사상가로 자리매김했다. 섬진팔경을 수묵으로만 담는 것이 아니라 글로도 담기 때문이다. 화백을 넘어서 강의 사상가로, 본인이 직접 보고 느꼈던 섬진강의 모습을 세세하게 글로 풀어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섬진강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강에 깃들어 사는 사람, 생명들의 살림살이까지 모두 살피게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의 삶, 우리의 삶만 살피고 살던 우리에게 한 가지 깨우침을 준다. ‘물의 삶’, 이것이 바로 곧 사람과 생명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송만규 화백은 “계절마다 산기슭에서 산꼭대기로 오르내리며 가슴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유난히 남아 있는 여덟 곳에 집중했다. 섬진팔경의 사계절이 그림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한 매듭을 짓고 싶었다”고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추천사를 통해 “송만규의 섬진팔경에서 묵자 사상의 하나인 겸애 정신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이는 과외의 안복이리라. 화가는 섬진강에서 묵자의 사상을 체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바로 섬진팔경의 원천이다. 지금 섬진강에 가고 싶다”고 했다. 송 화백은 전북 출신으로, 원광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민주화 투쟁의 현장 출신이다. 그는 20여 차례의 국내외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는 한국묵자연구회장으로 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가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6.29 16:37

"한글은 내 손바닥 안에"...한글 교육에 활용하는 '손바닥 그림책'

“나는 자랐어요. 키가 쑤욱 자랐어요. 생각도 훌쩍 자랐어요. 그래서 나는 할 수 있어요.”(손바닥 그림책 3세트 쑥쑥 그림책 중 10편 일부) 한글 교육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손바닥 그림책’을 펴냈다. 이 책은 크게 4단계로 나눠 차례대로 글자를 익힐 수 있도록 제작했다. 1단계는 ‘첫 그림책’으로 아이의 마음과 삶을 담았다. 2단계는 ‘가나다 그림책’으로 ‘ㄱ’부터 ‘ㅎ’까지 자음의 소리를 습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3단계는 ‘쑥쑥 그림책’으로 7개의 대표 받침을 익히고 유창하게 읽기, 쓰기를 가르칠 때 활용할 수 있다. 4단계는 ‘재미있는 그림책’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어공주와 같은 동화를 아이들 수준에 맞게 재구성했다. 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아이부터 글을 어느 정도 읽는 아이, 잘 읽는 아이까지 활용할 수 있다. 손바닥 그림책은 전북읽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결과물이다. 선생님도 바로 사용할 수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글 공부 그림책이다. 실제 선생님들이 각자의 교실에서 사용해 보며 만든 책이기도 하다. 선생님들은 이 책을 활용해 가르치고 있는 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을 받아 적고, 적은 것을 아이에게 직접 읽어보게 하고, 읽는 것을 관찰하며 실제 아이의 입말 수준에 맞게 수정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6.29 16:35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4)숙빈 최씨와 영조의 사모곡

