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운다. 화병 난 사람처럼 포효하고 부글거리고 서럽게 늘켜 운다.
섬진강이 그렇게 몸부림치며 울던 날 지리산 능선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노니는 흰 구름을 만났다. 산 아래서 뭉실뭉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하얀 구름은 저 멀리 정령 치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다.
저녁 때 남도로 가는 길은 며칠을 밤마다 쏟아지던 폭우가 섬진강 바닥을 채우고 흘러넘쳐서 범람하면서까지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수년 전에 물 밭은 섬진강을 바라보며 곡성으로 돌아가던 그날도 떠오르고 그날 해저물녘 적란운이 노고단을 어루만지고 애무하던 이런 여름날 해거름이었다. 오늘은 적란운 대신 하얀 명주비단을 펼쳐놓은 것처럼 지리산을 덮고 있다. 이미 섬진강을 채울 대로 채운 붉덩물이 비가 그쳤다는 표시인지 하얀 면사포를 두르고 지리산을 에두르는 중이다.
지리산 계곡 의신 골에서 부터 내려오는 빗물은 그런대로 깨끗해서 보아줄만 했는데 반대로 앞 섬진강물은 흙탕물이다. 백사장이 이름다웠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게 사라져 버리고 풀숲우거진 강가 상까지 성난 물은 강바닥을 뒤집으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녹차밭들도 배나무들도 붉덩물에 발을 담근 채로이고 새로 공사 시작했던 황토지반은 이미 물속에 잠겨 방방하게 찬 흙탕물이 어디가 어딘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낮에는 하마터면 송림공원 주차장까지 잘름잘름 했다는데 내가 간 늦은 시간에는 그래도 세 칸이나 아래로 내려간 상태라 하였다. 오래전에 하동 송림공원에는 강가에서 굿을 하는 무인들 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계단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이날 남아있는 계단은 불과 몇 개였다.
하동 송림공원 앞의 섬진강 계단에 물이 찼던 모양이 선명하다. 해질녘 노을빛으로 너른 섬진강은 울고 또 울고 배앓이 나서 뒹구는 아이들 마냥 그렇게 울고 있었다. 늦은 오후 배앓이 난 섬진강을 달랜다고 하동으로 내려가는데 함께 가는 동무를 구했지만 소식 없어 혼자라도 가겠다는 마음으로 한 시간 반 만에 하동시내에서 퍼버리고 앉아 울부짖는 섬진강을 만난 것이다. 섬진강이 저리 울면 강 사람들은 더 몸 둘 바를 모른다. 강변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삼켜버린 논과 밭들을 건지지 못하고 그저 울다 지쳐서 절로 바다로 빠져나가는 날까지 물끄러미 바라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뉘라서 자연의 성난 강물을 달랠 수가 있었을까? 줄 나루를 당기며 건너던 섬진강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그 너른 강 가득 내려가는 강폭은 언제부터 저리 넓었던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번에 섬진강은 오래도록 배앓이를 할 것 같다. 상류에서 내려가는 물의 양을 보면 말이다. 가다보면 강 가운데서 소용돌이치는 샘솟는 것처럼 물굽이가 돌아드는 섬진강, 논밭과 많은 것들을 삼켜버리거나 혹은 휩쓸러 가게 한 이번 폭우는 분명 섬진강을 울리고 말았다. 아름다웠던 섬진강이 저리 아우성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늦은 밤까지 하염없이 섬진강이 우는걸 보면서도, 매급시 달랠 엄두도 못 내면서 배앓이를 하면서 울고 있는 섬진강을 보고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항상 폭우로 많은 물이 오원 천을 가득 채우고 내려가면 우리는 보통 섬진 댐에 갇히려니 했지만 상류에서 하동 포구 근처까지 내 눈으로 확인 한 것은 분명 섬진강이 통곡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 올라오는 길 부글부글 끓는 섬진강이 눈에 선하여 잠 못 이룰 것 같다. 나는 왜 통곡하는 섬진강을 만나러 그 먼 곳을 달려갔을까
△김여화씨는 수필집 〈아낙에 핀 물망초〉 〈행복의 언덕에서〉 등을 냈다. 임실문협회장을 지냈으며 전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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