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돋보기로 종이를 태워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한 점에 모아 종이에 비추노라면 마침내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종이 타는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지금도 그 때 그 냄새를 잊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신기했을까? 돋보기를 가지고 태우는 모습은 마치 마술사가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면 갑자기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야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조리개가 너무 좁아진 탓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돋보기 하나만 있으면 으스대며 많은 친구들을 모을 수 있었다. 빙 둘러앉아 시선을 오로지 햇빛이 모아진 한 곳만 응시하다보면 드디어 함성이 터진다.
“야! 탄다, 타. 연기 난다, 연기 나!”
그것도 초점을 잘 맞추어야 연기가 빨리 난다. 재질이 좋지 못한 돋보기는 초점도 잘 맞지 않아 빛이 모아지려다 분산되어버려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기대에 찬 꼬마들의 마음을 실망케 한다. 돋보기를 쉽게 구하지 못했던 나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유리조각을 주워서 햇빛을 모아 보려고 애를 썼던 기억도 난다. 내가 얼토당토않은 그 일에 심취해있는 사이 어떤 짓궂은 녀석은 나를 약이라도 올리듯 팔이나 발등에다가 돋보기를 들이대면 나는 “앗 뜨거워!”하며 뚜다가 급기야는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초점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도 초점이 맞지 않으면 사람이 멍하게 보인다. 합창에도 발성의 초점이 없으면 공명된 소리의 멋진 화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창 젊었던 시절 합창지도를 한답시고 이리 가르치고 저리 가르치면서 발성의 초점을 맞추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일이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이치도 이 초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줄곧 달려 왔다.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오로지 한 곳만을 향해 질주를 한 셈이다. 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반평생 봉직해 온 나나 우리 친구들의 초점은 무엇이 엇을까? 물어보나 마나 뻔하다. 바로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여 기본이 바로 선 ‘훌륭한 민주 시민’을 기르는데 있었다. 초임 때 가르쳤던 제자가 같이 늙어 가면서 민주 시민으로서 훌륭하게 제 몫을 다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정년을 한 시점에서 우리는 첫 번째 인생의 Focus를 성공적으로 맞춘 셈이다. 남은 건 제2의 Focus를 맞추기 위해 또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뭔가 새롭게 맞출 초점을 찾아 서서히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래서 40년 가까이 한 길에 초점을 맞추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듯이 영예로운 퇴직과 함께 꿈과 희망을 가득 싣고 귀향하는 만선처럼 제2의 Focus를 잘 맞춰 후회 없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 한다.
△김재균씨는 전주 양지초등학교 교장으로 42년 공직생활을 마쳤다. 교단 재직시 가족이 함께 하는 교육에 힘써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한국교육자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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