청와대가 개방되었다. 연일 관심이 뜨거운 청와대는 역사성과 장소성이 특별한 곳으로, 고려시대 남쪽 수도인 남경 궁터의 흔적을 품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굴곡진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진 뒤에는 12명의 대통령이 업무를 보고 생활해 대통령궁으로도 불렸다. 중세와 근·현대에 이르러 장장 천여 년의 시간이 중첩된 장소인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그 서편에 자리한 칠궁도 주목받고 있다. 칠궁은 왕을 낳고도 왕비가 되지 못한 7명의 후궁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 다음으로 큰 사당이다. 칠궁에 모셔진 후궁들은 살아있을 때 왕비도 못되었고, 죽어서도 왕의 곁에 묻히지 못했지만 낳은 왕자가 왕이 되었으니 외로웠으나 성공한 삶이었을까. 아니면 왕실의 암투에 전전긍긍한 인생을 살았을까. 원래 칠궁은 영조(1694-1776)의 생모로 드라마 ‘동이’로 알려진 ‘숙빈 최씨(1670-1718)’의 사당인 ‘숙빈묘’였다. 무덤을 지칭하는 묘(墓)가 아닌 사당을 지칭하는 묘(廟)로 숙빈묘는 이후, ‘상서로움을 기른다’란 뜻의 이름을 받고 ‘육상(毓祥)묘’로 고쳤다가 ‘육상궁’으로 격상되었다. 영조는 육상궁에 ‘어머니의 은혜를 온전히 보존하는 사당’이라는 현판을 내리며 자주 들러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기렸다. 영조 재위 시절 200여 번 정도 육상궁을 방문했다 하니 영조의 효심이 대단하다. 그 옛 모습은 현재 칠궁 내 우물 냉천에 남긴 영조의 시구와 영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던 냉천정 등이 남아 있으며,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739년에 그린 <육상묘도>에서는 육상궁의 초기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데 홍살문과 초가의 건물이 북악산을 배경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고, 육상묘 신위 봉안에 참여한 18명의 관원 명단이 상단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741년 그려진 〈장안연우〉에서는 초가가 기와집 형태로 바뀌어 표현되었다. 하지만, 영조의 정성이 무심하게도 육상궁은 1878년과 1882년 두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듬해 다시 지어졌다. 이후 추존 왕인 진종(효장세자)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신위를 모신 연호궁이 육상궁에 옮겨와 함께 있다. 점차 저경궁(인빈 김씨), 대빈궁(희빈 장씨), 선희궁(영빈 이씨), 경우궁(수빈 박씨), 덕안궁(순헌 귀비 엄씨)이 옮겨오고 조성되면서 칠궁이 된 것이다. 칠궁이 원래 육상궁이었다고 하나 실제 가보면 육상궁이 아닌 육상묘라 새겨진 현판이 연호궁 현판 뒤에 걸려 있다. 가려진 듯 보이는 위치에 육상묘로 남아 있는 현판을 보자면 괜히 마음이 씁쓸한데 죽어서까지 시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모시고 있는 정빈 이씨가 안쓰럽고 육상궁의 현황을 보면 영조의 억장도 무너질 것 같다. 조선왕조 임금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 자리를 지킨 영조는 왕위에 오른 내내 숙빈 최씨의 지위를 격상시키며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태평성대를 누린 시기지만, 어머니 숙빈 최씨가 궁중 나인출신이어서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한다. 숙빈 최씨는 7세 때 입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입궁 전 기록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숙종의 후궁이 된 후 기록은 왕자를 출산한 호산청 일기 등 자세한 사료들이 남아 있다.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궁궐에서 쫓겨난 후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다 알려져 있다. 훗날 영조가 된 둘째 아들 연잉군을 낳고 ‘귀인’이 되었으며, 단종이 복위 되었을 때 ‘숙빈’으로 승급되었다. 숙종의 총애를 받은 숙빈 최씨는 희빈 장씨가 세상을 뜨자 왕비가 될 수 있었지만, 희빈 장씨의 폐해에 지친 숙종이 ‘후궁이 왕비가 되서는 안된다’고 내린 법령에 따라 왕비도 못되었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어머니의 지난날을 안타까워하며 어머니가 궁중 나인으로 일을 할 때 누비를 짓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평생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영조의 손주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 서린 한을 풀어냈다면, 영조는 고생하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기리며 사모곡을 불렀을 것이다. 영조는 숙빈묘를 육상궁으로 격상시킨 것처럼, 파주에 있는 숙빈 최씨의 무덤인 소령묘를 소령원으로 높여 고쳐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숙빈 최씨의 아버지인 최효원(1638-1672)을 영의정으로 어머니 남양 홍씨를 정경부인으로 추증했다. 또한, 숙빈 최씨의 생가가 서울 세종로 일대인 여경방 서학동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반면, 숙빈 최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담양과 장성 일대 그리고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생가가 있는 정읍에 신분상승 꿈을 이룬 최복순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최복순은 어린 시절 숙빈 최씨 이름인데 어린나이에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은 숙빈 최씨가 담양의 용흥사에서 기도를 올려 왕자를 낳는 꿈이 이루어져 용흥사에 은혜를 갚아 번창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1936년 편찬된 『정읍군지』에는 대각교에서 귀인인 인현왕후의 가족을 만나 훗날 궁에 들어가 소원을 이룬 전설이 기록되어 있고, 정읍에는 그 만남을 기념하는 ‘만남의 광장’도 있다. 하지만, 숙빈 최씨의 어린 시절에 관한 정확한 사료가 없어 알 수 없다. 칠궁의 세월을 묵묵히 품고 있는 오래된 나무에 기대니 지나는 바람에 영조의 애절한 사모곡이 실려 오는 듯하다. 가만 눈을 감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 구중궁궐을 지나 삼남대로 옛길의 한 모퉁이도 찾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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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9 15:19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유영국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국제갤러리는 지난 9일부터 8월 21일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 of Yoo Youngkuk>을 개최한다. 유영국 작고 20주년 기념으로 회화작품 68점과 드로잉 21점, 사진 작품 및 작가의 활동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 등 주요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유영국은 근현대사의 격동기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서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일본의 추상미술의 대가들과 교류하며, 20세기 전반의 전위적인 미술이었던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에 깊이 매료된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뿐만 아니라 표현적 다변화를 고심하던 유영국은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수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사진을 통한 새로운 조형 질서를 탐구하며,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중심으로, 자연 추상이라는 그 만의 추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유영국은 1943년 고향 울진에 돌아와 틈틈이 작품활동을 하다가, 1964년부터는 전업 미술작가가 된다. 울진은, 서쪽에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이 많고 동해를 향하여 급경사를 이루고, 해안에는 약간의 좁고 긴 해안평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울진은 예술가에게 천혜의 장소이다. 그는 이런 울진의 산을 모티브로, 대담한 구상과 화체(畵體)를 통해 대형 추상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색채를 서서히 쌓아 올리고 두텁게 만드는 등 계산된 구도와 색채를 선택, 비정형(非定型) 추상에서 기하학적 형태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을 기반으로 초록, 보라, 검정을 쓰며, 긴장감과 보색의 조화, 색채의 깊이, 공감각을 동시에 부여하는 등 추상회화 미학의 절정에 다다른다. 지난 2018년에도 ‘유영국 색채추상’전 작품 24점에 대해 필자는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 전시는 90여 점에 달하는 유영국의 뛰어난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동시에 서사적이고 균형미가 뛰어나게 모던하며 거침없다. 수십 년 앞서간 유영국의 작품은 아무리 보아도 지루함이 없다. 감동적이고 강렬한 작품을 보고 나면 잔상이 뇌리에 남아 있는데, 다른 어느 작가 작품보다 잔상이 강렬하다. 유영국의 원색의 산은, 이 답답하고 지루한 팬데믹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깊고 푸른 바다와 같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28 17:20

