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둔치농장

▲ 육심표

나는 요즈음 인근 아중저수지 둔치에 조그만 밭을 개간하여 채소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푸성귀 몇 가지를 심었으나 점차 키운 작물이 증가하여 12종이 넘는다. 나는 이 밭을 둔치농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집 근처 산책로 변에 있어 산책을 하면서 수시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으로 행복하다.

 

작물을 가꾸다 보면 항상 즐거움과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가뭄에 시들어 가는 작물들을 보며 애를 태우기도 하고 병충해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속상할 때도 있다.

 

이른 봄 하지감자를 한 두렁을 심어놓고 싹이 트이지 않아 애태우던 생각이 난다. 나는 씨감자를 어떻게 파종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경험이 있는 친구한테 물어 심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싹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도 답답해서 친구에게 재차 물었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같았다. 감자를 몇 조각으로 쪼개서 눈이 있는 부위를 아래쪽으로 하고 잘린 부위가 위로 가게 심은 다음 살짝 덮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분명히 가르쳐 준대로 심었는데 싹이 트지 않아 혹시 심는 방향을 잘못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하고 또다시 채근하였더니 잠자코 기다리면 싹이 나올 것이라며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자 마침내 친구의 말처럼 새싹이 비닐을 밀치고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 하더니 금방 파릇파릇 잎이 피어나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어린 새싹을 보면서 냉기도 가시지 않은 3월의 땅속에서 고통을 견디며 나왔구나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비닐 사이를 틔워 주고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었더니 보답이라도 하듯이 무럭무럭 자라며 새싹의 강인함 보여 주었다. 씨감자 심은 지 3개월 남짓 된 6월 중순경에 어느새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과연 며칠만 관심을 같지 않아도 금방 표시가 역력하다. 초여름 바쁜 일정으로 잠시 농장을 들리지 못하였더니 쇠비름 바랭이 등 온갖 잡초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 무렵 가뭄이 심해서 작물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특이 고추와 가지, 호박은 애처롭게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대파와 들깨는 병충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우선 목이 말라 애태우는 녀석들부터 물을 흠뻑 뿌려주고, 훼방꾼 쇠비름 바랭이 등 잡초를 제거한 다음 병충해 구제에 나섰다.

 

물을 흠뻑 먹은 고추와 가지 호박잎들이 어느새 나풀거리며 생기를 되찾는 듯싶더니 옆에 있던 고추가 한 마디 하고 나선다. “주인님, 최근에 유행하는 탄저균이 온다는데 정말 무서우니 미리 예방을 좀 해주세요.” 듣고 있던 들깨도 거들고 나선다. “저는요 갑작스럽게 목이 꺾기는 역병이 돌아다닌다는데 걱정입니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고 있었지만, 이들을 직접 대하니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주인체면으로 큰소리쳤다. “염려 말아라. 오늘부터 내가 너희 곁에서 보살피며 지켜 주마.” 이후부터 매일같이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펴준 덕택인지 모두 기력을 회복하여 병충해를 이기고 무럭무럭 자라서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들을 보고 작물은 인간과는 달리 뿌린 만큼 반드시 보상해 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얼마 안 있으면 들깨 수확을 끝내고 그 자리에 마늘을 심어 내년 봄을 기약할 것이다. 나의 둔치농장은 나의 삶에 원기를 불어넣어주는 활력소다.

 

△육심표씨는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다. 전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 과정을 수료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자치·의회전북도의회 농업복지환경위원회, 행정사무감사 실시

사회일반문형배 “지역균형발전은 좋은 정책 아닌 유일한 정책”

교육일반[NIE] 좁아진 일자리의 문과 해외로 향한 청년, 그 뒤에 남겨진 질문

스포츠일반[전북체육 종목단체 탐방] (13) 전북자치도씨름협회

오피니언[사설]새만금 글로벌청소년센터, 활용 방안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