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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길

▲ 안영
남풍이 찾아온 쪽빛칠월은 논두렁마다 가는허리 풀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풀숲을 이루고 있다.

 

한해를 시작하며 지우고, 버리고, 줄여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정월의 산과 들녘은 텅 비어 있었으나 지금의 칠월은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 속에 감춰진 지나온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환갑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들꽃처럼 키워주시니 때로는 시린 가슴도 데워지고, 자연과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걷는 길은 여유로움과 즐거움이 있어 하루하루가 참으로 소중하고 사는 재미가 있다.

 

삶이 건조하다 싶으면 경각산과 구이저수지가 손잡고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진 술테마박물관을 자주 찾아간다. 우뚝 솟은 산이 나를 안아주는 포근함은 아마도 어머니의 품 속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이곳을 가게 된다. 싸목싸목 걸으며 눈 안에 산과 그리고 자연을 담다보면 산처럼 무거운 걱정을 메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늙은 아버지가 보이고, 쑥국새 우는 날에는 가랑비 맞으며 사랑하는 모습도 그냥 볼 수 있어 좋다. 구이중학교→구이저수지 제방→저수지 숲 속길→호숫가 데크→술 박물관 구간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호수는 오는 이 마다 탄복을 한다.

 

본래의 둘레 길은 산비탈에 사는 주민들이 험한 산길을 힘들여 넘지 않고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길이었을 것이다. 둘레 길에는 논두렁길, 숲길, 고갯길, 마을길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 그 길을 걷다보면 나름대로 향기가 있어 어느 길을 만나든 부담 없이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산의 능선을 따라 오르기에 비록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둘레 길을 거닐다보면 시공을 떠나 한없는 여유로움을 느끼며 인간체험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

 

이 주변에는 딸기와 포도 농장이 있고 기류를 이용하여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 좋다. 이곳에 자리한 지는 일 년 남짓 되었지만 원주민처럼 해돋이에서 해넘이 시간까지 언제나 지켜 볼 수 있어 노후에는 아마도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이곳은 비가 내리면 운치가 있고 혼자 있어도 절대 외롭지 않은 이야기가 엮어지는 곳이다. 지금도 솥뚜껑에 돼지기름 올려놓고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함석집 지붕 위를 때리고 있다. 이런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불러 술 한 잔 마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옛말에 사흘에 한 번 마시면 금이요, 밤에 마시는 술은 은, 낮에 마시는 술은 납이라 했거늘, 오늘 우리는 세 가지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와인 한 잔 마시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이기에 다른 술은 맛을 몰라도 용서가 된다. 형용할 수 없는 그리고 모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 이곳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길 희망한다.

 

퇴직하면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그동안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서로가 되어야한다고 하였지만 농사일을 하면서 서로가 다름과 차이에 문제가 생겼다.

 

생명을 기르는 일은 수도자의 길과도 같다. 조금씩 심고 가꾸어 새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벌레를 잡아주고 흙을 밟는 아름다운 ‘소담과 安土尼吾’의 해피 데이를 꿈꾼다.

 

운무로 인해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작은 연못에 붕어와 우렁이 그리고 부레옥잠과 홍연이 살고 있다. 내년쯤 아마 연분홍 입술을 열어 그 은은한 향내로 세상을 삼킬 듯 뿜어내는 연꽃이 필 것을 생각하면 절로 흥이 난다.

 

가끔은 손등이 햇볕에 그을리고 가녀린 손등에 핏줄이 불거져 이전의 내 모습은 아니어도 손톱 밑에 흙이 들어간 지금의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는지.

 

또 다시 남풍이 분다. 풀은 누웠다 다시 일어서고 나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선다. 풀도 나도 하나 되어 붉은 웃음을 웃는다. 자연이 사람을 위로하는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곳에 발자국을 남긴 칠월이 좋다.

 

△ 수필가 겸 시인인 안 영 씨는 〈문예사조〉(수필)와 〈한국문학예술)(시)로 등단. 수필집〈 〈내 안에 숨겨진 바다〉가 있다. 현재 한국문학예술 전북지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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