"작고 조각장 보유자 김정섭, 김철주를 기억하다"

“기만 알고 예를 알지 못하면 조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각장은 금속 표면을 두드리거나 깎아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기술을 가진 장인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조각장은 1970년에 지정됐다. 그 명맥은 초대 보유자 고(故) 김정섭(1899~1988)으로부터 그의 아들인 보유자 고(故) 김철주(1933~2015)로 이어졌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경훈)은 8월 21일까지 국립무형유산원 열린마루 1층 상설전시실1에서 2022년 사라지지 않는 빛-작은 전시 ‘정(釘)으로 맥(脈)을 새기다’를 연다. 조각장 보유자 고 김정섭과 고 김철주는 전통 조각 기술을 끝까지 지켜냈다. 김정섭은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출신의 조선시대 마지막 금속 조각장으로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김철주 역시 부친의 기술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김정섭이 인정할 만큼 뛰어난 조각장이었다. 전시는 크게 △조각장의 공방 △조각장 김정섭•김철주 △금•은•동의 조화 △아름다움을 새기다로 구성돼 있다. 김정섭과 김철주가 직접 사용했던 도구와 유족이 기증한 작품 등 50여 건을 선보인다. 김정섭과 김철주가 함께 작업하던 1970∼1980년대 공방의 모습을 재연한 조각장의 공방에서도, 조각장 김정섭·김철주 생전이 기록된 신문 기사, 잡지 기사, 기록영화 필름 등도 그들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했다. 부자가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사용하던 도구를 아들이 물려 받기도 하고, 자신의 손에 맞게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실제 조각 도구의 설명과 함께 조각 도구를 만져볼 수 있도록 꾸몄다. 금·은·동의 조화, 아름다움을 새기다는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을 전시한다. 김정섭, 김철주의 작품 특징은 기물의 바탕면을 조각한 자리에 다른 금속을 박아 넣는 것이다. 그들이 고집했던 전통 조각 기술로 만든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조각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벽면에 네 개의 화면을 설치해 하나하나 확대해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작업에 집중한 장인의 얼굴, 작업하고 있는 과정,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두 손, 전체적인 모습 등 다양한 각도에서 조각장을 바라보고 그를 카메라로 담았다. 전시 관람은 무료다. 한편 국립무형유산원은 지난 2018년부터 매년 국가무형문화재 작고 보유자를 기리고자 소규모 전시를 개최해 오고 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2.06.28 17:18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나는 엉덩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2

