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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과 수입계란

▲ 이의

설날 제사상에 들러선 손자들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빛살처럼 지나갔다. 그때의 제사음식은 가지 수도 많고 떡이며 전은 산봉우리 모양 수북이 쌓았다. 그런데 내가 차린 제사상에 올린 음식은 너무 간소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여자들은 제사상 앞에 얼씬도 못했는데 요즘은 마음만 있으면 절도한다. 어른들의 설복은 간편하나 아이들의 한복은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다. 내 유년시절의 설빔은 할머니가 겨우내 짠 명주로 만든 빨강치마 노랑저고리는 로망이고 기쁨이었다.

 

유교를 받들고 살아온 우리는 조상을 극진히 모셨다. 이러한 관습은 제사 음식은 우리 땅에서 난 가장 좋은 것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상님들이 행여나 제사상에 토종이 아닌 음식을 낯설어 하실까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명절 음식을 하려면 꼭 필요한 계란의 공급이 부족하니 정부에서 서둘러 수입을 했나보다. ‘부족하면 넉넉한 곳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 같은데 영 찝찝하다. 계란이 몇 개 남지 않았으니 어떤 계란을 살 것인지 망설이다 비싸도 우리 것으로 필요한 만큼 만 샀다. 나물 종류도 산지를 알아볼 방법이 없고, 수입 고기를 한우라고 속여 파는 세상이니 그저 조상님들의 아량을 바랄뿐이다.

 

어릴 적 도시락에 계란 후라이는 귀한 반찬 이었다. 교실 난로에 켜켜이 올려놓은 도시락들 사이로 풍겨 나오는 고소한 냄새는 엄마가 내게만 특별히 챙겨주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소풍갈 때는 사이다 한 병과 삶은 달걀 한 개는 필수 기본 옵션이었다. 껍질 탁 소금 톡 하얀 흰자를 베어 물고 사이다 한 번 마시고 다시 노른자를 털어 넣고 사이다를 들이키면 소풍을 왔네 하는 실감이 났었다. 그런 추억의 계란이 되다니 씁쓸하다.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 한치 앞이 불투명하고, 국민은 찬반으로 등을 맞대고 있으니 어느 누가 설이라고 편할 수 있으리. 거기다 지난해 한 해 걸러 찾아온 AI(조류인플루엔자)는 독성이 강한 두 종류의 바이러스란다. 그래서인지 두어 달 만에 산란계의 3분의 1정도가 살쳐 분됐다. 우리나라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하면 3km 이내의 멀쩡한 닭까지 몽땅 쓸어 담아 땅에 파묻는다. 산목숨을 애도 한 마디 없이 묻는 사람이나, 당하는 닭들은 무슨 날벼락인가! AI가 오면 그때서야 방역을 한다고 교통을 통제하고 약을 살포하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는 모양새다. 민초들은 불안하다.

 

우리보다 기술이 좀 뒤진다는 태국기업의 대형 양계장에서는 로봇을 이용해 닭을 돌본다고 한다. 로봇에 달린 센서를 이용해 닭들의 체온과 활동을 측정해 발병을 미연에 방지한다고 한다. 우린 번번이 막대한 살생으로 경제적인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환경과 정서적인 문제까지 깊은 주름으로 점철 되어야 하는가. 우선 닭 사육방식을 개선해야 예방도 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첨단 과학시대에 조금 생각하면 왜 방법이 없겠는가. AI가 올 때마다 드는 매몰비와 방역 비, 피해 농가에 지급하는 보상비를 합치면 천문학적 수치이리라. 이렇게 세금에서 빠져나가는 금액을 예방대책비로 쓴다면 이토록 비참한 살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수입한 횐 달걀은 죄가 없지만 댕기지 않으니 쳐다보고 지나간다. 한편 생각하면 우리가 먹던 갈색계란은 안전한 먹거리였을까? 조악한 환경에서 항생제 까지 먹으며 낳아준 갈색계란이 횐 달걀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다. 동물이 병들면 그 연결 고리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 또한 안심할 수 있을까!

 

대선이 다가 온다. 설이 기다려지고 계란 까지 수입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갈 적임자는 누구일까?

 

△이의 수필가는 전직 교사로 ‘대학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행촌수필문학회와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자나이 마흔둘 마흔셋〉, 〈오이 밭에 새 둥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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