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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불빛

▲ 김형중

선생님, ‘ㄱ’을 ‘기억’으로 쓰면 왜 틀리나요? 이름을 ‘한문’이 아니고, 왜 ‘한자’로 쓴다고 해야 하나요? ‘tire’의 발음은 왜 ‘타이어’인가요? 궁금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풀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상당한 날카로움(?)이 깃든 질문들이 쏟아지며 좁은 교실 안이 시끌벅적하다. 익산 구도심에 자리한 어느 여고 정문 앞, 오랜 시간 비바람과 햇볕에 그을린 허름한 건물의 2층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다. 40~50년 전의 청소년으로 돌아간 중장년의 학생들이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서러움을 풀어보겠다고 머리를 싸맨 야학교실이다. 전등불 아래로 모여든 60대 전후의 이들 중?노년 학생들은 답답하고 어두웠던 지난날을 떨쳐내고 이제라도 밝은 내일을 맞이하겠다는 일념으로 책과 씨름하고 있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그들의 꿈은 검정고시에 합격, 당당하게 학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저녁식사는 하고 오셨나요?’ ‘아니~오. 대충대충 때우고 왔어요.’ 그러면서 손가방 속 누룽지며 고구마를 내놓고 시장기를 채운다. 애들처럼 군것질을 하는 교실 풍경에서 정겨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금방 설명을 했는데도 ‘선생님, 조금 전 뭐라고 하셨지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 수줍어도 열심히 질문하는 늦깎이들의 서툰 공부방이다. 그러기에 설명은 최대한 쉽고 천천히 해야 한다.

 

눈빛 초롱초롱한 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색에 잠긴다. 하루 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온갖 힘든 일을 하며 가난한 시대를 까막눈으로 살았을 것이다. 서러움도 많았고, 숱한 날들을 남몰래 울기도 했을 것이다. 기억 조차 하기 싫을 만큼 아린 상처를 자녀들에게만은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허리가 휘는 줄도 모른 채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꿈을 꾸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훌쩍 늙어가고, 젊은 시절 꿈은 멀어져 있다. 건강했던 지난날들을 회상하면서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거나, 먼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배움의 꿈은 이루고 싶다. 그 현장이 야학교실이다.

 

그분들의 열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나는 최근 1960년 후반 대학시절부터 몸에 밴 야학강사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야학생들은 낮에는 점원이나 사환(使喚)생활을 하고, 배고픔을 맹물로 달래가며 주경야독했다. 야간학교에 찾아들었던 그 까까머리들은 이제 초로가 되어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

 

당시의 그들은 젊었지만,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저 학생들은 중노년들이다. 각자 그 처지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배울 때를 놓쳐 서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과거에는 학업 시기를 놓치고 생업에 뛰어든 젊은 근로자들을 위한 산업체 학교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얼마전 덕암정보고 산업체특별학급 졸업을 끝으로 역사 속에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배움을 갈망하는 중노년이 많다. 미력이나마 봉사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삶은 자기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길을 향해 쉬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25시간’을 하루 삼아 힘겹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년은 올해보다 좋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평생 공부하며 살아간다. 인생에서 나이는 부끄러움도 아니고 한계도 아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야학교실 전등불 아래로 모여든 저 ‘나이 든 청춘’들이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고 조만간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형중 수필가는 익산 이일여고 교사를 거쳐 전북여고 교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시대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부회장과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행촌수필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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