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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종합경기장 단상

▲ 이희근

전주문인협회에서 문학기행을 가는 날이었다. 전주종합경기장 정문에서 출발할 예정인데 나는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추억이 서린 종합경기장을 들러보고 싶어서였다.

 

전주종합경기장은 제44회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논을 메워서 1963년에 준공하였다. 이후 1980년에 제61회 대회가. 1991년에는 제72회 대회가, 그리고 2003년에는 제84회 대회가 개최된 장소다.

 

제44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될 당시에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축구선수로 그 대회에 참가했다. 제61회 대회에는 전라북도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그리고 제72회 대회에는 전라북도축구협회부회장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44회를 전주에서 그 대회를 유치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경기장도 문제였지만, 각 시·도의 선수들을 수용할 숙박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44회 대회를 이곳에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쳐 전북도민의 저력을 발휘하면서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대회를 통해서 전주는 멋과 맛의 고장이며 인심 좋은 고장임을 전국에 또 한 번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맛의 고장’이란 그 지역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전주는 달랐다, 이미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으로 맛의 고장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선수들이 민박을 통해서 각 가정에서 맛을 본 음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후 종합경기장은 전국체전 외에도 전국소년체전이나 전국규모의 많은 행사가 많이 유치되었다. 어느 지역을 가나 대부분의 경기장마다 출입문이 네 개였다. 대개 동·서·남·북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문이 다른 문보다 규모가 큰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비슷한 콘크리트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전주종합경기장은 달랐다. 수당문은 삭막한 몰골을 들어내 보이는 콘크리트 문이 아니라, 은은한 한국미를 자랑하는, 단청으로 말끔히 단장된 고풍어린 일주문이었다. 그것을 보고 선수들은 전주가 천년고도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경기장 동편으로 도열해 심어져있던 이태리포플러나무들이 외지에서 온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부분 조경수로 듬성듬성 빈 공간을 채우기에 급급했는데, 키가 큰 포플러가 단지처럼 한쪽을 메우고 있었다. 라이터가 없던 시절에 성냥개비로, 이쑤시개와 나무젓가락, 그리고 펄프용으로 경제성이 많은 그 나무들을 보고 많은 선수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지금은 그 자리에 100m달리기 4레인이, 그리고 나머지는 주차라인이 그려져 있다.

 

원래 종합경기장에는 별도의 정문이란 호칭이 없었다. 하지만 전주의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출입문 하나를 설계하고 그 비용을 (주)삼양사에 의탁했다. 그 회사 회장의 호를 딴 수당문이 된 연유였다. 그래서 전주시민들은 지금까지도 수당문 외에는 경기장의 문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일잔재청산을 위한 시민연대에서 수당문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 보도를 접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었는데 ‘수당문’이란 현판만 철거되었다. 그것을 보고 이름표를 떼어내거나 바꿔 달면 모든 것이 청산된다는 생각이 들어 찜찜했지만,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어서 집행을 유예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욕심을 부르지 않고 바보처럼 사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란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올랐다.

 

△수필가 이희근씨는 계간 〈문학사랑〉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산에 올라가 봐야〉〈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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