예술의 도시 파리를 동경하여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일군의 화가들을 우리는 ‘에콜 드 파리’라 부른다. 대표적으로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이 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김창열, 남관, 이응노, 권옥연, 이성자, 손동진 등이 있다.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다시 이주해 간 몽파르나스 거리에서 그들은 그림을 그리고, 웩웩거리며 발악을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예술론을 이야기하며 굶고 취하고 혹은 값싼 정어리 통조림을 나눠 먹어가며 추위에 떨었을 것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같은 경우에는 조각을 하기 위해 남의 공사장에서 주춧돌을 훔치고 하다 만 돌을 다시 가져다 놓고 하던 시절이었다. 이중에서 가장 기품이 있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어느 날 귀족 부인에게서 혼자만 초청할 수 없으니 모두를 초청한 가운데 현관부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림만을 걸어 놓고 그에게 간접 구애를 했다. 이후 그 부인과 잘 지내던 어느 날 그 귀족 부인이 낙태 수술을 위해 독일을 다녀온 것을 알게 되고 그 부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네가 감히 천재의 씨를 지워?”라고 할 만큼 자존심이 강했고 그중 제일 주정뱅이였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가 죽기 며칠 전 동료 화가인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며 역시 화가인 수잔 발라동을 찾아가 그녀의 품에 안겨 울면서 유대인이 부르는 죽음에 대한 기도의 노래를 부르던 것이 그의 마지막 노래가 되었다. 인간의 그 슬픈 정념만을 관조한 방랑자이면서 기품 있는 교양을 간직한 그가 르느와르 화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자신의 관능적인 그림 앞에 선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나는 이 엉덩이가 탐스러워 몇 번이나 어루만지며 이 그림을 그렸지”라는 자랑에 단 한 마디로 쐐기를 박아 버리고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선생님, 나는 엉덩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에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전기 영화에서 잔 에뷔테른으로 하여금 눈물을 가득 머금고 “사랑이 뭔지 아나요? 진정한 사랑! 그런 사랑을 해보셨나요? 영원히 비난받아야 할 사랑을요. 난 해 봤죠”라는 독백을 하게 한 영감을 준 사람이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27 16:34

"대한민국 검무의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된다!"

전북전통춤연구원(원장 문정근, 전 산조전통무용단은 오는 30일 오후 2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중회의실에서는 전라 검무의 원형을 찾아보는 ‘전라 검무 학술 세미나’에 이어 오후 5시 명인홀에서 ‘전라 검무 복원 공연’을 선보인다. 전라 검무는 1700년대 이전부터 전승된 전라도 고유의 춤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한동안 맥이 끊기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복원을 위한 시도를 했으나 전승계보 찾기의 어려움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각오로 그동안 쌓아온 학술적 성과를 재연 과정을 공유할 예정이다. 학술 세미나는 ‘대한민국 검무의 또 다른 역사, 전라 검무의 원형을 찾아서’를 세 개의 소주제로 세분화했다. 전라 검무 복원 연구, 18세기 검무의 유행과 전주, 무형적 가치 발굴을 위한 필수조건과 충분조건에 대한 재검토 등이다. 공연에서는 잘 알려진 ‘궁중 검무’, ‘진주 검무’, ‘밀양 검무’, ‘전라 검무’ 등 4개의 검무를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공연의 대미는 송영국 백제예술대 교수와 문정근 무형문화재의 대담과 전라 검무가 장식한다. 문정근 원장은 “전라도 천년의 중심 전라감영에서 전승된 전라 검무는 우리 지역의 동작과 전통적인 동작 요소를 기반으로 검술의 원리를 이용한 검무”라며 “한동안 맥이 끊긴 춤사위를 복원•전승해 전라감영에서 재연하기를 항상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박현우
  • 2022.06.27 16:34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