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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 정곤
노련한 등산가는 늘 나침반을 지니고 다닌다.

 

나침반은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사용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금방 꺼내 길을 쉽게 찾기 위한 것이다. 보통사람들도 나침반을 지니고 산다. 자기만의 어떤 특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가는 것을 정상으로, 나쁜 상태에 직면했을 때는 올바른 상태로, 낮은 단계일 때는 높은 단계로 가려는 의지 등 삶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일을 행하게 된다. 어떨 때는 특별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기약 없는 인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생이라는 굴레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단계는 아니더라도 주관적인 판단 속에는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나침반이 있다.

 

어느 해 가을, 용머리 고개 튀김집에서 갓 구워 올린 꽈배기 냄새가 코앞을 가로막았다. 반세기 전 아버지가 사주시던 꽈배기가 그 집 창가에는 진열되어 있다. 그 앞에는 낯모르는 어린 학생이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호주머니를 뒤지며 돈을 찾는 것 같았다. 아마 돈이 없거나 잃어버린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 없이 그의 손에 꽈배기를 쥐여주었다.

 

꽈배기를 보니 문득 시골 오일장 생각이 났다. 그때 아버지는 비를 맞으며 봉투 하나를 들고 오셨다. 젖은 봉투에는 쫄깃하고 달콤한 꽈배기가 있었다. 그 냄새는 방안에 가득했다. 어머니는 꽈배기의 숫자를 세어보고 분명 열 식구인데 한 개가 부족한 아홉 개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라보시니 아버지는 시장에서 먹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꽈배기 반절을 뚝 잘라 아버지 입에 넣어 주셨다. 그러더니 그의 반절을 막내 입에 넣어 주고 나머지는 어머니의 입에 넣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었다. 가난이라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형제들의 숫자만큼 정이 숨어 있었다. 비록 꽈배기처럼 꼬이는 일이 많았던 내 삶 속에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 행복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한평생 살면서 모든 것들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삶이 사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남이 준 것들이다. 아파트는 건축업자가 지은 것을 산 것이다. 책도 옷도 승용차도 모두가 내가 잠깐 빌려 쓰고 죽을 때 놓고 갈 물건이다. 아니 내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놓고 가야 한다. 그렇게 할 바에야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횔덜린의 「반평생」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 후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아, 나는 어디에서 이 겨울에 / 꽃들을 찾을 수 있을 거나 /또 햇빛과 지상의 그림자는 /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거나 / 깃발들이 덜컹거리는 / 바람 속에서 벽들은 / 말없이 차갑게 서 있는 데.”

 

나침반을 가지고 등산하듯 인간의 삶도 서정적인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언어가 깨끗하고 단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매사가 긍정적이다. 거친 파도가 노련한 어부를 만들 듯 대가를 크게 치른 사람은 인생의 나이테도 굵고 깊다. 나이테 속에는 넉넉한 나침반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의 추억을 거울삼아 세상을 밝게 사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를 불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나와 함께 지내왔던 물건들을 후손들에게 후회 없이 주고 가겠다는 지혜로운 생각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성공한 사람이 되기보다 차라리 평범한 삶 속 행복한 사람을 꿈꾸어야 하겠다.

 

△ 정곤 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작촌예술문학상을 수상했다. 덕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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