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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와 배려

▲ 박제철

전주시 북부권인 동산동과 장동, 여의동을 아우르는 곳에 전주 월드컵경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월드컵 경기장은 축구경기가 열리는 일 년에 몇 번을 제외하고는 무척 한적한 곳이다. 하지만 이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가족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써 무척 각광을 받는 곳이다. 왜냐하면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잔디밭에서는 지난겨울이 남기고 간 노란 잔디가 움츠리고 있다가 봄바람과 함께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젊은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그늘막이나 텐트를 쳐놓고 파릇한 봄의 행복을 충전시킨다. 여름이면 숲에서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매미소리 풀벌레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풀꽃들을 안고서 삼겹살 파티도 한다. 단풍이 물든 가을이면 가을 단풍과 함께 가을의 서정을 만끽해보는 산책길이 세월을 배웅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눈이 쌓이는 겨울엔 더없는 눈썰매장이 된다. 이렇듯 월드컵 경기장은 우리들과 친숙한 삶터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도심 공간의 월드컵 경기장이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의 욕심으로 한 때 어린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저녁이면 숲 파티 장이 되었고, 남녀 불륜의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야영장이 아니니 텐트를 치지 말고 취사를 금지하며 전동차 타는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다행이도 이후 휴일이면 북적대던 이 곳에 무단으로 텐트를 치는 사람도, 가족끼리 삼겹살 파티도, 무질서한 전동차를 타는 어린이도 볼 수 없었다. 겨울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만 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설작업차가 굉음을 내며 눈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겨울방학 때면 오락실에서 게임이나 하는데 비해 얼마나 건전한 놀이인가. 어깨를 활짝 펴며 마음껏 웃고 가족과 한마음이 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 일석 십조일 것 같다.

 

때로는 규제도 필요하다. 규제 전에는 가족들이 놀다간 자리는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기도 했다. 자기 집 정원의 잔디밭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쓰레기를 버릴 수 있을까? 규제도 필요하고 때로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배려도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어릴 때 고향마을 앞에는 텃논이라 해서 항시 물이 고인 논이 있었다. 겨울이면 어른들이 물을 가두어 동네 꼬마들이 놀 수 있도록 얼음판을 만들어주었다. 물속에 남아있는 벼 그루터기가 물속에 완전히 잠길 때까지 더 많은 물을 채워 얼려 주었다. 어린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놀 수 있도록 하는 어른들의 배려가 있었다.

 

취사를 못하게 하거나 눈썰매를 타다 다칠까봐 눈을 아예 치워버리는 그 심정도 이해하고 싶다. 눈썰매장은 어린아이와 부모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다. 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지는 못할망정 쌓여있는 눈까지 치워버려 동심을 멍들게 해서야 될 일인가. 그렇게 위험을 걱정한다면 제설차를 사용할 돈으로 안전시설을 마련하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박제철씨는 경찰공무원으로 34년간 재직했다. 지난해 〈대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대한문학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 임실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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